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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한국 응원? No” 국적 상관 없이 올림픽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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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수(26)씨는 이번 겨울에만 스키장을 8번 다녀왔을 만큼 ‘스키마니아’다. 폴란드 교환학생 시절 현지인들이 열광하는 스키점프에 푹 빠졌다. 누구보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손꼽아 기다렸던 김씨 관심사는 우리나라 대표팀 성적이 아니다. “지난 소치동계올림픽에서 2관왕을 했던 남자 스키점프 1인자 폴란드 국적 카밀 스토흐(31)가 이번에도 금메달을 딸지 여부”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스노보드 황제’ 숀 화이트(32), 노르웨이 ‘스키점프 여왕’ 마렌 룬드비(24) 등 유명 외국선수 이름을 줄줄이 댔다. 그는 “한국이 강세를 보이는 쇼트트랙 등 빙상종목엔 딱히 관심이 없다. 선수 국적에 상관 없이 스키 종목 경기들을 챙겨볼 계획”이라고 했다.
선수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 한국 대표팀 종합 성적도 관심에서 떨어진다. 9일 개막한 평창동계올림픽을 대하는 국내 젊은 스포츠 마니아의 ‘쿨(Cool)’한 자세다. 본인이 관심 있는 선수를 응원하고 좋아하는 종목을 챙겨볼 뿐, 반드시 우리나라를 응원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온라인 공간에선 한국 대표팀을 과도하게 응원하는 행위를 ‘국뽕(국가+히로뽕)’이라며 경계하는 분위기다.
해외에 살면서 올림픽 경기를 두고 현지인과 미묘하게 틀어지거나, 티격태격하던 것도 옛일이다. 5년 전 일본으로 가 대학을 졸업한 뒤 현지에서 취업한 장모(25)씨는 이번 올림픽을 보며 일본인 친구들과 서로 다른 선수를 응원하다 갈등을 벌일 일이 없다. 장씨가 가장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선수가 일본 국적 피겨스케이팅 선수 하뉴 유즈루(24)이기 때문. 김연아를 보면서 피겨스케이팅 경기를 챙겨보기 시작해, 일본에서 주목 받는 하뉴에게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장씨는 “한국과 일본 모두 스포츠 경기를 두고 묘한 경쟁 의식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올림픽을 스포츠 자체로 즐기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전했다.
“한국인이면 당연히 한국 선수 응원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에 반감을 표하는 젊은이도 많다.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 행사가 열릴 때마다 한국 대표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강요된 애국심’이 불편하다는 것. 대학생 최모(24)씨는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한국으로 귀화한 외국 선수들도, 외국 대표팀에서 뛰는 한국인 선수들도 있으니 단순히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표팀을 응원하는 건 당연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번 올림픽 아이스하키 바이애슬론 등 종목에서 한국 대표팀으로 출전하는 귀화 선수는 19명으로 전체(144명)의 13%에 달한다.
이번 올림픽에서 국적 상관 없이 컬링 경기를 챙겨보겠다는 대학생 차보명(25)씨는 “선수 개개인이 만들어낸 성과를 마치 국가가 이룬 업적처럼 포장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며 “동계올림픽은 특히 개인종목이 많은데, 국가 단위로 메달을 집계할 필요가 있나 의구심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젊은 스포츠 마니아들이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애국심이 덜한 건 아니다. 고강섭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가 중심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란 기성세대와 달리 젊은 세대는 보다 세계화한 시각을 갖추고 자유롭게 본인이 원하는 것을 소비하려는 경향이 크다”며 “애국심 문제가 아니라 세계화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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