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외도, 전남편은 성매매… “사람을 믿을 수 없어요”

입력
2018.04.30 04:40
28면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Q

멋모르던 20대 초반 덜컥 임신해

낙태하고 싶지 않아 결혼 선택

아이는 죽고 나는 성병에 걸려

엄마가 전남편과 같은 행위 끔찍

새로 만난 애인 신뢰하고 싶지만

자꾸 남자는 다 똑같다는 생각이

A

자기정체성 확립 시기에 큰 상처

공허함 채우려 성급한 결혼

가장 가까운 이들에 신뢰 잃어

분노ㆍ배신감이 삶에 계속 악영향

딸이 아닌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어머니와 진솔한 대화 시작하길

20대 초반 결혼했다가 이혼한 20대 여자입니다. 이혼 이후로 다른 사람을 믿는 걸 포기하게 된 것 같아요. 혼자 사는 게 가장 안전하게 느껴지거든요. 연애 감정을 갖고 있는 남자는 물론, 다른 사람들이 제게 거짓된 행동을 하는 건 아닐지 불안해 할 때가 많아요.

전 남편은 저보다 다섯 살이 많았어요. 성인이 돼 처음 만난 남자친구였습니다. 성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도, 개념도 없는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임신을 하게 돼 결혼까지 하게 됐어요. 돌이켜보면 사랑이라는 감정보다도,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어요. 그 당시 상대방이 누구였더라도 결혼이라는 선택을 했을 것 같아요. 낙태를 고려하는 사람들을 무책임하다고 부정적으로 보아온 제가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결혼한 것 같아요.

양가 부모님의 경제적인 도움을 받아 일반적인 결혼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출산 한달 전, 남편이 성매매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성매매 그 자체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처음 임신한 걸 알고 함께 병원에 가기로 한 바로 전날 업소에 갔다는 거예요. 게다가 전남편은 결혼식을 올리고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도 성매매를 했더군요.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출산했어요. 하지만 아이는 원인불명의 패혈증이라는 병명으로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성병 진단을 받았고요. 모든 게 남편 때문인 것 같았지만 차마 성병 검사 제안을 해보지도 못했어요.

그 후로 저는 그 사람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고 있던 전남편의 휴대폰 비밀번호를 밤새도록 풀려고 시도했어요. 미친 사람인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채팅으로 알게 된 여자와도 대화를 나눴더군요. “저 때문에 외로웠다”고 변명하면서요. 서럽게 울면서 말하는 모습에 다시 한 번 그 사람을 받아줬어요.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제 스스로 그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 했다는 확신이 들어 이혼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저는 외도에 대한 아픈 기억이 하나 더 있어요. 고등학생 때 우연히 엄마 휴대폰에서 다른 남자와의 외도 메시지를 발견한 적이 있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충격이었어요.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어 동생하고만 이야기했습니다. 엄마는 아직도 저희가 아는지 모를 거예요. 그 후로 제가 대학생 때도 또 다른 사람과의 외도 메시지도 보게 됐어요. 엄마가 지금까지 그 관계를 이어가는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엄마가 무슨 말을 해도 다 거짓처럼 느껴져요. 표면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모녀 사이지만 아무래도 엄마가 하는 말들을 믿기가 어렵네요.

저희 집은 지극히 평범했는데, 엄마와 친할머니의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일찍이 남편과 사별한 할머니의 삶에 아빠가 너무 큰 존재였기 때문이었을까요? 중고등학생 시절 할머니가 잠깐 저희 가족과 함께 살았습니다. 엄마는 같은 공간에서 최대한 할머니를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 것 같아요. 가족이 다 함께 밥 먹은 기억도 잘 나지 않아요. 엄마에게 이 시간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유일한 탈출구로 외도를 택한 것인지도 생각해봤어요.

인간으로서 엄마도 그럴 수 있다고 머리로는 이해해보려 하지만 마음으로는 잘 되지 않네요. 어떤 이유에서라도 외도는 가장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가장 사랑해야 할 엄마가 제가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전남편과 같은 행위를 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끔찍합니다. 우리 엄마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믿고 싶지 않아요.

전남편과 이혼 후 몇 년이 지났습니다. 학창시절 동창이었던 친구와 우연히 만나 연애를 시작했어요. 누군가 처음으로 저를 진심으로 이해하려 노력하고 함께 아파해주고 있다고 느껴졌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남자는 다 똑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 제가 가장 믿는 사람이지만, 여전히 거리를 만들고 있고, 이 사람이 휴대폰을 보고 있으면 불안한 감정이 올라와요. 혹시 제가 트라우마로 인해 정말 믿어도 되는 이 사람의 진심마저 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들어요.

저도 이제 과거 일에 대해 태연해지고, 다른 사람을 신뢰하고 싶어요. 전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까요?

조영은(가명ㆍ29세ㆍ학생)

영은씨의 사연을 읽으며, 영은씨의 마음 속에서 피어 오르는 힘든 기억들이 느껴졌어요. 영은씨의 마음은 지금 어지러운 상태 같아요. 전남편으로 인해 겪은 상처부터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오는 혼란까지, 이 시간들을 견뎌 오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영은씨가 이야기 한대로 영은씨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원인은 불신이에요. 게다가 영은씨의 신뢰를 앗아간 사람들은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입니다. 어머니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후 자신의 뿌리와도 같은 존재인 어머니를 믿기 어려워졌어요. 이 사실을 자신보다 어린 동생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는 점도 영은씨 마음의 상처를 더욱 크게 했을 거예요.

영은씨가 어머니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건 청소년 때인 고등학생 때였어요. 이 시기는 성정체성을 포함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고민하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인식과 다른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 사이의 격차를 줄여가며 일관된 나를 만들어가는 시기예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여러 갈등을 풀어가는 문제 해결 방식에서도 일관성을 갖게 되지요. 다시 말해 영은씨는 이러한 성정체성과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시기에 큰 타격을 입은 것이라 할 수 있어요.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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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외도 자체도 자식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만 영은씨가 여성이기에 어머니의 외도는 영은씨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을 것 같아요. 영은씨가 자식으로서 보아온 어머니, 그 동안 알고 있던 어머니, 여자로서의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마음 속에 아버지가 아닌 다른 남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어머니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하는 혼란이 차 올랐을 거예요. 자식들은 부모가 자신을 목숨만큼 사랑할 거라고 본능적으로 생각합니다. 그 정도의 굳건한 신뢰가 있는 관계예요. 그런데 어머니가 영은씨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게 됐어요. 어머니의 외도는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했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영은씨 스스로가 어머니의 가장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버린 거예요. 어린 영은씨는 얼마나 외롭고 혼란스러웠을까요? 그 후로 어머니가 영은씨에게 잘 대해줄 때도 가식이라고 느껴졌을 것 같아요. 게다가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었지요. 외도를 한 건 어머니지만, 가족들이 이 얘기를 알게 되면 영은씨의 가정이 깨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10년을 버텨온 건 영은씨였던 거예요. 마음의 고립이었어요.

어머니의 외도 사실은 영은씨가 이성과의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 데 어려움을 주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영은씨는 전남편과 결혼을 할 때 ‘그 상대가 누구였어도 결혼이라는 선택을 했을 것 같다’고 말했어요. 마음이 고립 돼 있어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아주 밀착된 가까운 사람이 필요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머니 뱃속에서 있을 때만큼의 친밀감이 필요했던 거예요. 그런 관계는 촉감을 공유하고 한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부부이고요. 영은씨는 임신중절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됐다고도 했어요. 영은씨가 결혼을 선택할 정도로 강하게 가졌던 아이에 대한 책임감도, 어떠한 위기에서도 목숨을 던질 만큼 자식을 사랑하는 게 어머니라고 믿었던 신뢰의 상실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요.

하지만 영은씨, 나의 옆에 가까이 있으면서 나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는 친밀한 사람이라고 해서, 삶을 공유하고 싶은 사랑의 감정을 지닌 사람이 되는 건 아니에요. 저는 영은씨가 친밀한 감정과 사랑을 헷갈려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남편과의 결혼생활은 성인 간의 성숙한 사랑이 아니라, 영은씨 말대로 몸과 마음이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결혼이었던 것이지요.

상황과 대상은 다르지만 어머니로부터 느꼈던 고통스러운 감정을 영은씨는 전남편으로 인해 다시 느끼게 됐어요. 영은씨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데, 영은씨의 마음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인생이 망가진 것처럼 느껴졌을 거예요. 어머니의 외도를 알게 된 순간의 혼란은 서로를 가장 믿어야 할 사이인 부부 사이의 신뢰감 상실로 되살아났어요. 남편에게 성병을 옮은 것인지조차 물어보지 못했던 건, 영은씨가 어머니의 외도를 발견하고도 10년 동안 그 책임을 떠안고 있었던 것과도 유사해요. 그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가정이 무너지고, 그 책임이 영은씨에게 전가될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혼란마저 그대로 다시 느껴버렸어요. 영은씨는 마음이 여리고 착한 사람이에요. 밖으로 꺼내 확인하는 것마저도 버거워서 회피해 버린 사실들이 해결하지 못한 고통과 혼란스러움으로 영은씨 마음 안에 대롱대롱 매달려 남아있는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영은씨의 마음 안에 어머니에 대한 불신과 그로 인한 혼란, 분노와 배신감, 외로움 등이 그 이후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걸 알아차려야 한다는 거예요. 이걸 해결하지 못하면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처럼 또 다른 가깝고 친밀한 사람과도 같은 갈등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돼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더 친밀하게 지내고 싶은 당연한 감정이, 마음속에 남아있는 혼란의 감정으로 돌아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바뀌어 버릴 테니까요. 그 마음을 당연히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예전의 마음을 계속 갖고 있는다면 혼란의 감정은 더욱 무거워질 수밖에 없어요. 과거의 무게까지 더해지니까요. 그래서 저는 영은씨가 어머니와 전남편으로부터 경험했던 일들을 그들과 전혀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과도한 일반화에서 조금씩 벗어나주면 좋겠어요.

영은씨,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야 해요. 인생에는 좋은 일과 기쁜 일만 있는 건 아니에요. 슬픔과 좌절, 고통과 분노, 억울함과 안쓰러움까지 다 겪어내는 게 우리의 삶이에요. 저는 영은씨가 그런 대화를 시작해보길 권하고 싶어요.

궁극적으로 어머니의 외도로 인한 깊은 갈등을 감정적으로 해소해야만 누구를 만나더라도 신뢰를 가진 관계의 첫 발을 내디딜 수 있을 거예요. 물론 꺼내기 어려운 대화 주제일 거예요. 힘들 것이고, 대화를 한 후에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기에 조언을 드리는 저도 조심스러운 마음이에요. 하지만 어머니와의 소통은 문제 해결의 첫 걸음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외도를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영은씨가 어머니의 삶을 들어보면 좋겠어요. 딸로서 어머니를 용서하기는 어렵지만, 인간으로서, 혹은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대화를 해보면 좋겠어요. 어머니의 결혼생활이 어땠는지, 왜 그랬는지, 그리고 고등학생 때 그 사실을 알게 된 영은씨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이야기를 해 봐야 해요. 어머니의 외도 사실을 영은씨가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렵다면 영은씨가 겪었던 고통, 왜 어린 나이에 결혼까지 생각하게 됐는지, 유학생활에서 겪은 어려움, 남자친구와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시작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그리고 연애 관계에 있는 사람과도 조금 더 진솔한 대화가 필요합니다. 일거수일투족을 물어보는 건 행동에만 초점이 맞춰진 대화예요. 그보다는 속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더 자주 나눠보세요. 예전에 겪은 상처를 매일 대화 주제로 삼을 필요는 없지만, 그로 인해 영은씨가 힘들고, 의심하는 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건 이야기를 해야 해요. 그래서 ‘미안하다’고 말할 수도 있어야겠지요.

어머니에 대한 깊은 불신의 감정이 정리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고 결혼해 가정을 이루는 일이 계속 어렵게 느껴질지 몰라요. 그리고 영은씨가 치유된 마음으로 깊이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으면 하늘에서 축복으로 아이를 내려줄 것이라 믿어요. 저 역시 영은씨가 다시 한 번 엄마가 되는 벅찬 기쁨을 갖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정리=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지면을 통해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신청해 보세요. 사연은 한국일보 사이트(http://interview.hankookilbo.com/store/advice.zip)에서 상담신청서를 내려 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 지면에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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