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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몸값ㆍ갑질 키운 방송사, 누굴 탓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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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고현정의 중도하차로 도마에 오른 SBS 수목극 ‘리턴’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지난 11일 촬영이 재개됐지만 스타와 방송사 사이에서 ‘누가 갑질을 했냐’를 두고 진실공방이 한창이다. SBS는 일찌감치 “스타 갑질 문제”라고 선을 그으면서 고현정의 하차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SBS가 고현정에게 출연금지 징계를 내리겠다는 보도가 일제히 나오면서 SBS를 향한 여론은 더 싸늘해졌다. SBS는 “출연금지를 논의한 적 없다”고 부인했지만,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스타와 방송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갑질 공방’으로 치달은 걸까.
톱스타 몸값 부풀린 방송사
12일 방송업계에 따르면 고현정의 ‘리턴’ 회당 출연료는 8,000만원(본지 2월 10일자 보도)으로, 여자배우 중 최고 수준이다. 고현정은 2년 전 출연했던 tvN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회당 6,000만원)에 비해 2,000만원을 더 얹어 받았다. 두 드라마 모두 16부작인 걸 감안하면 2편 출연료를 합친 금액은 20억원을 넘는다. 방송사는 스타 마케팅을 고려해 거액을 들인다. 높은 시청률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영방송 KBS MBC와 달리 민영방송 SBS는 드라마시장에서 주도권을 선점하려 애써 왔다. 스타를 적극적으로 캐스팅해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스타에 기댄 전략은 2001년 SBS 대하사극 ‘여인천하’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만 해도 정상급 배우의 회당 출연료는 200만~300만원 선이었다. SBS는 ‘여인천하’ 캐스팅을 위해 강수연에게 회당 500만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했다. 150부작이었던 ‘여인천하’에서 강수연이 챙긴 출연료가 7억5,000만원이었다.
SBS의 스타마케팅 전략은 계속됐다. 2002년 ‘별을 쏘다’에 출연한 전도연에게 회당 출연료로 600만원을 지급해 화제를 모으더니, 2006년 ‘프라하의 연인’으로는 두 배 이상이 뛴 1,500만원을 내놓았다. 고현정이 초특급대우를 받은 곳도 SBS ‘대물’(2010)이었다. 당시 회당 5,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사의 품격’(2012) 장동건이 1억원을 챙기면서, 배우들의 회당 ‘1억 시대’를 이어갔다. 지난해 방영된 SBS ‘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청춘스타 이종석과 배수지에게도 업계 최고 수준의 출연료가 지급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외주제작사 고위 관계자는 “현재 외주제작사에서 톱스타로 진용을 꾸린 드라마 대본은 일단 SBS와 CJ E&M, JTBC 순으로 접촉이 들어간다”고 밝혔다. 공영방송이라는 이유로 제작비 부족 현상에 시달리는 KBS와 MBC 대신 스타마케팅을 위해 거액을 감당할 수 있는 방송사의 문을 우선 두드린다는 것이다.
‘스타 갑질’ 방조… 제작 현실은 더 악화
“방송사 책임프로듀서(CP)들도 아무 말 못하는데 현장 스태프가 힘이 있나요?” 지난해 대형 기획사 소속 스타 여배우가 출연한 한 드라마는 시청률 10%에 못 미치는 성적표로 막을 내렸다. 촬영 현장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젊은 배우들이 서로를 챙기고 응원하며 별 탈 없이 유종의 미를 거뒀다. 단 하나, ‘그녀’의 고약한 심보만 빼면.
이 드라마에 출연한 여배우는 촬영 초기부터 1시간 이상 늦기 시작하더니 2~3시간은 예사로 지각했다. 사과 한 마디도 없었다. 담당 PD는 물론이고 현장 스태프들은 여배우를 기다리며 무한정 대기 상태였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회당 출연료도 4,000만~5,000만원 수준으로 적지 않았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공주님’. 대사를 외우지 못해 NG가 자주 났지만 PD도 뭐라 하지 못했다. 이 드라마의 한 스태프는 “젊은 여배우에게 눈치 보는 방송사가 하물며 톱스타 고현정에게 주의라도 줄 수 있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배우들의 ‘갑질’은 방송가에서 새로운 일이 아니다. 국내 외주제작사나 방송사 PD들에 따르면 고현정 정도의 스타는 함부로 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다. 방송업계 관계자들은 “그래도 배우가 지닌 브랜드 때문에 참고 기용한다”고 입을 모은다. 방송사들은 톱스타에게 거액의 출연료와 최고의 조건을 제공하면서도, 정작 ‘쓴소리’ 한번 내지 못한다. 스타만을 도약대 삼아 시청률을 올리려다 보니 생겨난 부작용이다.
‘리턴’ 사태 역시 “SBS가 수수방관하다 터진 일”이라고 보는 시선이 많다. SBS가 촬영시간 제한과 대기 제외, 대본 수정 요구 등 갑질과 다름없는 배우의 무리한 요구를 몰랐을 리 없다는 것이다. 고현정과 PD 사이의 갈등을 적극적으로 중재하지 못했고, 눈치만 보다 결국 주연배우 하차라는 파국적 상황을 맞았다.
고현정 하차와 갑질 공방을 두고 “드라마 사전 제작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후진적 제작 시스템에서 비롯된 사태라는 인식이다. 사전 제작이 아니더라도 반(半)사전 제작 시스템을 도입해 돌발 상황에 대비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이번에도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방송사들은 제작비가 많이 들고, 광고주들이 선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전제작을 기피하고 있다. 요즘 드라마 회당 제작비는 5억원 내외. 외주제작사는 방송사로부터 60~70%의 제작비만 받는다. 배우의 몸값이 올라갈수록 제작비는 더 적어지고, 현장 스태프는 저임금과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린다.
김경남 대중문화평론가는 “스타 몸값 부풀리기에 혈안이 됐던 방송사들의 예고된 사태”라며 “‘응답하라 시리즈’의 신원호 PD는 톱스타에 의존하지 않고도 성공한 사례를 보여 줬다”고 말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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