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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재단, 찔끔 장학금 줘도 세금 혜택… 허울만 ‘공익법인’

입력
2018.03.24 09:00
9면

청계재단 한 해 장학금 지출

총자산의 0.7% 수준이지만

세법상 공익법인 지위 유지

자산 팔아 써야 할 의무 없어

경영권 편법 승계 활용되기도

“선진국처럼 제도 개선” 목소리

서울 서초동 영포빌딩 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만든 청계재단을 알리는 표시. 홍인기 기자
서울 서초동 영포빌딩 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만든 청계재단을 알리는 표시. 홍인기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설립한 청계재단의 자산은 505억1,700만원. 공익법인 평가단체 한국가이드스타에 따르면 2016년 공시의무를 가진 9,713개 공익법인 중 자산 기준 상위 6.4%(630위)에 해당할 정도로 ‘매머드’ 급이다. 하지만 “돈이 없어 공부 못 하는 젊은이는 없어야 한다”는 설립 목적을 수행하는 청계재단의 장학 사업 지출 금액은 5년 평균 3억6,000만원에 불과하다. 총자산 대비 비율로 따지면 0.71%의 초라한 성적표다.

이처럼 청계재단 등 일부 대규모 공익법인이 ‘빙산의 일각’도 안될 정도의 공익사업 지출을 하고 있음에도 ‘공익법인’ 지위를 유지하며 세금 혜택을 받는 이유는 뭘까.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하 상증세법)에 따르면 공익법인은 운용소득의 70%(성실 공익법인 80%)이상을 공익사업에 사용해야 한다. 언뜻 한해 운용수입이 10억원이라면 7억원 이상을 장학금 등으로 주라는 말처럼 보이지만 내막은 다르다. 운용소득은 공익법인의 출연재산 중 수익사업용으로 분류한 자산을 통해 벌어들인 돈(임대료ㆍ주식 배당금ㆍ이자수익 등)에서 필요경비를 제외한 금액이다. 즉 온갖 운영비를 제외하고 남은 돈의 70%를 사용하면 된다. 10억원 운용수입 중 관리비ㆍ사업비ㆍ인건비 등으로 7억원을 썼다면, 나머지 3억원이 운용소득이 되며 이중 70%만 쓰면 된다. 청계재단은 2016년 총지출 22억원 중 장학금 2억6,000만원을 포함해 총 3억680만원만 장학금ㆍ복지지원금으로 썼지만 이 규정에 따르면 재단 운영에 위법성은 없는 것이다.

[저작권 한국일보]강준구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강준구 기자

세금혜택 등을 위해 허울 좋은 지원사업을 앞세우는 ‘껍데기만 공익법인’을 줄이기 위한 제도 개선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자산 대비 지출 의무를 규정한 법이 시행됐지만 한계가 뚜렷하다. 개정된 상증세법 시행령에 따라 올해부터 의결권 제한을 전제로 5% 초과해 20%까지 주식을 출연 받은 성실 공익법인은 수익사업용 순투자 자산의 최대 3%까지 공익사업에 지출하도록 했다. 세금 없이 주식 보유 혜택이 큰 만큼 지출의무를 무겁게 설계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 성실 공익법인 수가 225개에 불과한 만큼 규제의 틀 밖에서 혜택만 누리는 공익법인의 수가 상당할 수밖에 없다. 세제혜택이 큰 성실 공익법인은 통상 주식 5%를 훨씬 초과해 보유하기 위해 신청하는데, 5.04%의 다스 주식을 가진 청계재단은 성실 공익법인 지위에 있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익사업 지출이 미미해도 자산을 허물어 써야 할 법적 의무는 없다. 현재 101억원어치 다스 주식(5.04%)을 가진 청계재단은 주식 관련해선 매해 받는 배당수익 1억원 가량만을 지출용으로 쓰고 있다. 특히 주식은 공익사업 재원으로서의 역할이 미미하다. 2016년 경제개혁연구소가 작성한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의 주식 보유현황 분석’에 따르면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 63개는 평균 1.89개 종목의 계열사 주식을 가지고 있고, 10곳 중 3곳(26.8%)은 전체 지분의 5%를 초과해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주식 공정가액 대비 배당금 비율은 1.31%로 예금이자 수준이었으며, 실질적 주식 매각 사례는 세 차례뿐이었다. 배당을 전혀 하지 않은 곳도 32.4%나 되는 등 주식이 공익사업에 기여하는 정도가 미미한 수준이고 대신 주주 일가의 지배권 유지와 세제 혜택에 이용된다는 분석이다.

국내와 달리 기부 선진국인 미국은 기업이나 개인이 만든 공익법인을 대상으로 ‘5% 규칙’을 적용하고 있다. 직원들이 상주하는 건물 등 최소한의 운영을 위한 자산을 뺀 나머지를 순투자자산으로 규정하고 이의 5%를 의무적으로 공익사업에 쓰도록 한 것이다. 세금 혜택 등을 받는 만큼 미래의 불확실한 상황을 위해 자금을 쌓아둘 것이 아니라 현재 직면한 문제 해결에 최대한 지출하도록 독려하기 위한 장치다. 박두준 한국가이드스타 사무총장은 “일부 개인 재단이나 대기업집단의 공익법인에선 공익 사업이란 설립목적에도 부합하지 못하는 부실 운용이 발견된다”라며 “미국처럼 다수의 공익법인에 자산의 일정 비율을 사용하게 하는 등의 방식으로 제재해야 공익법인이 경영권 승계와 조세 혜택의 편법이란 오명을 벗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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