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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주한미군 감축설… 청와대ㆍ볼턴 “아니다” 동시 진화

입력
2018.05.04 16:19
1면

북미 정상회담 앞둔 미묘한 시점에

NYT “트럼프, 병력 감축 준비 지시“ 보도

트럼프 “북미 회담 일시ㆍ장소 결정돼

미군 철수는 협상 테이블에 없다“ 발언

한국 겨냥 방위비 압박 카드일 수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국가기도회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국가기도회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불과 몇 주 앞두고 미 국방부에 주한미군 병력 감축 옵션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3일(현지시간)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에 청와대는 물론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이 이례적으로 별도 성명을 내 이 보도를 부인하는 등 한미 양국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 공조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주한미군 감축설 조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고립주의적 외교 노선을 지향하는데다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를 시사하는 발언을 종종 해왔다는 점에서 다양한 해석과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주한미군 감축 지시’를 둘러싼 배경이다. 그간 워싱턴 외교가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협상을 타결 짓기 위해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돼왔다. 이는 북한의 협상 의도가 비핵화 이행이 아니라 한미동맹 균열을 노린 것이란 의구심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미국과의 접촉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게 한미 정부의 입장이며 문재인 대통령도 이를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북미 수교를 통한 경제 개발로 전략 변화를 보이고 있어 오히려 북미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의 존재를 인정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주한미군 감축 지시 보도를 전한 NYT도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과의 협상 카드로 의도된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4일 미국총기협회(NRA) 연례총회 참석차 텍사스주 댈러스로 향하는 길에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기자들과 만난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일시와 장소가 결정됐다”며 “한국에서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문제는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가 평화협정 체결 이후 주한미군의 성격과 규모에 대한 차원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궤도에 오르고 개혁 개방을 통해 북미 관계가 정상화 된다면 주한미군의 성격이 재규정될 필요가 있다는 게 학계나 외교가의 중론이기 때문이다. 남북이 핵무기 뿐만 아니라 재래식 무기감축 논의에 들어가면 주한미군의 규모도 영향을 받게 된다. ‘포린 어페어스’ 기고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 주둔을 정당화하기 어려울 것이다”고 언급해 논란을 빚은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도 이날 뉴욕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 게 아니다”며 “북미가 국교 정상화를 하면 자연히 주한미군을 계속 주둔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게 될 것이고 한국 보수 진영에서 그런 논의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으로 볼 텐데 이런 것을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해명했다.

NYT도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한반도 평화협정은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2만 8,500명의 주한미군 필요성을 약화시킬 것”이라며 이런 해석에 무게를 실었다. 미 정부 관계자들은 “주한미군의 규모와 배치에 대한 재고(再考)는 최근 대북 외교 접촉 상황과 상관 없이 이뤄졌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는 주한미군 감축 문제가 일각에서 우려하는 북한과의 협상용 카드가 아니라 향후 한국과 협상이 필요한 대목이라는 뜻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세계 경찰’ 역할 축소를 지향하고 해외 주둔 군대를 ‘비용’으로 인식해 주한미군 감축을 압박용 협상 카드로 꾸준히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한국에 무역에서도 돈을 잃고 있고 군대에서도 돈을 잃고 있다”고 말하는 등 한국과의 무역협상이나 방위비 분담금 문제와 연계해 주한 미군 철수 내지 감축을 시사하는 발언을 자주 해왔다.

문제는 장기 과제인 주한미군 감축 논의가 북미 정상회담을 코 앞에 둔 미묘한 시점에서 도마에 올랐다는 점이다. 북한의 의도에 대한 경계심이 가시지 않은데다,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성까지 결합돼 남북 대화에 대한 국론 분열과 한미간 균열 등의 혼선을 초래할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이 평화협정 체결 이후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국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그 동안 꾸준히 제기돼왔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NYT 보도에 대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핵심 관계자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며 “미국을 방문중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백악관 관계자와 통화 후 이 같이 전해왔다”고 긴급 진화에 나섰다. 이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이 직접 “트럼프 대통령이 미 국방부에 주한미군 병력 감축 옵션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없다”며 “완전한 난센스”라고 해명했지만 갈등의 불씨가 완벽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주한미군의 존재는 한미동맹의 절대적 상징으로 받아들여지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비용과 협상 카드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에도 이 문제가 돌출될 개연성이 커 정부가 면밀히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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