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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화해] 워킹맘일 때도, 공부하는 엄마 돼도 “늘 미안하고 후회”

입력
2018.03.19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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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혼한 엄마 탓하는 아빠에 지쳐 결혼

산후우울증 고생… 퇴사 후 공무원시험 준비

아이에 죄책감 느끼고 남의 충고엔 예민

‘모든 일에 후회’ 아빠 닮은꼴 슬퍼져

삽화=박구원기자
삽화=박구원기자

자신의 인생이 실패했다며, 평생 이혼한 엄마 탓을 하신 아빠와 함께 사는 것에 지쳐있던 시기, 결혼하면 독립을 할 수 있겠구나 싶어 지금의 남편과 만나자마자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저를 잘 보듬어 주는 사람이에요. 사랑하는 아들은 어느덧 5세가 됐어요.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무기력하고 우울해지는 감정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출산을 하고 심한 우울증을 앓았어요. 몰라서 울고, 무서워서 울고, 버거워서 울고 정말 매일매일 울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라며 힘을 냈어요. 아이는 아침 출근길에 어린이집에 맡기고, 남편과 번갈아 퇴근길에 아이를 데려왔어요. 물 한잔 마실 시간도 없이 일해야 저녁 8,9시쯤 퇴근이 가능했습니다. 그땐 뭐든 잘해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버티는 것도 1년이 최대였습니다. 야근을 적게 한다는 회사로 두 번 이직한 뒤 완전히 퇴사했어요. 그 후로 지금까지 1년 반 동안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문제는 아이에게도 온전히 잘 해주지 못 한다는 생각에 힘이 든다는 거예요. 토요일까지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는 엄마 탓에 주말에도 집에만 있어야 하는 아이에게 미안합니다. 일하는 엄마일 때도 아이에게 미안했는데 공부하는 엄마가 돼도 미안하네요. 온전한 가정주부는 못하겠는데, 그렇다고 아이에게 어떻게 해줘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아이를 낳은 그 순간부터 하루도 온전히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늘 피곤합니다. 그런데 공부한다는 절 배려해주고, 할아버지와 놀고 있는 아이한테 미안한 감정도 들어서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고민하게 돼요.

요즘 제가 굉장히 예민해졌다고 느낍니다. 전에는 아무렇지 않았을 이야기들이 귀에 거슬리게 들려요. 어린이집 선생님이 저희 아이가 너무 정적이라며 같이 어디를 가보면 좋겠다고 하는 얘기만 해도 그렇습니다. 아이에게 미안하다가 문득 그 선생님에게 화가 나는 거예요. ‘왜 남의 집 일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야?’ 하면서요. 저는 집에서라도 많이 놀아주고 안아주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마치 제가 공부한답시고 아이 안보는 엄마인 것처럼 말씀하시는 선생님 말투에 속상하기도 합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니 남편은 초과 근무를 지원해 토요일까지 일하고 일요일 하루 쉬어요. 그런 남편에게 밖에 나가자, 아이에게 무언가 해주자 할 수도 없고요. 아이친구엄마들도 솔직히 너무 부담스러워요. 왜 그렇게 남의 집 일에 관심이 많은지, 관심 갖는 것도 너무 싫어요. 그러면서도 ‘내가 문제인가? 대수롭지 않다고 넘기면 되지’ 하고 또 자책합니다.

몇 년씩 공부했는데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죄책감과 우울함이 더 심해집니다. 한편으로는 왜 나는 직장에서 버티지 못해 그 좋은 직장 박차고 나와 이러고 사나, 아이를 왜 성급하게 낳았나, 뭐가 문제인가 하면서 과거를 되짚어 보는 생각에 빠지고요.

이런 제 모습이 아빠를 닮은 것 같아 슬퍼지기도 해요. 부모님은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이혼했어요. 아빠는 젊은 시절 많은 실패를 겪고 지금은 금전적으로 힘들게 사세요. 엄마는 생활력이 강했어요. 엄마에게 사랑은 자식에게 베풀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게도 금전적으로 최선을 다해주셨지만 감정적으로는 아니었습니다. 아빠는 본인의 인생 실패를 엄마 탓으로 돌리고 평생 원망하며 사십니다. 그걸 보고 있는 저는 힘이 들고요. 친척들은 고위직 공무원 등 유난히 잘 살고요. 인성도 너무 좋은 분들이에요. 아무도 아빠를 비난하거나 낮추어 보지 않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저는 가족모임에 잘 가지 않습니다. 스스로 자격지심의 문제 같아요.

요즈음 아이의 말투가 부쩍 저를 닮았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내 스스로가 우울과 자책으로 가득 차 있는데 어떻게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싶어요. 인간관계도 다 끊어진 것 같고, 자꾸 후회만 하면서 사는 것 같아요. 어느 순간 굉장히 무기력한 사람이 되어 있는 것 같아 다시 직장 생활을 해야 할지 공부를 계속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어요. 잠시만 힘들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시간이 계속 길어지는 것 같습니다.

주선혜 (가명ㆍ34세ㆍ주부)

#A

부모님과 감정 교류 부족해 마음에 허기

후회 걷어내고 마음의 허기 채우길

자기 전에 후회의 순간 정리하고

오늘의 좋은 점 발견하고 느껴야

선혜씨, 지금 선혜씨는 마음이 몹시 고통스럽군요. 저는 선혜씨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선혜씨 마음 속 깊은 곳을 충분히 들여다 보지 못하면 이 고통을 잘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고,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 공부도 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선혜씨는 지금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선혜씨 마음의 고통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선혜씨의 마음이 편안하지 않고 힘들게 느껴지는 시작점에는 후회가 있습니다. 사람은 어떨 때 후회를 할까요? 결과가 좋지 않을 때 후회를 합니다. ‘그 때 그렇게 하지 말걸’하고 생각합니다. 결과가 좋든 좋지 않든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후회를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걸.’ 또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너무 아픈 순간 후회를 합니다. 만약 소중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면, 마음 속엔 ‘그 때 더 잘해줄걸’ 하는 후회가 남곤 합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매번 결정을 해야 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잠이 들 때까지 깨어 있는 모든 순간, 작은 일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 늘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결과를 맞닥뜨립니다. 후회를 하기도 하지만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지요. 선혜씨의 인생을 보면 선혜씨는 특별히 잘못 결정한 것이 없어요. 학창시절에도 친구관계는 물론 학업에 있어서도 잘 해 왔습니다. 마음이 따뜻한 남편을 만나 결혼 한 것도, 아이를 낳은 것도 잘한 일이에요. 두 사람이 선혜씨에게 행복을 주고 있으니까요.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기 어려웠을 때, 아이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 둔 것도 잘한 결정이에요. 지금도 공부를 하면서 미래를 고민하고, 아이를 돌보는 일, 이 모두가 선혜씨가 그때그때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얘기예요.

그런데 선혜씨는 계속 후회를 합니다. 늦은 밤 잠들어 있는 아이의 안쓰러운 모습을 봤을 때는 아이와 많이 놀아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후회합니다. 합격 여부를 확신할 수 없는 시험 준비를 하는 게 맞는지 고민하고 직장을 그만 둔 것에 대한 괴로움으로 이어지지요. 어떤 사람들은 공부를 늦게까지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뿌듯함을 느껴요. 하지만 선혜씨는 매 순간 후회의 마음이 많아요. 아이가 밤 늦게 엄마 손을 잡으면 ‘우리 아이가 나를 좋아하는구나’ 생각하는 게 아니라, 후회를 해요.

선혜씨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느끼게 하는 마음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선혜씨의 어머니는 생활력이 강하고 열심히 사는 분이었어요. 자식을 위해서도 뒷바라지를 열심히 하신 분입니다. 아마 그분에게 만약 자식을 어떻게 키웠냐고 물어본다면 뒷바라지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 메고 최선을 다했다고 답하실 거예요. 자식을 따뜻한 집에서 키우기 위해, 돈이 없어 학교에 진학을 못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 어머니는 노력을 많이 했을 거예요. 하지만 선혜씨는 어머니와 감정적 교류의 경험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으로 보여요.

반면에 선혜씨 아버지는 경제적으로는 무력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열심히 살았는지 차원의문제가 아니라 결과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이런 면에서는 뒤로 물러나 있었던 것 같아요. 선혜씨 어머니는 현실적이고 실천에 옮기는 분이기 때문에 생활면에서는 선혜씨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지만, 선혜씨는 마음의 그릇이 비어있는 것처럼 공허했을 거예요. 그러나 아버지는 반대로 경제적 문제로 언제나 힘들어했어요. 선혜씨는 아버지를 통해서도 감정을 공유하고 어려움을 토로하는 방법으로 정서를 채우기 어려웠을 거예요. 오히려 아버지를 감정적으로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모호한 마음의 무거움이 늘 있어요. 언제나 후회가 뒤따르는 마음은 이러한 정서적 배고픔에서 비롯된 것이에요. 유년시절 부모에게 떼도 쓰고 싶었을 텐데 말이에요. 선혜씨 마음의 그릇은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 거예요.

선혜씨 부모님이 선혜씨를 사랑했다는 점은 의심하지 않아요. 어머니는 경제적으로 뒷바라지를 해주었고, 아버지는 지금 손자를 돌봐주시죠. 그런데 어떤 것을 빠뜨렸기에 선혜씨 마음이 후회의 마음으로 힘이 든 걸까요?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면 선혜씨 마음의 허기를 채울 수 있을까요? 선혜씨는 어떤 것 때문에 계속 후회를 하는 걸까요?

인간은 어릴 때부터 부모와 감정적 교류가 중요해요.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면서 부모와 마음이 통한다는 걸 느껴보는 겁니다. 이를 통해 자신과 부모가 가깝다고 느껴요. 재미를 찾고 때로 위로도 받지요. 지지를 얻기도 하고 반성을 하기도 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판단과 결정이 ‘잘 한 거구나’ 하는 확신도 얻게 돼요. 이 과정이 자기 신뢰감을 형성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선혜씨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런 감정의 교류를 많이 경험하지 못했어요. 자기 신뢰감 대신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갖게 되었고, 이것들이 모여 후회를 만들고 있는 거예요.

선혜씨는 앞으로 인생에서 어떤 것들을 채우면 삶에서 비교적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까요? 선혜씨는 부모의 좋은 점을 물려 받았어요. 생활력이 강하고 오뚜기 같은 면은 어머니의 모습이에요. 순함 감정을 가진 아버지도 닮았어요. 하지만 차이점이 있어요. 사람이 인생에서 어떤 것을 후회한다는 건 자신이 주체라는 의미예요. 아버지는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다른 사람을 원망했지요. 인생의 주체가 되지 않았던 거예요. 이런 면에서 선혜씨는 아버지와 다릅니다. 선혜씨의 후회는 스스로가 주체가 되는 부분이에요. 주체적인 선혜씨가 어머니의 실천적인 면을 더해 나간다면 훨씬 발전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선혜씨가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 동안 느꼈던 갈등과 후회의 순간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좋겠어요. 정말 후회감이 밀려들 때는 직접 글로 써 보세요.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좋은 점을 발견하고 느껴봐야 해요. 늦게까지 공부하고 돌아와 아이에게 미안하더라도 ‘그래도 오늘 공부를 많이 했으니 잘했네’하고 생각해 볼 수 있게요. 선혜씨 삶에 아픔을 주는 후회를 조금씩 걷어내고 선혜씨 마음의 허기를 채워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정리=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지면을 통해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신청해 보세요. 사연은 한국일보 사이트(http://interview.hankookilbo.com/store/advice.zip)에서 상담신청서를 내려 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 지면에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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