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주말 아빠 그만” 대권 꿈 내려놓은 美공화당 1인자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공화당의 샛별’ ‘공화당의 골든 보이’에서 ‘백여년만의 40대 하원 의장’까지 탄탄대로를 밟아 왔던 폴 라이언(48) 미 하원의장이 11일(현지시간) 중간선거 불출마와 함께 정계 은퇴를 전격 선언했다. 자수성가 스토리, 정책 전문가 평판, 폭넓은 대인 관계, 훤칠한 외모, 뛰어난 언변 등 여러 면에서 라이언 의장은 21세기 미 정통 보수의 대표 얼굴이었다. 미국 권력 서열 3위이자 의회 1인자, 또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로 창창한 앞날을 두고 있는 그가 홀연히 워싱턴과 작별을 고한 것은 고향에서 자녀들에게 충실하겠다는 이유에서다.
라이언 의장은 이날 의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만약 출마해 연임하게 되면 아이들은 나를 오직 '주말 아빠'로만 기억할 것이다"며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10선 의원인 그가 임기가 끝나는 내년 1월 20년간 봉직한 의회를 떠나겠다는 것이다. 라이언 의장은 대학 진학을 앞둔 큰 딸과 두 아들 등 10대의 세 자녀를 두고 있다. 주중에는 워싱턴D.C에 머물고 주말에는 고향인 위스콘신주 소도시 제인스빌 자택을 오가던 생활을 접고 온전히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겠다는 것이다.
그의 전격적인 은퇴 선언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공화당을 충격으로 몰아 넣었다. 톰 콜 의원은 뉴욕타임스(NYT)에 “정치적으로 그는 우리를 위한 엄청난 이미지였다”며 “지구상에서 폴 라이언 보다 건전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의 부재가 공화당의 선거운동 전반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라이언 의장의 삶과 경력은 정통 보수가 이념적으로 그리는 인물상에 가까워, 공화당의 이미지 자체를 격상시켰기 때문이다.
16세 때 부친을 잃은 라이언 의장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홀어머니 밑에서 맥도널드 주방일, 웨이터, 피트니스 트레이너 등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마련하며 공부한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이런 삶은 개인 책임을 강조하는 그의 보수적 정치관의 기반이기도 했다.
오하이주 마이애미대를 졸업한 그는 워싱턴에서 법률 분석가로 근무한 뒤 28세였던 1998년 고향 지역구에서 하원 의원에 당선돼 의회에 입성했다. 이후 압도적 표차로 내리 10선을 하는 동안 예산위원장을 맡으며 정책 디테일에 능통한 ‘정책 장인’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2015년에는 동료들에 떠밀리다시피 하며, 45세의 나이로 하원 의장을 맡았다. 40대 하원 의장은 124년만으로 역대 두번째다.
이런 승승장구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 집권은 그의 보수 신조와 어긋나는 극단적이고 배타적인 대안 우파 시대의 개시를 뜻했다. 보호무역과 반이민 등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의제는 자유무역과 개방, 통합을 강조해온 그의 정치적 소신과 배치됐다. 하원의장으로서 주안점이던 감세안을 통과시키는 업적은 이뤘으나 균형재정과 작은 정부라는 그의 정책적 비전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도 애매해 트럼프 지지층과 정통 보수 양측으로부터 협공을 받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이 은퇴 배경이 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그는 그러나 이날 몇몇 기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자녀 때문에 내린 결정임을 거듭 강조했다고 폴리티코 등이 전했다. 은퇴 여부를 두고 마음이 오가던 상황에서 만난 80대 후원자가 “사람들은 자녀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양 보다 질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다 헛소리다. 둘 다 중요하다. 그걸 잊지 마라”고 한 조언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달 부활절 기간 가족들과 함께 체코 프라하 여행을 다녀온 뒤 8일 가족 회의에서 은퇴를 결정했다. 그는 “지금까지 아이를 키우는 데 아내 몫이 90%였다. 그런 일이 계속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16세 때 부친을 잃었던 그로선 자녀들에게 ‘아버지의 부재’를 또 다시 겪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입지전적인 등장만큼이나 퇴장 역시도 가정에 충실한 보수주의자의 면모를 보인 것이다. 제인스빌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접한 그의 아내, 제나 라이언은 “라이언은 모든 것을 업무에 바쳤다. 이제 가족 생활이 좀 더 균형을 잡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기쁨의 눈시울을 붉혔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라이언 의장은 아울러 “가장 힘들었던 정치적 환경은 진영을 구분하는 ‘정체성의 정치(Identity Politics)였다”며 현 정치 상황에 대한 소회도 털어놨다. 그는 “나는 분열을 이용하지 않고 사람들을 함께 모으는, 통합적이고 원대한 정치를 믿는다”며 “정체성의 정치가 도처에서 작동하고 21세기 기술이 이를 가속화해 불을 지르는 상황이 큰 걱정이다. 이런 (정치적) 양극화 때문에 이 나라에서 정치적 선의를 가지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향후에 다시 선거에 출마할 계획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안 우파의 시대가 저물 때 공화당원들은 2015년 때처럼 공화당 재건을 위해 라이언 의장을 호출할 것이 분명하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