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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360˚] 시간에 쫓기며 주민 갑질 견뎌… 택배기사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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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이거 어떡해…”
시종일관 덜그럭거리며 제멋대로 나아가던 카트가 기어이 사고를 쳤다. 160㎝가 될까 말까 한 작은 키에 마른 몸이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카트 위로 산더미처럼 쌓아 올린 택배 상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진 뒤였다. 빼꼼히 솟은 얼굴에 일순간 아연한 표정이 스친다. “이래서 욕심을 부리면 안 되나 봐. 마음이 급해 한번에 가려고 쌓다 보니 이렇게 되네요. (웃음)” 입은 여유를 가장하며 웃어도 흩어진 물건들을 쫓는 눈은 다급하다. “오늘은 지난주에 도둑맞은 택배 물건들 신고하러 경찰서도 가야 하는데…” 눈 뜨자마자 운전대를 잡은 지 꼬박 12시간째 ‘근무 중’이다. 해는 저무는데, 이제 겨우 반을 끝냈다. 새벽 5시 반에 일으킨 몸이 새삼 무겁다.
“아유, 운전도 아주머니가 하셔? 남자가 하는 일인디… 힘들겄수.” 등 뒤로 꽂히는 딱한 시선은 다반사다. “아닙니다!” 익숙한 듯 씩씩하게 되받아 치는 그는 쉰한 살의 여성 택배기사다. 꽃샘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17일 오후, 그의 고된 하루를 따라가 봤다.
엘리베이터 전쟁부터 계단 레이스까지
“우리 집 거 어딨어? 우리 거 얼른 찾아서 먼저 줘요. 내려온 김에 갖고 올라갈 거니까. 빨리.”
2,000여 세대가 모여 사는 경기도 안산시의 한 대형 아파트 단지. 물건을 카트에 싣는 작업에 한창인 오씨 앞으로 다가선 한 60대 여성이 다짜고짜 묻는다. 정작 본인이 몇 동 몇 호에 사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어디신데요? 제가 금방 댁으로 갖다 드릴게요. 30분도 안 걸려요. (웃음)” 상냥한 오씨의 말투에 그가 돌아선 것도 잠시. 또 다른 누군가의 ‘빨리빨리’ 요구가 휴대폰에서 이어진다. “지금 집에서 나갈 거니까 그전에 당장 갖다 줘요.” 급한 마음으로 달려가 초인종을 눌렀다. 그런데 인기척이 없다. “어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좀 전에 전화 온 집인데…” 초조한 그의 혼잣말에 응답하는 건 닫힌 문 너머의 개 짖는 소리뿐.
배달하는 순서에 따라 차곡차곡 정리해 둔 박스더미에서 ‘특정 물건’을 빼내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1톤 트럭을 가득 채운 상자들을 하나씩 꺼내보며 송장 정보를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 “먼저 돌던 구역을 급하게 처리하고 후다닥 달려갔는데 막상 안 계실 땐, 정말 맥이 탁 풀리죠.” 하루에 약 200개, 시간당 최소 30~40개씩은 날라야 하루치 물량을 털어낼 수 있는 기사들에겐 1분 1초가 아깝다. “더군다나 전 여자라서 힘이 달리니까… 남성분들의 반 밖에 못해요. 주변에선 그래 가지고 어떻게 먹고 사냐며 걱정들이죠.” 그의 마음이 동료들보다 더 초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트럭과 아파트 사이를 왕복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카트에는 최대한 많은 물건을 싣는다. 가까스로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면 이젠 엘리베이터와의 전쟁. 카트를 끌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간 뒤 한 층 한 층 타고 내려오면서 차례로 배달을 하는 식이다. 지어진 지 30년이 다 돼가는 이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는 겨우 반 평 남짓. 카트 한 개가 들어차면 2명만 타도 숨이 턱턱 막힌다. 잠깐 내려 물건을 건네는 사이, 닫힌 엘리베이터가 1층으로 내려 가자 탄식이 들린다. “아 참, 이거 어쩌지.” 더디게 오르는 붉은 숫자를 보다 못한 그가 말한다. “계단으로 뜁시다.” 너무 오래 엘리베이터를 잡고 있던 탓에 당한 주민들 면박은 셀 수도 없다. “화요일이 제일 바빠요. 주말 주문이 다 몰려오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오늘이 이 아파트가 분리수거하는 날이지 뭐예요.” 빈 맥주 캔과 페트병을 바리바리 싸든 슬리퍼 차림의 남자가 한껏 어깨를 접으며 비집고 들어온다. 택배 상자가 높이 쌓인 카트를 한번, 빨갛게 눌려 있는 바로 아래층 버튼을 한번. 그 둘을 번갈아 쳐다보는 눈길에 오씨가 애써 웃으며 말한다. “먼저 가세요.” 명랑한 목소리지만 어쩐지 애잔하다.
“이00씨 맞으시죠? 박00씨도 이 집 사시는 거 맞고요?” 같은 호수지만 서로 다른 이름이 적힌 두 개의 택배 상자를 내려놓는 오씨의 표정엔 ‘혹시나’ 하는 걱정이 스친다. “배달 실수일까 봐요. 잃어버리면 100% 기사 책임이니까.” 고객이 주소를 잘못 적어 배달사고가 나도 잃어버린 물품에 대한 변상은 택배기사 책임이다. “다들 부재 시 경비실에 맡겨달라 하시는데, 경비실에 너무 많이 갖다 드리면 또 눈치가 보여요. 거기서 분실되면 그건 또 경비원 분들 책임이거든요.” 그런데 열 집 중 여섯 곳은 부재중이다. “택뱁니다!” 우렁찬 외침과 함께 힘껏 문을 두드려도 돌아오는 건 대부분 침묵. 그래도 지체할 시간이 없다. 얼른 돌아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잡고 남은 물량을 훑어 본다. 문이 열리면 오가는 주민들의 눈치를 살피며 또다시 초인종 누르기의 무한반복. 동시에 다섯 개가 넘는 일을 처리하면서도 머리로는 남겨진 시간을 계산하기에 바쁘다. 몇 달 전,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15층까지 택배박스들을 이고 계단을 뛰어 올라가야 했을 땐 눈앞이 깜깜했다. 되도록이면 으슥한 밤이 되기 전에 일을 끝내야 한다. 한밤중에 층계참을 걸어 내려올 때면 ‘어디선가 치한이라도 불쑥 나타나진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시달린다. 그렇게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는 순간들이 쉬지 않고 이어진다. 이런 하루하루가 모여 택배 기사의 삶이 된다.
“박스 두 손으로 들고 있어” 고객 갑질 다반사
“너 진짜 미친 거 아니니? 택배를 왜 거기에다 놔? 아오 씨X 열 받아.” 지난해 9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오씨가 고객으로부터 면전에서 들었던 말이다. 반말은 기본, 욕설이 섞인 폭언도 숱하게 들었다.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서 ‘욕은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하면 다들 ‘내가 언제 욕을 했냐’는 식으로 우기기 일쑤였어요.” 혼잣말처럼 뱉는 욕도 비수처럼 꽂히기는 마찬가지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서울지역 택배기사 500여 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 56.8%는 고객들로부터 폭언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문제는 고객의 갑질이 ‘폭언’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 저녁 9시만 넘겨도 “왜 이렇게 늦게 오냐”며 짜증을 낸다. ‘택배요!’하고 외치는 소리가 잘 안 들린다며 “그렇게 말하면 누가 알아듣냐”라고 핀잔을 주는 건 이제 애교 수준이다. 아예 공주님 시녀 부리듯 하기도 한다. “사람이 없으니까 문 앞에 택배를 놔둔 적이 있어요. 본인은 자기 물건이 그렇게 방치된 게 싫다고, 당장 다시 회수해 경비실에 갖다 놓으라고 하더라고요. 이미 그 동을 멀리 떠나온 상태라 ‘다음에는 꼭 경비실에 맡겨드리겠다’고 간곡히 양해를 구했죠. 그런데 바로 그 날 물건이 없어졌다며 항의가 들어온 거예요.” 실제로 물건이 없어졌는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고객이 경찰 신고도 없이 현금으로 손해 배상을 요청했기 때문. “그 고객한테 찍혔죠. 그다음엔 ‘절대로 택배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지 말아라’ ‘내가 문 밖으로 나올 때까지 두 손으로 상자를 받치고 기다려라’는 등 온갖 이상한 요구들이 이어졌어요.” 건당 떨어지는 돈이 겨우 700원인데 물어낸 돈은 8만 원이었다. 손해도 손해지만 마음에 난 생채기가 더 쓰라렸다.
누가 봐도 노동자인 ‘무늬만 자영업자’
“여론이 떠들썩한 게 처음인 거지, 현장에선 예전부터 있던 일이에요. 우리 지역에도 택배차량 진입이 금지된 단지가 있어요. 거기 담당도 저 같은 여자예요. 이런 자그마한 카트 끌고 다니면서 혼자 다 하시죠. 단지가 크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지.” 지난 2일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신도시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이른바 ‘택배 대란 사건’(☞관련기사 “택배차량 출입금지” 아파트 ‘갑질’ 공문 논란, 내막은?)은 이미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다. 별 달리 할 수 있는 건 없다. ‘내 구역에서 만큼은 제발…’ 운에 기대는 것이 전부다.
“저번 주부터 손목이 너무 아파요. 토요일 하루 쉬는데 치료는 고사하고 병원 한 번 갈 시간이 없더라고요.” 아파도 참는다. 대신 일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병가라도 내려면 얼마간 오씨의 구역을 맡아 줄 ‘대타’를 구해야 한다. 직접 구하지 못하면 인근 구역의 기사들이 쪼개서 맡는데, 그러다가 아예 일자리가 사라져 버리는 경우도 있다. 산재 처리도 불가능하다. “택배기사들은 엄밀히 말하면 노동자가 아니에요. 대리점에 예속돼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개인사업자로 등록된 특수고용직이죠. 고용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 업무위탁계약을 맺은 거라 자영업자예요. 4대 보험 적용도 못 받죠.” 그래서 주 52시간 근로도, 올라간 최저임금도 모두 남 얘기일 뿐이다.
권리는 없는데 의무는 있다. 매일매일의 성과를 애플리케이션에 기록해 CS(고객 만족)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 실적을 근거로 재계약 시즌마다 압박을 받는다. “웃긴 건 이 애플리케이션 이용료도 택배기사가 부담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들에 따르면 우린 엄연히 자영업자인데, 유니폼까지 입으라고 강요한다니까요.” 물론 유니폼 값도 기사 부담이다. 부피나 무게가 큰 상품의 경우 건당 1,000~2,000원까지도 받아야 하지만 제값으로 처리해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누가 봐도 노동자예요. 하물며 정부가 우리 노조 활동을 공식 허가까지 해준 마당에 자기들 편할 때만 자영업자죠.” 아직도 대리점주들은 노조 가입을 노골적으로 방해한다. 안산에 노조가 생긴 지 4개월 째지만 가입률은 20%대에 그친다.
천막 아래 ‘물건 분류’ 무급 노동 7시간
“가장 힘든 건 ‘까대기’(분류 작업)가 아닐까요. 오전 7시에 시흥에 있는 물류 터미널로 나가서 꼬박 5시간, 길게는 7시간까지도 분류 작업을 해요. 오늘처럼 물량이 많은 날은 거의 오후 2시 가까이 돼야 배송에 나설 때도 많죠.”
‘까대기’라는 업계의 은어로 불리는 ‘분류 작업’은 허브터미널에서 서브터미널로 배송된 물량들을 택배기사들이 자신의 구역별로 나눠 차에 싣는 작업이다. 정신없이 레일로 밀려오는 물건들에 깨알같이 적힌 송장을 하나하나 확인한다. ‘내 관할 구역’ 물건은 수작업으로 솎아 내야 한다. 이 모든 작업이 무급이다. “본사 입장은 배송 건당 수수료에 이 모든 대가가 포함돼 있다는 건데 말이 안 돼요. 물량은 하루가 다르게 느는데 수수료는 오르지 않으니까요.” 밥 먹을 시간도 없어 동료 기사들과 교대로 인근 백반집에서 후다닥 때우고 돌아오는 식이다. 오씨의 손목에 탈이 난 이유도 바로 이 분류 작업 탓이다. “터미널이라고 해 봤자 에어컨ㆍ난방은커녕 천막으로 하늘 가린 게 다예요. 지난겨울엔 그 한파 속에서 7시간을 꼼짝없이 서 있었어요.” 붙박이처럼 서서 물건을 골라내는 동안 손발 마디마디에 끔찍한 냉기가 파고들었다. 비라도 오는 날엔 천막 사이로 비가 샌다. 종이로 된 택배박스는 금세 너덜너덜해진다. 몇 시간에 한 번씩 마음먹고 다녀오는 화장실엔 휴지조차 없다.
“어제 노조에서 나온 안내문을 보니까, 이제는 본사에서 나오던 ‘대리점 운영지원비’까지 택배기사에게 부담할 예정이라고 하더라고요.” 대리점 운영지원비란 건당 20원씩 본사에서 대리점 쪽에 지급하던 일종의 ‘보조금’이다. 최근 경영상의 이유로 본사에서 이 지원비를 끊어버렸다. 수입원이 줄어든 대리점은 이 돈을 메우기 위해 택배기사들을 상대로 수수료를 인상했다. 본사의 ‘을’인 대리점이 반대로 택배기사에 ‘갑질’을 한 셈이다.
“다산신도시에선 지하주차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2.5m를 훌쩍 넘는 1톤 차량을 2.3m 미만의 ‘저상 차량’으로 바꾸라고 했다면서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에라도 그렇게 된다면, 그 모든 비용은 또 택배기사 부담이 될 거예요.” 귀찮거나 돈 드는 일을 가장 만만한 ‘을’에게 밀어내는 건 ‘갑’의 타고난 특기다. 고객 갑질, 대리점 갑질에 하다 하다 ‘슈퍼 갑’인 본사의 횡포까지 견뎌내야 하는 상황. 갑질 3종 세트의 ‘샌드백’이 되길 자처해야 하는 택배기사들의 처지는 사실 ‘을’이라기에도 모자라다. ‘갑을병정 무기경신임계’로 이어지는 서열 중 가장 마지막인 ‘계’ 정도가 아닐까. 물리고 물리는 이 관계에서 짓밟히는 것은 결국 힘의 피라미드 가장 아래쪽에 자리한 택배기사들이다.
100개의 문을 두드렸지만 “감사하다”는 말은…
“2층, 3층에는 엘리베이터도 안 서거든요. 2층에 배달할 무거운 물건이 있으면 4층에서 내린 다음 하나씩 짊어지고 내려와야 해요.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나. 2층에서 25kg짜리 쌀 다섯 포대를 한꺼번에 시킨 적이 있었어요. 카트에 담기지도 않았죠. 한 두세 번 왔다 갔다 하면서 4층에 옮겨놓긴 했는데, 그걸 짊어지고 내려오는 게… 정말 눈물 나게 힘든 거죠.”
한 포대가 오씨 몸무게의 반을 넘는 무게였다.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닦으며 다시 층계참을 향해 돌아서면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그때였다. 교복 입은 한 여학생이 씩씩하게 다가섰다. “도와 드릴까요?” 그게 어찌나 고맙던지, 지금까지도 잊히지가 않는단다.
기자가 동행한 17일 오후 한 나절 동안 오씨는 100가구의 초인종을 눌렀다. 배달 시작 1시간 만에 처음으로 등장한 “감사합니다”는 오후 7시를 넘기도록 다섯 번을 채우지 못했다. “그래도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허기져서 헐떡거리다가도 힘이 나요.” 돈 한 푼 안 드는 간단한 인사치레지만 아파트 인심은 박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한 단지 내로 들어온 검은색 승용차가 택배차량 옆을 지나가다 멈췄다. 차창이 슬그머니 내려갔다. 트럭을 지키고 선 기자의 뒷모습을 향해 운전석의 누군가가 야멸차게 소리쳤다. “아이 X, 차를 이따위로 세워 놓으면 어떡해!” 오씨가 경찰 진술에 응하기 위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였다. 돌아온 그에게 물었다. “이제, 저녁 하러 가시지요?” “아니요, 오늘은 쉬지 않고 해도 밤 10시를 훌쩍 넘길 것 같아서요. 밥은 이따 밤에.” 끼니도 거른 채 바지런히 몸을 움직여 흘린 땀의 품격이, 노동의 가치가 이토록 가벼워도 되는 것일까.
글ㆍ사진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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