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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지겹다는 사람들에게” 삼풍백화점 생존자 글 눈길

입력
2018.04.19 15:15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현장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현장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나는 삼풍 참사 때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 일에 대해 자유롭지 못 하다. 그래서 말한다. 세월호는 기억돼야 한다고.”

한 네티즌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남긴 글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적잖은 반향을 끌어내고 있다. 그는 자신을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생존자’라고 소개한 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다면 차라리 침묵하라”며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아 ‘세월호 추모가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비판했다. 삼풍백화점 참사는 부실공사로 인해 1995년 6월 서울 서초구 삼풍백화점이 수십 초 만에 완전 붕괴된 사고로, 1,000명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국내 최악의 대형 참사 중 하나로 꼽힌다.

‘산만언니’라는 별명의 네티즌은 18일 온라인 매체 ‘딴지일보’ 자유게시판에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말할게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며칠 전 세월호 참사 4주기를 앞두고 우연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읽었다는 글을 인용하며, 긴 글을 시작했다. 인용한 글은 “세월호 참사만 기억하지 말고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참사 같은 나머지 참사도 좀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산만언니’는 “이 글 때문에 화가 나서 잠을 이루지 못 했고, 한참을 울었다”며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생존자로서 자신이 겪은 경험과 세월호 참사가 어떻게 다른지 차근차근 설명했다.

'딴지일보' 자유게시판 캡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 캡처

그는 먼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세월호 참사 때와 달리 정부 차원에서 신속하고, 정확한 진상규명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산만언니’는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참담하고, 비통한 얼굴로 머리를 조아렸다. 피해대책본부가 빠르게 구성돼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피해보상을 약속했다”며 “또 당시 조순 서울시장은 내가 입원해 있는 역삼동 개인병원까지 찾아와 (나를) 위로했다”고 썼다.

그는 하지만 세월호 참사 때는 미온적 대처로 일관하는 것도 모자라 사건을 조작, 은폐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고 지적했다. ‘산만언니’는 “제대로 된 (세월호 참사) 관련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이제 그만하자’는 투”라며 “일부 보수단체에서는 광화문에서 농성하는 세월호 유족들에게 ‘아이들 죽음을 빌미로 자식장사를 한다’고 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일부에서 액수가 많다고 주장한 세월호 유족 보상금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나타냈다. ‘산만언니’는 “불행과 맞바꿀만한 보상금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 생각보다 돈이 주는 위로가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라며 “나 역시 (삼풍) 당시 거액의 보상금을 받았지만 내가 받은 보상금의 열 배를 주고라도 그 일을 피할 수 있다면 열 번이고, 천 번이고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 잘 모른다”며 삼풍 사고 이후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담담하게 서술했다. 그는 사고 이후 자신이 20년 넘게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고, 3번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고 고백했다. 특히 “한 순간에 모든 게 사라지는 상황을 경험한 뒤 ‘죽음’이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면서 “이 와중에 그깟 돈 얼마가 삶의 이유가 돼 줄까. 통장에 돈이 얼마나 있어야 그런 마음이 생길지 모르겠다”고 썼다. 세월호 유족들의 행동을 ‘돈 문제’로 몰아가려는 사람들을 비판한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뱃머리만 남긴 채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뱃머리만 남긴 채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 한국일보 자료사진

‘산만언니’는 자신은 삼풍 사고 때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받았지만, 세월호 유족들은 그러지 못 했다면서 “그래서 세월호는 기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세월호가 정치적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겨냥해 “정권을 교체해서라도 아이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은 게 뭐가 잘못된 거냐”고 반문했다. 그는 “당신들이 보기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한 날, 자식을 잃은 부모가 슬픔과 분노를 표현하는 걸 대체 왜 참아야 하는지 묻고 또 묻고 싶다”며 “제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거든 차라리 침묵하라”고 비판했다. 그것이 인간이 인간으로서 인간에게 보일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라는 설명도 붙였다.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이하 ‘산만언니’가 올린 글 전문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말 할게요.>

며칠 전 우연히 페북에서 이런 글을 봤다.

지속 되는 국가적 재난 중 어째서 세월호에는 유난히냐는 목소리였다.

자칭 우파 여신이라는 분 인간의 글이었다.

이 글을 보고 내가 다 화가 나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한참을 울었다.

사람들 참 잔인하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생각했다.

내가 삼풍 사고 생존자니까

삼풍 사고와 세월호는 어떻게 다른지,

어째서 세월호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지.

내가 직접 말해줘야겠다고,

먼저 삼풍 사고는 사고 직후 진상규명이 신속하고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참담하고 비통한 얼굴로 머리를 조아렸으며

피해 대책 본부가 빠르게 구성돼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고, 피해보상을 약속했다.

또 당시 조순 서울시장은 내가 입원해 있던 역삼동의 작은 개인 병원까지 찾아 와 위로 했으며

매일 아침저녁으로 뉴스에서는 사고의 책임자들이 줄줄이 포승줄에 묶여

구치소로 수감되는 장면이 보도되었고

언론들은 저마다 삼풍 사고 붕괴원인과 재발 방지에 대한 심층 보도를 성실히 해 주었다.

물론 사고 관련 보상금도 정부의 약속대로, 사고 후 일 년 쯤 지나자 바로 입금 됐다.

덕분에 당시에 나는 내가 겪은 일에 대해 완벽하게 납득할 수 있었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벌어진

세월호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그때와 사뭇 달랐다.

어쩐 일인지 세월호 관련해서는 진실규명은 고사하고

정부와 언론이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 축소, 시키고 있다는 느낌까지 주었다.

제대로 된 관련자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삼풍 때는 부실건물 인허가 내준 공무원들도 싹 다 처벌 받았다)

사고가 난 후 한참 뒤 어디서 뼈다귀 같은 것을 찾아 와.

옛다 이게 (유)병언의 유골이다. 그러니 인제 그만 하자는 투로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자.

기자회견장에 등 떠밀려 나온 것 같은 얼굴의 503은

눈물이 흐르는 모양새를 클로즈업 해가며, 방송을 통해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 나 불쌍하지 않아? 나한테 무얼 더 원해, 이제 그만해'

또 당시 삼풍 백화점 자리는 영구적으로 재건축을 불허하고

희생자 추모 공원을 세우자고 하던 언론들이 어쩐 일인지 세월호 때는 경기가 어려우니,

어서 잊고 생업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뿐인가, 어버이 연합을 비롯한 일부 보수단체에서는

광화문에 나 앉은 세월호 유족들에게 아이들의 죽음을 빌미로 자식장사를 한다고도 했다.

이쯤에서 잠깐,

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이런 종류의 불행과 맞바꿀만한 보상금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

생각보다, 돈이 주는 위로가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당시 거액의 보상금을 받았지만

그 돈이 그 후의 인생에 도움이 됐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그런 일을 피하고 그 돈을 안 받을 수 있다면,

아니 내가 받은 보상금의 열배를 주고라도

그 일을 피할 수만 있다면 나는 열 번이고 천 번이고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당신들은 모른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 잘 모른다.

이런 사건 사고가,

개인의 서사를 어떻게 틀어놓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사고 이후로 나는 여태 불안장애로 신경정신과를 다니고 있다.

물론 번번이 미수에 그쳤지만,

그간 공식적으로 세 번이나 자살 기도를 했다.

한순간 모든 것이 눈앞에서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을 본 후로

나는 세상에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고

언제나 죽음은 생의 불안을 잠재울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그깟 돈이 삶의 이유가 되어 줄 수 있을까.

글쎄 통장에 얼마나 있으면 그럴까.

나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삼풍때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 일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말한다.

세월호는 기억 되어야 한다고,

제대로 된 사과도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영원히 잊으면 안 된다고.

오히려 나는 당신들에게 되묻고 싶다.

어째서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안 되는 건지

정권을 교체 해서라도, 우리 아이들이 왜 어떻게 죽었는지 알면 안 되는지.

아무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는데

무엇 때문에 이 일을 그만 둬야 하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당신들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한 순간 허망하게 자식을 잃은 부모가

분노와 슬픔을 표현하면 왜 안 되는 건지도 궁금하다.

그러니까 제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거든.

차라리 침묵하자.

아니지,

자식의 목숨을 보상금과 맞바꿀 수 있는 사람이라면 떠들자.

그런 사람이라면 떠들어도 된다.

그도 아니라면

부탁인데

제발

그 입 닫자.

그것이 인간이 인간으로써 인간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이자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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