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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원이 쓰러져도 멈추지 않는 곳 ‘마트 계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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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 나 오늘 두통이 너무 심해 도저히 일 못 나갈 것 같아. 관리자하고 통화 했는데 휴무자랑 바꾸라네”
2013년 6월 이른 여름날 아침, 10년 차 마트 계산원 A(45)씨는 동료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전부터 종종 두통이 있어 병원 진료를 잡아놓았지만, 그날은 유독 심했다. 관리자에게 아파서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하소연했지만 돌아온 것은 “대신 일할 사람을 먼저 구하라”는 답. A씨는 어쩔 수 없이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휴무 인원 다섯 명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야 했다.
아프면 대신 일할 사람을 구해라
A씨의 동료 정모(55)씨는 “그때 내가 근무를 바꿔줬어야 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정씨는 A씨의 연락을 받은 네 번째 동료였다. 당시 며느리가 수술을 앞두고 있어 같이 병원에 있어야 했던 그는 선뜻 A씨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다섯 번째 동료에게 마저 연락을 해보고 정 안 되면 다시 전화 달라고 당부하고는 전화를 끊어야만 했다. 하지만 A씨 연락을 받은 것은 정씨가 마지막. 다음 동료에게 연락을 돌리기 전에 A씨는 쓰러졌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뇌출혈이 원인이었다.
그날 이후 정씨와 동료들에게 A씨의 이름은 ‘금기어’가 됐다. 그를 살릴 수 있었다는 죄책감과 미안함, 아파도 마음 놓고 쉬지 못하는 일터에 대한 원망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한동안은 동료들과 눈빛만 마주쳐도 눈물이 나서 고개를 숙이고 일했다. 계산대에서 눈물을 흘리는 게 회사에 ‘누’가 될까 싶어 밖에서 눈물을 훔치고 돌아오는 동료도 있었다.
마음대로 아플 수 없는 곳. A씨를 비롯한 동료들에게 마트는 그런 일터였다. A씨와 같은 정도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을 뿐, 비슷한 경험은 대부분 겪었다. “폐렴 때문에 주사 좀 맞고 오겠다고 했더니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거절당한 적도 있어요.” 아프면 쉴 수 있는 당연한 권리를 찾기 위해서 정씨와 동료들은 노조를 결성했다.
구로 이마트 24번 계산대
3월 31일 오후 10시 30분쯤. 이마트 구로점 2층 24번 계산대에서 B(47)씨가 쓰러졌다. 마감을 30분 앞두고 정신없이 계산하는 시간이었다. B씨는 10여 분 뒤 도착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구급대가 도착하기까지의 10여 분 동안 마트 측의 초동 대처가 문제가 됐다. “필요한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심장 제세동기도 마트에 1대뿐”이라는 지적이 나왔으나 이마트 측은 필요한 대처를 했다고 반박했다. 10년간 마트에서 일한 B씨는 입사 동기들과 한 ‘10주년 여행’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하고 떠났다.
B씨가 쓰러진 이후에도 24번 계산대는 멈추지 않았다. 김경숙 마트노조 구로점 지회장은 “사고 당일 계산원들이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며 24번 계산대 마감을 거부했지만 사측에서 마감을 종용했다”고 밝혔다. 30분 전에 사람이 쓰러진 24번 계산대는 ‘성실하게’ 영업을 마감했고 다음 날까지 별일 없었다는 듯 손님을 받았다.
다른 지병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B씨는 “가슴이 답답하다”는 말을 주위 동료들에게 했었다. 게다가 B씨가 쓰러진 시각은 영업 종료 시각까지 채 1시간도 남지 않은 때여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는 시간대라는 것이 계산원들의 이야기. 차량을 주차한 고객들이 2층에서 계산하고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 유독 손님이 붐비기도 했다.
“같이 웃고 떠들고 사진도 찍던 동료인데 갑자기 떠났다.” 함께 일하던 이를 일터에서 잃은 동료들은 허망할 뿐이다. 국화꽃이 올려진 계산대를 보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 손님도 있지만, 계산에 바쁠 때는 제대로 설명도 하지 못하는 게 실정이다. B씨에 대한 추모도 여의치 않았다. B씨의 발인 날, 노조는 이마트의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며 24번 계산대에 헌화를 시도했지만 사측은 입구를 막고 이들을 제지했다.
같은 곳이 아프다
마트 계산원들은 B씨의 죽음 이후 입을 모아 열악한 노동 환경을 지적했다. 5년 전 동료를 떠나 보낸 정씨는 “B씨 소식을 듣고 5년 전 사건에 대한 트라우마가 되살아난 동료들이 많다”고 말했다.
“화병은 기본인 것 같아요.” 10년 차 계산원 박모(48)씨가 언급한 ‘계산원 질환 리스트’다. 손님을 대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진상’ 손님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는 기본. 여기에 정시에 영업을 마감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관리자가 지켜본다는 스트레스까지 더해진다.
반복된 동작에서 비롯한 근골격계 질환도 빼놓을 수 없다. 민주노총이 2017년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마트 노동자의 72%가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다고 응답했다. 작은 동작이라도 적절한 휴식 없이 반복되면 곧 관절이나 근육의 이상으로 돌아온다. 바코드를 스캔하는 데 쓰이는 ‘건 스캐너’의 ‘버튼’을 누르는 동작이 대표적. ‘테니스 엘보’나 ‘손목 터널’ 증후군도 박씨가 언급한 ‘질환 리스트’에 있었다.
마음 놓고 쉴 장소와 시간이 없다는 것도 계산원들을 힘들게 하는 요소다. 2시간마다 휴식시간이 부여되는 매장도 있으나 점심시간 외에는 따로 휴식 시간을 보장하지 않는 매장도 있다. ‘감시당한다’는 기분이 드는 업무 환경도 빼놓을 수 없다. 박씨는 “화장실을 갈 때마다 관리자에게 보고해야 해서 되도록 (소변을) 참았고, 방광염에 걸리기도 했다”고 말한다.
10년간 마트에서 일한 A씨와 B씨. 두 사람의 죽음에는 5년의 시차가 존재한다. 그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보냈는가. 24번 계산대가 묻고 있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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