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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쏭달쏭 도형 패턴이 수십억원… 미술품 가격은 어떻게 정해질까

입력
2018.03.22 04:40
22면

#1

신작은 크기, 색 등 기준 있지만

2차 시장에서는 뚜렷한 잣대 없어

#2

소장자 명성도 가격에 큰 영향

2013년 전두환 압류품 경매에선

거실 걸렸던 그림에 참가자 몰려

#3

예전엔 재벌들 전유물이었지만

최근 온라인 중심 30, 40대 급증

7일 서울 평창동 서울옥션에서 열린 경매에서 이중섭의 ‘소’가 47억원에 낙찰됐다. 이날 이중섭은 박수근 ‘빨래터’를 제치고 김환기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비싼 작가에 등극했다. 서울옥션 제공
7일 서울 평창동 서울옥션에서 열린 경매에서 이중섭의 ‘소’가 47억원에 낙찰됐다. 이날 이중섭은 박수근 ‘빨래터’를 제치고 김환기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비싼 작가에 등극했다. 서울옥션 제공

지난 7일 이중섭(1916~1956)의 그림 ‘소’가 서울 평창동 서울옥션에서 열린 경매에서 47억원에 낙찰됐다. 시작가는 20억원. 서울옥션 측은 2010년 ‘황소’의 낙찰가 35억6,000만원을 전후로 가격이 조성될 걸로 예상하고 있었다. 워낙 고가라 응찰자가 두 사람으로 좁혀지는 건 금방이었다. 현장에서 직접 패들을 든 사람과 대리인을 통해 전화로 응찰한 사람, 두 명이 1억원씩 올리며 가격을 만들어나갔다. 경매장의 모든 이들이 손에 땀을 쥔 채 두 사람의 경합을 지켜봤다. 20억원이 30억원이 되고, 다시 40억원을 향하면서도 경합은 멈추지 않았다. 40억원을 넘은 뒤부터는 응찰자들이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졌다. 정적을 깨고 패들이 올라올 때마다 현장에선 탄성이 터졌다. 경합이 멈춘 것은 전화로 응찰한 사람이 47억원을 부른 뒤다. 고민하던 상대는 응찰을 포기했고, 경매사가 낙찰을 알림과 동시에 현장은 모인 사람들의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경매를 진행한 김현희 경매사가 직접 전한 그날의 풍경이다.

이날 이중섭의 ‘소’는 한국 근현대미술품 경매 낙찰가 6위에 올랐다. 1위부터 5위는 모두 김환기(1913~1974) 화백의 전면점화가 차지하고 있다. 김 화백의 작품은 지난 3년 동안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계속 갱신하는 중이다. 2015년 10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19-Ⅶ-71 #209’가 낙찰가 47억2,100만원으로 기존 최고가인 박수근(1914~1965)의 빨래터(45억2,000만원)를 뛰어넘더니 이후 4차례나 스스로의 기록을 경신, 지난해 4월 케이옥션에서는 ‘고요’가 65억5,000만원에 낙찰되며 한국 미술경매 역사를 새로 썼다.

지난해는 세계 미술경매 역사도 다시 쓰인 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그린 예수의 초상화 ‘살바토르 문디’가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억5,030만달러(약 4,978억9,000만원)에 낙찰된 것. 이는 기존 최고가 작품인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알제의 여인들’ 낙찰가(1억7,940만달러)의 2배를 훌쩍 넘는 것이었다. 패들 한 번에 억 소리가 나는 세계. 영원히 상승만 있고 하락은 없는 듯한 세계. 미술품의 가격은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 것일까.

이중섭 ‘소’. 28.2X53.3㎝. 종이에 유채.
이중섭 ‘소’. 28.2X53.3㎝. 종이에 유채.

큰 작품이 작은 작품보다 비싸다?

“환율과 마찬가지로, 예술의 상업적 가치는 집단적 지향성을 바탕으로 하며, 고유하고 객관적인 가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사람들이 얼마에 계약하고 공표하는지가 예술의 상업적 가치를 결정하고 유지한다.”

크리스티 경매사에서 십 수년간 몸담은 세계적 아트 딜러 마이클 핀들리는 저서 ‘예술을 보는 눈’(다빈치 발행)에서 이와 같이 단언한다. 한 마디로 미술품의 가격을 결정 짓는 객관적 요인은 없다는 것. 비싼 재료도, 작품의 크기도, 제작에 소요되는 시간도 이 세계에선 무의미하다. 천문학적 금액의 미술품 앞에서 많은 사람이 “놀라고 때론 분노하는” 이유다.

그러나 1차 시장에선 어느 정도 작품 가격 책정의 근거를 꼽을 순 있다. 예술시장은 예술가의 신작을 파는 1차 시장과 작품을 되파는 2차 시장으로 나뉜다. 핀들리에 따르면 대개 예술가와 아트 딜러는 구매자에게 처음 작품을 보여주기 앞서 함께 기본 가격을 정한다. 여기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기준은 크기와 재료다. 보통 작품이 작을수록 가격은 낮아진다. 반면 그림이나 조각이 실내에 설치하기엔 너무 클 경우 작품 가격이 떨어지기도 한다. 재료로 따지면 캔버스에 그린 작품이 종이 작품보다 비싸며, 수채물감, 크레용 등으로 다양한 색상을 표현한 작품이 흑연, 목탄으로 그린 단색화보다 더 높은 값을 받는다.

박수근 ‘빨래터’. 50.5X111.5㎝. 캔버스에 유채. 1950년대.
박수근 ‘빨래터’. 50.5X111.5㎝. 캔버스에 유채. 1950년대.

그러나 작품이 최초 구매자의 손을 떠나 2차 시장으로 넘어가는 순간 이 같은 기준은 안개처럼 증발한다. 김현희 서울옥션 경매사는 “어떤 작가의 작품이냐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도 뭘, 언제, 왜, 얼마나 그렸는지에 따라 가격에 차이가 난다”며 “작품의 보관 상태, 작품을 사고 파는 시기, 심지어 누가 작품을 소장했다 내놓았는지까지 모두 가격을 좌우하는 변인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매사 인생 13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2013년 12월 일명 ‘전두환 경매’를 들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추징금 환수를 위해 검찰이 미술품 649점을 압류했고,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이 각각 나누어 매각했다. 이중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작품은 이대원(1921~2005) 화백의 ‘농원’이었다. 전 대통령의 거실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경매를 진행했던 김 경매사는 대통령의 거실에 걸렸던 작품을 손에 넣으려는 투지에 찬 눈들을 생생히 기억했다. “아무래도 주변 이목 때문에 경합을 자제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웬걸요. 시작하자마자 어마어마하게 많은 패들이 올라왔어요.” 3억원에서 시작한 가격은 단숨에 5억8,000만원까지 올랐고, 호가를 낮춰달라는 외침이 나올 정도로 분위기는 뜨거웠다. 최종 낙찰가는 6억6,000만원. 이대원 화백의 작품 중 가장 높은 가격이었다.

“그때 제일 많이 받았던 질문이 이 작품이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거였어요. 물론 훌륭한 작품이지만 이 경우 가격을 결정한 가장 큰 요인은 소장 경로예요. 미술시장에는 ‘예술을 완성하는 건 컬렉터의 몫’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컬렉터가 어떤 이유로 작품을 소장하고, 그 작품과 어떻게 함께 하고, 또 어떻게 헤어지는지까지도 작품의 가치에 영향을 끼칩니다.”

◆한국 근현대미술품 경매 낙찰가 상위 10

“예술을 완성하는 건 컬렉터의 몫”

주가처럼 종잡을 수 없는 미술품 가격에서, 그래도 유일한 상수를 꼽자면 희소성이다. 작고한 화가의 그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이유다. 이번에 낙찰된 이중섭 화백의 ‘소’가 좋은 예다. 이 화백 작품의 양대 주제인 가족애와 고달픈 삶 중, 소는 후자를 표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특히 이번 ‘소’는 싸우고 난 뒤 뿔과 얼굴에 피를 뚝뚝 떨어뜨리며 힘겹게 걸음을 옮기는 듯한 모습이 마치 우리 민족의 삶을 은유하는 듯하다는 평을 받았다. 물론 그보다 중요한 건 ‘소’ 작품의 대부분이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는 사실이다.

“미술관에 한 번 들어가면 다시 시장에 나오지 않는다고 보면 돼요. 이 화백의 ‘소’는 9점 정도 밖에 남지 않은 데다가 대부분 미술관에 있어 일반인 입장에선 언제 다시 ‘소’를 만날지 기약이 없는 거죠.” 케이옥션 손이천 경매사의 말이다. 가격순위 1위부터 5위를 휩쓴 김환기 화백도 마찬가지다. “김 화백의 경우 남겨진 작품이 100점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이중 90% 이상이 미술관 소장품이라 매매가 금지돼 있죠. 민간 거래가 가능한 건 10여 점뿐이니 앞으로 최고가는 계속 경신되지 않을까 합니다.”

김환기 ‘고요 5-Ⅳ-73 #310’. 261X205㎝. 코튼에 유채. 1973년.
김환기 ‘고요 5-Ⅳ-73 #310’. 261X205㎝. 코튼에 유채. 1973년.

또 하나의 기준은 소위 전성기 때 작품인가, 아닌가다. 작가마다 비싸게 팔리는 연도와 주제가 정해져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 모네의 그림 중 가장 비싼 작품은 1904년부터 1908년까지, 4년 간 그린 수련 연작 79점이다. 이중 3점이 소실되고 27점은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으니 49점만 개인의 손에 있는 셈이다. 국내를 보면 ‘물방울 작가’로 유명한 김창열 화백의 경우 1983년 이전에 그린 물방울, 그 중에서도 여러 개의 물방울을 그린 작품이 가장 높은 가격에 팔린다. 이우환 화백은 점, 선, 바람, 조응 순으로 작품 가격이 낮아진다.

사회적 이슈도 민감하게 개입한다. ‘전두환 경매’처럼 스캔들이 호재가 되는 사례도 있지만, 이우환 화백의 경우 지난해 위작 논란이 악재로 작용했다. 손이천 경매사는 “위작 시비 이후 안타깝지만 ‘점, 선’의 수요가 뜸해진 것은 사실”이라며 “경매사에서도 경로가 아주 확실한 작품이 아니면 출품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만의 리그? 젊어지는 미술시장

미술시장은 소위 나이 지긋한 재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되지만, 최근 급속히 젊어지는 추세다. 올 초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2017 미술시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화랑 점유율은 2015년 51.3%에서 2016년 41.2%로 떨어진 반면, 경매는 28.9%에서 37.3%로 늘었다. 이중 눈에 띄는 것은 온라인 경매의 성장이다. 2016년 온라인 경매를 통한 작품 거래 규모는 248억원(전체 경매시장 2,378억원)으로 전년대비 50% 가량 급증했다.

국내 경매시장을 양분하다시피 하고 있는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에 따르면 온라인 경매의 주 고객층은 30, 40대. 30만원대 초판본 시집부터 높게는 1,000만원대 그림까지 활발히 거래된다. 2006년부터 온라인 경매를 해온 케이옥션은 낙찰 총액이 2006년 2억원대에서 2017년 약 123억원으로 60배나 뛰었다. 2016년부터 온라인 경매에 뛰어든 서울옥션도 첫해 68억원에서 지난해 143억원으로 낙찰 총액이 2배 넘게 상승했다. 김현희 서울옥션 경매사는 “50~60대 남성만 그림을 산다는 건 옛말”이라며 “벽에 가족사진 대신 그림을 걸고 싶어하는 젊은층이 늘면서 저가 미술시장이 급속히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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