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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분의 1초차’ 차민규를 바꾼 반전 인생 포인트 ‘셋‘

입력
2018.02.20 16:09

[한국스포츠경제 정재호]

차민규/사진=연합뉴스

1년 전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은 포스트 모태범(29ㆍ대한항공) 시대를 이끌어 갈 차세대 주자들 간의 경쟁이 치열했다. 당시만 해도 생소한 이름이었던 차민규(25ㆍ동두천시청)와 김진수(26ㆍ강원도청)가 쌍두마차였다. 둘은 남자 500m와 1,000m에서 엎치락뒤치락 불꽃 튀는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2017년 1월 중순 서울 태릉 국제 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98회 전국 동계 체육 사전 경기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일반부 대회 때 현장에서 본지와 만난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은 “선수들이 서로 경쟁하며 좋아지고 있다”며 “궁극적인 목표인 평창 동계올림픽이다. 이런 경쟁 구도가 지속되면 전망이 밝지 않겠는가”라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전 교수가 강조한 경쟁에 의한 시너지 효과는 1년 뒤 평창올림픽 무대에서 완벽히 꽃을 피운다. 한 축을 이루던 차민규가 생애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모태범(금메달) 이후 8년 만에 시상대에 서는 깜짝 활약을 펼치면서다.

차민규는 19일 강원도 강릉의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강릉 오발)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34초 42의 올림픽 신기록으로 은메달을 땄다. 약 10분 뒤 16조 아웃코스에서 나선 세계 랭킹 1위 노르웨이 호바르 로렌첸(26ㆍ노르웨이ㆍ34초 41)에 의해 차민규의 기록은 금세 깨졌지만 금메달에 가까운 값진 은메달을 안겼다. 한국 선수가 올림픽 남자 500m에서 시상대에 오르기는 2010년 모태범(금메달) 이후 처음이라는 점에서 의미는 남다르다. 중국 신성 가오팅위(21)는 34초 65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획득했고 모태범은 35초 15초, 김준호(23ㆍ한국체대)는 35초 01초의 성적을 남겼다.

0.01초차 2위에 대해 차민규는 “내가 다리가 좀 짧아서”라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190cm에 가까운 장신들이 많은 유럽 출신 빙상 단거리 선수들은 보통 발 크기가 300mm이 넘고 스케이트 날도 비례해 길어진다. 반면 차민규는 178cm에 발은 이 키의 평균보다 훨씬 작은 250mm에 불과하다. 짧은 다리와 작은 발만 아니었다면 금메달이 가능했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차민규는 빙상 관계자들 사이에서 일을 낼 유력 주자로 꾸준히 꼽혀왔다. 작년 12월 초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 3차 남자 500m에서 0.001초차로 깜짝 은메달을 따면서 기대는 더욱 커졌다.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인 차민규는 “쇼트트랙도 곧잘 했는데 몸싸움이 싫어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고 할 만큼 살벌한 경쟁의 정글 한복판에 있는 승부사답지 않은 성품을 지녔다. 대신 집념이 강하다.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코피를 많이 흘리는 허약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쇼트트랙을 타다가 대학생이 된 2011년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하고 단기간에 두각을 나타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오른쪽 발목 인대를 크게 다쳐 선수 생활 최대 위기를 맞았을 때도 결연한 의지로 이겨냈다. 의료진은 선수 생명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진단을 내렸다. 최악의 상태에서 그 고통스러운 재활을 견뎠다.

스스로 “신의 한 수가 맞는 것 같다”는 종목 전향은 전명규 교수 작품이다. 대학 진학 당시이던 2011년 종목 전향을 권유한 인물이 전 교수였다. 차민규는 “전 교수님께 감사드린다”고 표했다.

변화와 경쟁과 집념이 빚어낸 차민규는 포스트 모태범 시대의 선두주자로 우뚝 섰다. 그는 “과거를 잊고 평창에서 열심히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잘 타기 위해서 철저히 준비했다”면서도 “나보다 잘 타는 후배들이 많다. 다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강릉=정재호 기자 kemp@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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