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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 군사대결 종식 선언… 제2의 몰타회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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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 경험과 조언을 듣는다
<2>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김정일, 2005년 핵담판 때
“선대 유훈” 후 6자회담 복귀
군사 위협 해소ㆍ체제 보장 목표로
김정은 나름대로 그림ㆍ시간표 명확
그래서 비핵화 감수하려는 것
문 대통령 ‘북방경제’의 꿈 실현
김정은 ‘사회주의 부귀영화’ 위해
한반도 평화 정착에 주도적 나서
북 핵실험장 폐기 등 성의 표시
트럼프, 테러지원국 제외할 수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먼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우려를 해소하거나 풍계리 핵 실험장을 폐쇄할 것이다. 그 다음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차례다.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제외할 수도 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이 18일 본보 인터뷰에서 예상한 북미 간 신뢰구축 시나리오다. 4ㆍ27 남북 정상회담의 성패를 가를 최대 관건인 비핵화에 대해 묻자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신뢰가 없어 서로를 믿게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실제로 북한은 이틀 후인 20일 김 위원장 주재로 열린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핵 실험과 ICBM 발사시험을 중지하고 공화국 북부 핵 시험장을 폐기할 것”이라고 결정했다. 역시 국내 정국과 남북 정세를 내다보는 정 의원의 촉은 남달랐다.
그래도 비핵화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한 게 사실이다. 그러자 정 의원은 2005년 6ㆍ15 당시의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대통령 특사로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5시간 동안 비핵화 담판을 벌였다. ‘통 큰 결단’을 거듭 촉구하자 김 위원장이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고 답하면서 같은 해 9ㆍ19공동성명을 이끌어내는 촉매제가 됐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이 13년 만에 정의용 특사에게 ‘선대의 유훈’이라는 말을 다시 꺼내면서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지난 6년간 불편했던 북중관계도 일거에 복원된 것”이라며 “김일성 주석의 뜻을 받들어 손자인 김 위원장이 비핵화의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고 평가했다.
결단의 배경은 무엇일까. 정 의원은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보장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자신만의 그림과 시간표가 분명하다”며 “그래서 비핵화라는 대가를 감수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번 회담은 2000년 1차 정상회담 이후 18년 만에 한반도 냉전체제가 해체로 접어드는 세리머니”라며 “제2의 몰타회담(1989년 미소가 냉전을 끝낸 회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친 김에 정상회담 합의문을 점쳐달라고 부탁했다. 정 의원은 “남북 정상은 군사대결 종식을 선언할 것”이라며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지대화, 남북 상호 대표부 설치,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경제공동체 추진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인터뷰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1시간 20여분간 진행됐다.
_이렇게 상황이 급변할 줄 알았나.
“4개월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에 전쟁 발언이 난무했다. 난 6ㆍ15 이전에 남북 정상회담을 열자고 줄곧 주장해왔다. 특사를 북한에 빨리 보내라고 했다. 지난주 정상회담 자문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런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고 믿었다. 한반도 대전환의 시간을 이끌어 가는 것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내 운명을 어떻게 남에게 맡기느냐’고 답했다. 울림이 컸다. 대통령의 진정성이 묻어났다.”
_어떤 울림인가.
“전쟁 위기로 치닫던 한반도 운명의 코스를 평화 프로세스로 만들었다. 남북이 상호 소통으로 이뤄낸 것이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큰 꿈을 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 ‘조선반도를 지정학의 피해자로부터 수혜자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는 김 위원장이 언급이 인상 깊다. ‘아, 역사의식이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4대 강국에 빙 둘러싸여 지난 100년간 나라가 망했고 전쟁을 치렀고 분단이 됐다. 불안정한 평화 속에서 70년을 살았다. 지정학의 저주다. 이것을 축복으로 만드는 게 역사의식이다.”
_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꿈은 같은 곳을 향해 있나.
“그렇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강조했다. 북방경제의 꿈이다. 김 위원장의 꿈은 삼시 세끼 먹는 게 아니다.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다는 것이다. 중국과 베트남이 성공모델이다. 북한이 꿈을 이룰 때 우리도 북방경제의 꽃이 핀다. 러시아에 갔더니 한목소리로 ‘강대국의 힘이 아니라 남북의 독자적 외교로 한반도 정세를 바꾼 것이 굉장히 놀랍다’고 하더라.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꿈을 일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남북관계의 현실이 상상을 뛰어넘고 있다. 지난 10년간 적대적 세월 속에 익숙해진 관성적 사고를 깨뜨려야 한다.”
_김 위원장은 어떤 스타일인가.
“수차례 평양에 다녀와 김 위원장을 자주 만난 러시아 인사에게 물었더니 ‘고등교육을 받아 학식이 있고, 당당하고, 대화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 중 ‘북한 주민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청와대에도 이 말을 전했다.”
_부친 김정일과 비교한다면.
“김정일보다 김정은의 스케일이 더 크다. 그래서 전략적 결단을 내릴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수동적이었다. 1ㆍ2차 정상회담 때 우리가 나오라고 설득했다. 반면 3차 남북 정상회담은 김정은 위원장이 주도했다. 먼저 여동생 김여정을 청와대에 보내 정상회담을 제안하고, 우리 특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회담을 제안했다. 이처럼 능동적이다. 자신만의 그림과 분명한 목표가 있다. 그래서 하나를 받으면 다른 것을 내려놓을 수 있다.”
_이번 회담에서 종전선언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데.
“우리가 더 이상 적이 아니라는 의미다. 남북 정상은 ‘군사적 대결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할 것이다. 2007년 10ㆍ4 선언을 통해 종전선언을 추진하자고 했지만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갔다. 1991년 기본합의서에도 남북이 체제 인정하고 비방 중지하는 내용이 다 들어가 있다. 하지만 국회 비준을 받지 않아 조약이 아닌 합의서에 그쳤다. 합의 이후 야당의 협력이 중요하다. 그래야 이르면 8ㆍ15 이전에 2차 정상회담이 열리고 회담이 정례화돼 남북이 적에서 친구로, 형제의 관계로 바뀔 수 있다.”
_관건은 비핵화인데.
“김 위원장은 비핵화에 대한 ‘앙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표명은 이번에 해야 한다. 포괄적 의미에서의 비핵화, 즉 핵 포기를 선언하고 약속하는 것이다. 트럼프가 최근 ‘Mutual Respect(상호존중)’라는 말을 두어 번 썼다. 북한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다. 자신을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정의용 특사에게 김 위원장이 ‘동등한 조건에서 대화하고 싶다’고 한 것과 같다.”
_북한은 진정 비핵화 의지가 있나.
“2005년 6ㆍ15 특사로 평양에 갔을 때도 지난해처럼 상황이 좋지 않았다. 2차 핵 위기에 미국 부시 대통령은 군사옵션을 거론했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같은 질문을 세 번 했다. ‘북한의 목적은 핵 보유 아니냐’고 하자 김 위원장은 ‘그렇지 않다. 미국이 우리를 압살하려 하기 때문에 자구책으로 개발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래서 ‘그렇게 말해도 국제사회가 믿지 않는다’며 되물었더니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 적대관계가 해소되면 와서 보면 될 것 아니냐’고 응수하더라. 이에 ‘그래도 남쪽의 보수세력은 안 믿는다. 결국은 핵 포기 안 한다’고 다시 물었다. 김 위원장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조선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털어놓더라.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제껏 듣지 못한 말이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유훈은 최상급의 표현이다. 북한에서 헌법이나 노동당 강령보다 위에 있다. 이후 북한은 6자회담에 바로 복귀했다. 지난번 정의용 특사가 갔을 때 김정은 위원장이 ‘선대의 유훈’이라는 말을 다시 꺼냈다. 비핵화 합의의 기반이 될 중요한 기준이다.”
_정상회담이 하루에 끝날까.
“하루면 충분하다. 특사가 또 가서 문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말할 내용을 다 전달할 것이다. 2000년 1차 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이 임동원 장관을 특사로 보내 회담서 할 얘기를 미리 다 전해줬다. 뿐만 아니라 A4용지 10장으로 정리해 전달했다. 회담이 끝난 후 김정일 위원장은 ‘정말 도움이 됐다. 고맙다. 특히 문서로 주니까 사전에 충분히 남쪽 입장을 공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회담도 마찬가지다.”
_듣다 보니 이미 성공한 회담 같다.
“물은 99도에 끓지 않는다. 100도에 끓는다. 2000년부터 18년간 한반도의 냉전을 녹이려고 노력해왔다. 이제 100도가 됐다.”
◆정동영은 누구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2005년 통일부 장관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지내며 남북관계를 주도한 4선 국회의원(15ㆍ16ㆍ18ㆍ20대)이다. 정 의원은 1953년 7월 27일생이다. 정전협정이 체결돼 6ㆍ25전쟁의 포연이 멎은 날이다. 이후 그가 살아온 시간만큼 한반도는 비정상적인 휴전 상태로 남아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다룰 평화체제는 그의 평생 소명이라고 한다. 정 의원은 “2005년 북핵 6자회담 협상을 지휘하면서 9ㆍ19공동성명에 평화체제라는 네 글자가 들어갔을 때 가장 뭉클했다”고 말했다. 13년 전의 감회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떤 구체적 성과로 나타날지 궁금하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정혜지 인턴기자(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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