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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ㆍ식당 어딜가든 삐딱한 시선… “살찐게 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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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서러운 “우리도 소수자”
좌식 식당 숨막힐 지경인데
직장 동료ㆍ가족조차 “좀만 참아”
몸에 맞는 옷 멋내기도 언감생심
#몸집 크다고 일 못 하나요?
입사지원서 아직도 몸무게 쓰고
“빠릿빠릿하게 일 할 수 있겠나”
외모 문제 삼아 면접 탈락 일쑤
#개그ㆍ비하 소재 삼는 미디어
다이어트 성공을 신화처럼 다뤄
“너는 왜 못해” 부정적 이미지 조장
SNS서도 조롱하는 유행어 판쳐
“비만인에 유난히 혹독한 나라”
“소수자라고 하면 장애인, 성소수자 등을 먼저 떠올리잖아요. 고도비만인도 소수자다, 차별 받고 있다고 이야기하면 ‘살은 빼면 되지 않느냐’는 식의 반응이 전부예요. 인권에도 순서가 있대요. 비만인 인권은 가장 나중이라는 거죠.”
우리나라 성인 남성 100명 중 5명(5.5%ㆍ국민건강보험공단 2016년 기준), 여성 100명 중 4명(4.2%). 그래서 ‘특별한 사람’ 취급을 받지만, 그렇다고 소수자로서의 권리는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 바로 ‘뚱보’라 불리는 고도비만인(세계보건기구(WHO) 기준 체질량지수 30 이상)이다.
인종과 장애, 성적 지향성에 대한 차별에는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들도 길을 지나는 비만인들에게는 별 거리낌없이 삐딱한 시선을 보낸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비만인들은 이렇게 심한 차별을 받지만, 이를 사회적 문제로 여기거나 바꾸려는 시도는 더디다. 이렇게 차별이 일상화되는 사이, ‘인정받지 못하는 소수자’로 사는 비만인들의 힘겨운 외침도 점점 외면당하고 있다.
“버스ㆍ쇼핑ㆍ회식…매일이 ‘눈치보기’의 연속”
비만인들은 “매일, 매시간을 눈치보기로 채운다”고 입을 모은다. 1주일에 5일은 주변 사람들의 심기를 살펴가며 출퇴근길에 올라야 하는 상황이 대표적이다. 키 171㎝, 몸무게 107㎏인 정문석(41)씨는 “회사 생활 11년 차인데, 출퇴근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자리에 앉아본 적이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라고 털어놨다. 2명 이상이 앉는 자리를 탐내면 다른 승객들이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그렇다고 한 명이 앉는 자리는 비좁아 스스로 불편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 버스ㆍ지하철 일반좌석의 폭은 45㎝ 안팎. 만 19~60세 한국인 남성의 평균 ‘앉은 엉덩이 너비’인 35.2㎝(통계청ㆍ2015년 기준)보다 10㎝ 정도, 평균 어깨 너비인 39.6㎝보다는 약 6㎝ 넓다. 정상 체중의 사람이더라도 옷을 두껍게 입고 앉으면 비좁은 경우가 많다. 정씨는 “상의가 두꺼워지는 겨울철이면 서 있는 것조차 눈치가 보여 종종 택시를 탄다”고 했다.
몸에 잘 맞는 옷을 잘 찾아 멋을 내는 일도 비만인들에겐 언감생심이다. 수시로 큰옷을 구하기 어려운 탓에 환절기마다 큰 맘을 먹고 서울 이태원 큰옷 가게에 들르거나, 종종 가는 해외여행을 기회 삼아 캐리어 가득 쇼핑을 해 온다. 최근 결혼 준비를 하고 있는 정다현(31ㆍ가명ㆍ161㎝, 79㎏)씨는 “결혼 같은 중요한 행사에서 입을 드레스, 한복의 선택 폭은 훨씬 좁다”며 “큰 사이즈 행사복을 다루는 가게가 있긴 하지만, 일반 치수의 옷보다 3, 4배의 가격을 받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앉아서 식사하거나 술을 마시는 게 버거운 비만인들에게 ‘좌식 회식’은 참기 힘든 고역이다. 좌식 식당을 피해줄 것을 조심스레 부탁하면 “예민한 사람”이라며 따가운 눈총이 쏟아지기 일쑤다. 키 172㎝, 몸무게 112㎏의 이정숙(60ㆍ가명)씨는 “회사 동료뿐만 아니라 식구들이 유명한 맛집이라며 예약해놨다가 자리가 좌식으로만 돼 있어 부탁을 거듭해 식당을 옮긴 적이 여러 번”이라며 “보통 체격의 사람들은 몇 시간만 참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좌식으로 오랫동안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면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그 몸으로 ○○할 수 있겠어요?”
비만인을 향한 ‘배려 없음’은 고스란히 사회적 차별로 이어진다. 키 167㎝, 몸무게 98㎏인 대학생 김현지(23)씨는 최근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한 카페를 찾았다가 사장의 직언을 듣고 한 동안 구직을 포기했다. 카페가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옷가게에 둘러싸여 있어 “아르바이트생의 외모가 중요하다”는 말을 가감 없이 내뱉은 것이다.
현재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 장경상(41)씨는 과거 좋은 성적으로 서류ㆍ필기전형을 통과했다가 면접에서 외모에 대한 직ㆍ간접적 지적을 듣고 탈락한 경험이 여러 번 있다고 했다. 시설 관리직 등 몸집과는 큰 상관도 없는 직무였지만 면접관들은 105㎏에 달하는 그의 체구를 문제 삼았다. ‘그 몸으로 빠릿빠릿하게 일 할 수 있겠느냐’ ‘게으른 사람과는 함께 일 못 한다’ 등의 발언을 거침없이 했다고 한다. 장씨는 “비만이면 게으르다는 뿌리 깊은 사회적 편견에 너무 속이 상했다”고 했다.
2011년에는 경북의 한 전자기기 생산업체 직원이 ‘대표로부터 체중 감량을 지시 받고 실패할 경우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강요하는 이메일을 받아 결국 사직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한 일도 있었다. 인권위는 대표이사에게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고 이 직원에게 5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권고했다.
“면접 기회까지 얻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푸념도 나온다. 채용의 가장 첫 단계인 서류전형에서부터 키와 몸무게를 적도록 하는 기업이 여전히 많아서다. 실제 고용노동부가 2016년 발표한 ‘기업 채용 관행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518개 기업 인사담당자 10명 중 1명 가량(13.7%)이 입사지원서에서 키ㆍ몸무게를 적도록 했고, 지난해 조사에서도 3.3%가 이 같은 관행을 유지하고 있었다.
비만인에 대한 편견은 성인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에게도 덧씌워진다. 어려서 겪는 소외에 대한 설움은 더욱 깊을 수밖에 없다. 중3 신윤석(15ㆍ가명ㆍ168㎝, 83㎏)군은 “초등학교 때부터 단거리 달리기나 축구 시합에서 실력을 검증해보지도 않은 채 선수명단에서 제외된 적이 종종 있다”며 “줄다리기나 씨름 시합 같이 무게감으로 버티는 것이 필요한 경기에서는 꼭 선수로 꼽히는 데다가 지면 ‘덩치 값도 못한다’는 질타를 받기도 한다”고 아쉬워했다.
비만인은 먹보ㆍ게으름뱅이? 부추기는 미디어
TV프로그램과 영화 등은 비만인들의 소수자 위치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고 있다. 뚱뚱함을 개그ㆍ비하 소재로 삼는 데다가 대상이 되는 본인들 역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현지씨는 “유명 프로그램에서 비만인을 ‘먹보’ ‘멍청이’ 등으로 다룬 다음 날이면 친구들이 나를 똑같이 대했다”며 “영화에서도 악당 역할은 주로 뚱뚱한 인물이 맡는 것도 부정적 인식을 낳는다”고 설명했다.
비만인들의 다이어트기를 마치 ‘성공 신화’처럼 다루는 점도 이들을 고립되게 만든다. 키 163㎝, 몸무게 98㎏인 심경선(36ㆍ가명)씨는 “TV에선 뚱뚱한 사람들이 성형수술이나 극단적 다이어트로 살을 빼는 모습만을 보여주니까 ‘아직도 살을 못 뺀 사람들은 얼마나 게으른 것이냐’는 편견을 심어준다”며 “체중을 제외하면 건강상태는 좋은데 가족마저도 ‘어느 연예인처럼 굶어서라도 살을 빼지 않으면 일찍 죽는다’고 스스럼없이 말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비만인 혐오를 내포한 단어들까지 유행하고 있다. ‘파오후’(뚱뚱한 사람들의 숨소리 희화화), ‘쿰척쿰척’(뚱뚱한 사람들이 음식 먹는 소리 비하) 등이 그 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파오후들은 자기 관리하고 밖에 나와라’ ‘식당에서 쿰척쿰척 하는 소리가 너무 혐오스럽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정제되지 않은 채 오간다. 심경선씨는 “SNS나 게임에서는 비만인을 배려하지 않는 언행들이 더욱 빈번하게 등장해 소외감을 느끼게 만든다”고 말했다.
외국인들 눈에 비친 한국의 ‘비만혐오’
비만인을 향한 한국인들의 편견과 차별에 대한 외국인들의 생각은 어떨까. 경기의 한 학원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는 미국인 조쉬 슬론(34)씨는 “한국은 비만인들에게 유난히 혹독하다”고 말했다. 한국살이 8년째라는 그는 미국에도 비만인에 대한 편견이 전혀 없진 않지만, 한국인들처럼 길을 지나며 대놓고 따가운 시선을 보내거나 이력서에 키ㆍ몸무게를 적는 일은 없다고 했다. 그는 “뚱뚱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보기에 충분히 마른 사람들도 다이어트 강박에 시달린다”며 “비만인들에게 ‘더럽다, 게으르다’ 등의 이미지를 덧씌우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서울 이태원 한 식당에서 일하는 스페인인 사무엘(39)씨는 한국인들의 비만인 차별을 직접 목격했다고 말했다. 비만인 미국인 친구와 한 식당에 들렀는데 다른 손님이 “냄새도 나고 보기에 불편하다“는 이유로 자리를 옮겼다는 것이다. 그는 “서양보다 비만인이 상대적으로 소수이기 때문에 특별한 존재로 대하는 것 같다”며 “비만인 차별도 얼굴 색깔이나 성별로 인한 혐오 등처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이우진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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