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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헐~ 북미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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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평화 계기 가속도 붙은 남북대화
문 대통령 속도조절 여건 조성 힘쓰고
北·美는 상호 신뢰 구축 대화 나서야
평창동계올림픽 초반 컬링 열풍을 일으킨 믹스더블(혼성 2인조) 경기의 이기정·장혜지 선수가 아깝게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전통적 컬링 강국들과 겨뤄 2승을 거둔 것만도 대단하다. 덕분에 컬링이 국민 사이에 동계스포츠 인기 종목으로 떠올랐다. 경기 중 장혜지 선수가 이기정 선수에게 했던 “헐~” “더 더 더” “업~” 하이톤 외침과 “오빠, 라인 좋아요” 격려는 핫한 유행어가 됐다.
여기서 ‘헐’은 서두르다는 뜻의 영어 ‘허리(hurry)’의 축약어로, 우리 청소년들이 놀라움을 표시할 때 쓰는 ‘헐’과는 전혀 다른 뜻이다. 손을 떠난 컬링 스톤 속도를 높이기 위해 빗자루(브룸)로 바닥을 빨리 쓸라는 작전 지시다. 반대로 ‘업’은 스톤의 속도가 빠르니 브룸을 들어라(up), 즉 비질을 그만하라는 지시다.
평창 평화올림픽 판을 활용한 남북 대화와 접근 속도가 매우 빠르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화의 스톤을 주고받으며 열심히 바닥을 빗질한 효과다. 새해 첫날 평창 올림픽 참가와 남북관계 개선의지를 밝힌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서 문 대통령 평양 초청까지 진행된 일련의 과정은 현기증이 날 정도다.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한반도를 짓누르던 전쟁 위기에 비춰 가히 핵 폭탄급 국면전환이다.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는 문 대통령에게 “오빠, 라인 좋아요”라는 지지와 격려가 쏟아진다.
하지만 잘 나갈 때 조심해야 한다. 가속도 붙은 남북대화의 스톤을 통제하지 못하면 문재인 정부에 큰 실점이 될 수도 있다.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김정은은 파격적인 대화 공세를 펴면서도 핵과 미사일 문제는 요지부동이다. 보수 진영이 “위장 평화공세” “비핵화 없는 남북정상회담은 이적행위”라고 날을 세우는 이유다. 미국과 일본의 노골적 제동도 예사롭지 않다. 문 대통령은 김여정 특사가 전한 “빠른 시일 내 평양 방문” 초청에 대해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나름 제동장치를 가동했다. 하지만 여건 조성의 핵심인 북미 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이제는 “더 더 더”가 아니라 “업, 업”을 되뇌며 빗자루를 들어올리고 지혜롭게 상황을 점검할 때인 것 같다.
더욱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할 사람은 김정은 위원장이다. 여동생을 특사로 파견한 게 ‘신의 한 수’라고 우쭐거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해맑은 미소를 잃지 않은 김여정의 모습은 남한 사회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미국 언론들도 김여정의 활동상을 전하며 “트럼프 미 행정부의 제재와 선제공격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새로운 무기를 배치한 것”(블룸버그 통신)이라고 호들갑들이다. 펜스 미 부통령은 방한 기간 올림픽을 하이재킹해 벌이는 북한의 선전(프로파간다)과 가식을 막겠다며 외교 결례 비판을 무릅쓰고 북한 대표단을 무시했지만 서구언론 평가는 그의 판정패다.
그러나 핵·미사일 개발 동결 또는 비핵화에 대한 최소한의 입장 표명 없이는 평창 평화 이후에도 지속 가능한 평화와 대화를 이어갈 수 없음은 분명하다. 문재인 정부도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입장에 처할 게 뻔하고, 3차 남북정상회담 성사도 물론 기대하기 어렵다. 미·일의 남북 대화 견제가 도를 넘고 있지만 자국 안보에 대한 위협은 그대로인데 남북이 가까워지는 걸 바라겠는가. 미국은 조만간 대북 제재와 압박 강도를 더 높이겠다고 공언했다. 김정은 정권은 이런 상황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현실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미국의 유연한 접근도 필요하다. 김정은 정권의 완전 굴복이나 붕괴를 목표로 하면 수십만 수백만 인명피해가 날 한반도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탈북자들을 앞세워 김정은 정권의 잔혹한 인권탄압상을 부각시키면서 엄청난 인명살상을 초래할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건 지독한 위선이다. 강경으로 일관하던 펜스 미 부통령이 귀국 기내에서는 웬일인지 북한과 전제조건 없는 대화에 나설 뜻을 밝혔다고 한다. 배경이 궁금하지만 우선 상호신뢰 구축을 위한 대화부터 서둘렀으면 좋겠다. “헐~ 북미 대화.”
논설고문·한반도평화연구소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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