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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 “발제 도중 ‘그만하라’며 끊기는 처음… 치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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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고, 날카로운 목소리에서는 격앙된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중요한 자리인 만큼 짜장면이라도 시켜놓고 얘기했어야 한다”, “여전히 진정성이 없다”, “의사 생활 20년 동안 이런 치욕은 처음이었다” 등 의료계와 정치계를 향한 쓴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메아리 치듯 쏟아졌다. 이 교수가 26일 한국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1시간 30분 동안 쏟아낸 내용을 한 단어로 정리하면 이렇다. 진정성. 정치인들이나 의학계나 모두 외상치료 분야를 살리겠다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24일 오후 국회도서관 421호에선 대한신경외과학회, 대한외과학회, 대학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대한비뇨의학회, 대한산부인과학회 등 이른바 외과학회 ‘빅5’ 수장들이 참여하는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대한민국 외과계의 몰락, 과연 돌파구는 없는가’라는 주제의 토론회였다. 외과 기피 현상에 따른 인력부족 현상, 외과계의 열악한 근무환경 문제, 전국 권역외상센터의 문제점과 대안 모색 등을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이 교수는 대한외과학회 특임이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밤을 꼬박 새워 2000년대 초반부터 쌓은 외상센터 관련 자료를 300페이지 분량으로 정리했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들은 물론, 정부 관계자까지 참석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하지만 행사 진행은 사실상 파행에 가까웠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특히 일부 언론에서 그가 일찌감치 토론회 자리를 뜬 국회의원들에게 ‘일침’을 날렸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선 “사실이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오히려 이 교수는 학회 인사들을 향해 강한 유감을 드러냈다. 의료계 발전을 위한 진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토론회 상황을 간략히 말해달라
“의원님들 바쁘신 건 나도 안다. 하지만 토론회에 참석했으면 최소한 보좌관 한 두 분이라도 남기지 않나? 조금이라도 (의료계를) 개선하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의원님들 위해 자료도 300페이지 넘게, 열심히 준비했다. 그런데 안 오시면 어떻게 해야 하나. 보좌관 한 분이라도 토론회에 있었다면 내가 이런 얘기 안 할 것이다.”
(이에 대해 토론회를 주최한 모 의원실 관계자는 “토론회 날짜가 워낙 급박하게 잡혀 후속 일정 조율이 힘들었다”고 밝혀왔다.)
-의원들 향해 “호통쳤다”, “일침을 놨다”는 기사도 나왔는데
“호통은 무슨. 완전 오보다.”
-그럼 어떻게 된 건가
“내가 발제를 하는데 의원 분들 하고, 보좌관님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제가 ‘의원 분들 어디 계시냐. 손 좀 들어보라’고 말했던 게 ‘일침을 놨다’는 식으로 기사가 나갔다. 내가 정말 ‘의원 어디 갔느냐’는 식으로 말했다면 이 바닥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겠느냐. 그런 자리에 보건복지부 사무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의사들이 있는 힘을 다해 달려들어 현안을 설명해야 한다. 나는 (행사에 참석한) 학회 인사들도 문제라고 본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의원과 의원실 관계자들이 토론장을 일찍 빠져 나갔다. 그러자 ‘중요한 사람들도 없는데 더 무슨 토론회를 진행하느냐’는 분위기가 학회 사람들 사이에서 감돌았다. 그때 내가 발제 중이었는데, 행사 좌장(사회자) 역할을 맡은 한 학회 인사가 발제를 끊었다. 당시 행사에는 복지부 국장(이기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이 남아 있었다. 끝까지 남아준 게 고마워서 이 분이라도 모시고 내가 준비한 외상센터 관련 발제를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장에게 다시 이런 의사를 전하고 발제를 이어갔다. 그런데 5분 뒤쯤 화를 내며 ‘정말 안 끊냐’고 하더라. 치욕스러웠다. 20년 의사 생활 동안 발제 하다 끊긴 건 처음이었다. 너무 화가 나 그냥 (회의실을) 나와버렸다. ”
-외과 5대 학회 수장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게 그렇게 힘든가
”의사 생활을 하면서 (이런 자리는) 처음 봤다. 의사들끼리 학회를 하면 보통 서울역 근처에 있는 음식점에서 모여 회의하고 헤어진다. 그만큼 이번 토론회가 이례적인 자리였다는 거다. 그런 만큼 자리에 남아있던 복지부 국장을 향해 끝까지, 진정성을 가지고 의사들이 의료계 발전 방안을 설명해야 했다. 밥 시간이었으면, 짜장면이라도 시켜놓고 복지부 국장과 얘기했어야 했다. 그런데 안 했다. 이건 큰 문제다. 복지부 국장은 우리 목에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이다. 어떻게든 복지부에 (우리) 의견을 전달해야 했다. 내가 봤을 때는 말로만 ‘죽겠다’, ‘죽겠다’ 하는 것 같다.”
-’위기의식’이 부족하다는 소리인가
“그렇다. 사실 이 분야에 관심이 없는 거다. 행사에 와서 사진만 찍고 가는 의원들이나, 발제를 끊는 학회 인사나 마찬가지다. 특히 의사들은 ‘적당히 하자’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문제가 생기면) 이를 악물고 달려들어야 한다. 정말 (외과 분야가) 심각한 인력난을 비롯해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다면 (듣는 사람 없다고) 중간에 발제를 끊고 이러겠는가. 당장 자기 목에 정말 칼이 들어와도 그럴 수 있을까.”
이 교수는 외상의학계를 대하는 정치인들의 태도가 예전과 비교해 많이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아덴만 여명작전 등으로 외상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2011년만 해도 의원들이 ‘진정성’을 갖고 이 분야에 달려들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이 교수는 주승용 당시 민주당 의원,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의원에 감사함을 나타냈다. 주 의원은 보좌관을 아주대 외상응급센터로 보내 1달 동안 살게 할 정도로 진심을 다했고, 나 의원은 당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 수술 브리핑 당시 직접 대강당까지 빌려주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 새벽 1시 아주대 수술실에 불쑥 찾아올 정도로 외상의학에 관심을 보였던 허윤정 민주당 전문위원에게도 고마움을 나타냈다.
-사족이지만, 이번에 의사협회 회장으로 당선된 최대집씨에 대한 잡음이 많다.
“최대집 회장 당선도, 이번 토론회 파행과 무관하지 않은 일이라고 나는 본다. 지구상에 어느 의사들이 빨간 띠 머리에 두르고 노조 파업하듯이 파업을 하나. 학회장 같은 의료계 고위 인사들이 (정부와 의사들 사이에서) ‘범퍼’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그걸 안 하고 있는 거다. 왜냐. 자기는 이미 많은 걸 이뤄놨으니까. 그러니 평범한 의사들이 빨간 띠 두르고 거리에 나선 거다. 최 회장 당선도 그런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 학회장조차 의원들 없다고 회의를 중단시키는 마당에 국회에 우리 의사들의 절박함, 진정성이 어떻게 전달되겠나.”
-말끝마다 답답함이 느껴진다.
“심각하다. 많은 의사가 착각하는 게 있는데, 의사는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정책의 도구다. 우리가 학문적으로 뛰어나고, 환자들을 살릴 순 있다. 하지만 도구에 불과하다. 그런데 최상위 수준의 정책 결정권자(복지부 국장)가 앞에서 자료 받아 적고 (열심히) 듣고 있는데 그걸 끊어버리면… 지금 같은 의사들 자세로는 절대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정책도 바뀌지 않는다. 다른 건 몰라도 그건 확실하게 알고 있다.”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남우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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