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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2007보… 택배기사는 1분도 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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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당 한푼 없는 분류작업 선 채로 5시간
쏟아지는 상자에 눈 못 뗀 채 컵라면 끼니
전화만 200통… 택배는 감정노동
16년차 베테랑도 고객 응대는 진땀
13시간 노동에 열량소비 3838㎉
“몸이 밑천, 다칠까봐 급해도 안 뛰어”
이른바 ‘다산 신도시 사태’를 비롯해 택배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지만 정작 택배기사 본인들은 여기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개당 몇 백원 하는 배송 수입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면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쉴새없이 상자를 날라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View&(뷰엔)’팀이 주 6일 근무에, 하루 12시간을 훌쩍 넘겨 일하는 ‘평범한’ 택배기사의 하루를 사진과 데이터로 기록, 정리해 보았다. 그가 이동한 거리와 도보 수, 심박 수 등을 수집하는 데는 생체 데이터 측정 센서와 GPS가 장착된 스마트워치를 활용했다.
#분류 작업만 5시간, 15분 만에 2끼 뚝딱
18일 오전 6시30분 충남 아산시 좌부동의 한 택배 터미널. 16년차 택배기사 여성윤(44)씨가 분류기 벨트 앞에 섰다. 벨트에 실려 쉼 없이 전달되는 상자들 중에서 본인의 배송구역 물품을 분류하는 것으로 그의 일과가 시작됐다. 잠깐 한 눈을 팔면 물품이 순식간에 밀려 쌓이기 때문에 편하게 앉아서 할 수 없는 고된 작업이다. 상자에 시선을 고정한 채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운 여씨는 5시간 가까이 계속된 분류작업 도중 점심식사까지 뚝딱 해치웠다. 여씨는 “비수기라 이게 가능하지 성수기 땐 꿈도 못 꾼다”며 트럭 적재함 문을 닫았다. 시계는 오전 11시20분을 가리켰다. 분류작업은 따로 수당이 나오지 않는다.
#문자메시지 300통, 통화 200통
이날 여씨가 나를 물품은 총 308개, 이 중 배송이 278개, 발송 및 반품은 30개다. 운송장을 일일이 단말기로 인식한 뒤 배송 예정시간을 문자메시지로 고객에게 통보했다. ‘경비실에 맡겨 달라’ ‘문 앞에 두고 가라’는 등의 답장은 미리 정리해 둬야 배송 일정이 꼬이지 않는다. 배송하는 틈틈이 고객과 나눈 통화만 200통에 달했다. 오랜 경력의 베테랑이지만 고객 응대는 매번 쉽지 않다. 이날도 “현관 앞에 두고 가라”는 말에 “분실 책임은 못 진다”고 했다가 불쾌한 소리를 들었다. 택배기사는 감정 노동자다.
#차로 70㎞, 도보로 17.8㎞
운송장 정리를 마친 여씨가 트럭에 시동을 건 시간은 12시17분. 외딴 농가부터 고층 아파트까지 다양한 배송 구역 특성상 배송지 간 이동 거리가 만만치 않다. 이날 총 이동 거리는 98.1㎞, 그중 17.8㎞는 22,007걸음을 걸어서 이동했다. 계단이나 비탈길을 걸어 오른 고도는 51층 높이였고 운전석도 140번 오르내렸다. 여씨는 “그나마 내 구역엔 트럭이 못 들어가는 아파트가 없어서 다행”이라며 웃었다.
#몸뚱이는 밑천, 절대 뛰지 않는다
택배기사에게 몸이 곧 자산이다. “급하게 뛰다 발목이라도 접질리면 큰 일이다. 대타를 못 구하거나 빨리 회복하지 못할 경우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여씨가 아무리 급해도 뛰지 않는 이유다. 체력 소모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이른바 ‘똥짐(무거운 짐)’ 앞에선 소용이 없다. 대형 상자를 옮기는 동안 심장 박동수는 127bpm까지 치솟았다. 이날 여씨가 소비한 열량 3,838kcal는 성인 남성 평균치(2,200~2,400kcal) 보다 월등이 높았다.
#수수료는 10년 전 그대로
“물건 하나당 수수료 수입은 800~960원으로 10년 전이나 비슷하다. 출혈 경쟁이 심한 곳에선 이보다 못 받는 사람도 많다.” 오후 7시40분 긴 하루를 끝낸 여씨가 텅 빈 적재함 문을 닫으며 말했다. “여기서 대리점 수수료10~20%, 기름값, 차량 유지비, 보험료 떼고 나면 실제 수입은 얼마 안 된다. 물건 파손 비용도 떠안아야 한다. 그렇다고 욕심 부리다 몸이라도 망가지면 그땐 끝이다.” 이날 그는 13시간 10분간 일하면서 단 1분의 휴식도 취하지 못했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그래픽=강준구기자 wldms4619@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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