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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미국 SF, 백인만 쓰라는 법이 있나... 거기 그가 있었다

입력
2018.02.10 09:00
17면
언어학과 기호학으로 무장한 SF 작가 새뮤얼 R. 딜레이니는 언어를 바꾸면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언어가 사고와 지각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그의 활극은 그래서 종종 언어나 기억, 신화, 성적 취향처럼 개인의 내면에 존재하지만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주제들을 다룬다. NASA 제공
언어학과 기호학으로 무장한 SF 작가 새뮤얼 R. 딜레이니는 언어를 바꾸면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언어가 사고와 지각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그의 활극은 그래서 종종 언어나 기억, 신화, 성적 취향처럼 개인의 내면에 존재하지만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주제들을 다룬다. NASA 제공

화려한 문장ㆍ자극적 아이디어로

네뷸러상 거듭 수상하며 데뷔

수학자ㆍ기호학자로도 유명하고

교수ㆍ평론가로 SF연구 초석 다져

자신이 게이이자 바이섹슈얼

‘그’ 대신 ‘그녀’ 즐겨 쓰고

매년 퀴어 퍼레이드 나서기도

새뮤얼 R. 딜레이니는 미국 최초의 흑인 SF 작가는 아니지만, 단연코 가장 유명한 작가다. 그는 흑인 여성으로 독보적인 작품을 남긴 옥타비아 버틀러보다 한 세대 앞서 자리매김하며, 백인 남성 중심이었던 미국 SF가 인종적 편견에서 벗어날 실마리를 제공했다. 딜레이니는 전위적이고 화려한 문장과 자극적인 아이디어를 결합한 작품으로 네뷸러상을 거듭 수상하며 SF 문단을 석권했고, 수학자, 기호학자, 언어학자, 음악가로서도 이름을 떨쳤다. 대학 교수로 교편을 잡는 한편 깊이 있는 평론으로 SF 학술 연구의 초석을 쌓았고, 게이/바이섹슈얼로서 사회 활동을 펼치며 미국 성소수자의 아이콘이 되었다. 버틀러를 비롯한 동료 작가들은 딜레이니를 두고 이렇게 평하곤 했다. “그가 거기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재미와 통찰을 양립시킨 천재

새뮤얼 R. 딜레이니는 미국 역사에도 등장하는 명망 있는 가문의 첫째로 태어났다. 그의 조부는 해방 노예이자 흑인 최초로 미국 성공회 사제 서임을 받고 최초의 흑인 주교가 된 인물이다. 딜레이니 주교의 자녀들은 인종차별이 노골적이었던 20세기 초에도 전원이 대학을 마칠 정도로 훌륭한 성취를 보였다. 고모인 “새디와 베시” 자매는 시민권 운동의 선구자였으며, 집안 역사를 담은 이들의 자서전 ‘하고 싶었던 말’은 사료로 인정받으며 500만부 이상이 팔렸다. 사업가였던 아버지와 뉴욕 공공 도서관의 사서였던 어머니는 가풍에 맞게 자녀 교육에 관심을 아끼지 않았다. 어린 딜레이니는 일찍부터 예술과 과학에 재능을 보인 신동이었고, 난독증을 앓았음에도 불구하고 집안의 헌신적인 지원을 받으며 언어를 다루는 방법을 익혔다. 그는 나중에 아내가 되는 친구 마릴린 해커의 권유로 19세에 판타지 장편 ‘앱터의 보석’을 출간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시인이자 유능한 편집자였던 해커와는 후에 전위 문학잡지 ‘쿼크’를 공동 편집하기도 했다.

딜레이니가 SF를 쓰기 시작한 1960년대는 SF로서 일반문학 못지않은 문학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뉴웨이브 사조가 SF 문단 전체를 재구축하던 시기였다. 문학적으로 세련되면서 오락물로도 뛰어났던 딜레이니의 작품은 처음부터 큰 환영을 받았다. 그는 1966년 ‘바벨-17’, 1967년 ‘아인슈타인 교점’과 단편 ‘그래, 그리고 고모라’로 네뷸러상을 수상했고, 1968년 ‘시간은 준보석의 나선처럼’으로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수상하며 20대의 나이에 거장이라는 지위를 확립했다. 그리고 신체와 기계의 융합을 자유롭게 묘사하거나 문체 실험을 통해 시각적으로 강렬하고 도발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윌리엄 깁슨을 위시한 후대의 사이버펑크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딜레이니의 작품은 다층적이고 다채로운 상징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그는 언어나 기억, 신화, 성적 취향 등 개인의 내면에 존재하면서도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주제를 SF로 녹여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그의 초기 대표작 ‘바벨-17’은 언어가 곧 사고를 결정한다는 사피어-워프 가설을 적극적으로 채택한 소설이다. 위대한 시인이며 천재 언어학자인 중국계 여성 주인공이 ‘바벨-17’이라는 언어의 정체를 밝히는 이 이야기는, 우주를 누비는 활극인 동시에 언어의 궁극적 형태를 고안하고 심층기억과 세뇌의 메커니즘을 탐구하는 지적인 고찰이다. 작중 전쟁 수행을 위해 언어로 사람을 통제한다는 아이디어나, 오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동맹’과 ‘침략자’가 사실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은 ‘1984’처럼 부조리를 직시한 디스토피아 계열의 작품으로도 볼 수 있지만, 유능한 여성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미래의 가능성을 펼친다는 점에서는 SF 특유의 낙관론을 읽을 수도 있다.

언어가 우주전쟁의 비밀병기로 기능하는 ‘바벨-17’의 국내판 표지.
언어가 우주전쟁의 비밀병기로 기능하는 ‘바벨-17’의 국내판 표지.

‘바벨-17’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탁월한 아이디어는 우주선의 승무원 구성이다. 승무원 중 유령인 ‘유체인’은 우주선 바깥을 감지하는 ‘눈’, ‘귀’, ‘코’로서 일종의 레이더 역할을 맡는다. 이 사회에서 냉동수면과 자살, 부활과 유체화는 흔하지는 않아도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받아들여진다. 자연히 죽음과 삶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도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다. 한편 항법사는 3명이 3인조를 이루어야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들 3명은 감정적이고 성적인 유대를 맺으며 서로 ‘남편’이나 ‘아내’ 관계가 되는데, 일대일의 전통적인 부부/연인 관계와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일반 사회에서는 변질자라고 경멸당한다. 신체 변형이나 인체 소생은 용인하면서도 삼자 연애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미래사회의 모습은, 정상성을 둘러싼 금기와 아이러니를 직접 경험하고 그 본질을 꿰뚫어본 딜레이니다운 통렬한 설정이라고 하겠다.

사회가 만드는 언어, 사회를 바꾸는 언어

딜레이니는 인종차별은 시스템이기 때문에 선의나 악의와는 무관하게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1960년대 미국 SF 문단은 미국사회 전체에 비하면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분위기였음에도 백인 남성 중심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딜레이니가 장편 ‘노바’를 SF 잡지 ‘아날로그’에 투고했을 때,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작품을 선호하기로 유명했던 존 캠벨 편집장은 “흑인 주인공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또한 딜레이니가 네뷸러상을 수상하던 1968년, 아이작 아시모프는 그에게 “자네가 깜둥이라서 자네에게 투표했다”는 말을 건넸다. 이는 비록 작품에 대한 악평에 신경 쓰지 말라는 위로이고 농담이었지만, 딜레이니의 인종이 지워지지 않는 꼬리표라는 점을 극적으로 드러낸 말이기도 했다. 이러한 악의 없는 혐오를 수없이 겪은 딜레이니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시스템을 바꾸는 언어를 고찰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성차별에 관해서도 무심하지 않았다. ‘바벨-17’을 쓰고 난 후, 딜레이니는 에세이나 기고문에서 예문을 쓸 때마다 ‘그’ 대신 ‘그녀’를 주어로 선택했다. “내가 “작가인 그녀는”이라고 쓰면 60, 70년대의 교열 편집자들은 대개 “작가인 그는”으로 수정해서 주고는 했어요. 그럼 나는 그것을 다시 고쳐서 보냈죠. 언제나 그럴 기회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요. 나 이전에는 그렇게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그”라고 쓰는 게 완벽히 지적인 결정이긴 했죠. 하지만 저는 그저, 여성 시인이 내내 고난과 시행착오를 겪는 소설을 쓰고 나니, 어린아이부터 동물이나 작가, 학부모가 죄다 남성으로만 구성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더군요. 내가 알기론 몇몇 작가들이, 특히 SF 장르 작가들이 이 아이디어에 착안해 같은 일을 시작했어요.”

‘노바’는 ‘아날로그’에 실리지 않았어도 극찬을 받았고, 이제 편집자들은 “작가인 그녀는”이 어법상 어색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언어는 진실을 표현하기에는 언제나 불완전하며, 의식적이든 암묵적이든 늘 선택을 요구한다. 따라서 언어는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동시에 사회를 변화시키는 매체가 된다. 딜레이니는 자신의 말과 자신의 인생으로 이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딜레이니 선생의 생애와 견해

딜레이니의 인생을 말할 때는 그의 결혼생활을 빼놓을 수 없다. 딜레이니는 일찍부터 자신의 성적 지향을 숨기지 않았고, 아내 해커도 나중에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밝혔다. 이 부부는 어린 시절을 함께한 친구로서, 글을 쓰는 동료로서, 그리고 대안적인 가족 관계를 실험한 파트너로서 오랫동안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동거와 별거, 삼자 연애 등을 시도했던 둘의 관계는 양쪽 모두의 작품 세계에 깊이 반영되었다.

딜레이니는 또한 ‘정욕의 조류’ 등 성적인 금기를 노골적으로 다루는 작품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호그(Hogg)’는 한번도 털을 깎지 않은 어린 양을 뜻하는 말로, 이 책의 초안은 스톤월 항쟁 며칠 전에 완성되었다. 스톤월 항쟁은 1969년 6월 28일 뉴욕의 술집 스톤월에서 경찰과 동성애자들이 대치하며 일어난 사건으로 당시에는 동성애를 검거하는 것이 합법이었기 때문에 경찰이 동성애자들이 모인다고 추정되는 술집을 급습하곤 했다. ‘호그’는 잔인한 장면과 사회통념에 어긋나는 성적 행위를 상세히 묘사한 탓에 어디에서도 출간되지 못했다가 1995년에야 비로소 수정본이 출간되었다.

1975년 포스트모던한 대작 ‘달그렌’의 폭발적인 성공으로 장르 내외에 명성을 떨친 딜레이니는 강연과 문학 비평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뉴욕 시립대학교, 코넬 대학교, 시카고 대학교 등의 연단에 올랐고, 템플 대학교에서 2015년까지 영문학 전임교수로 지내며 기호학과 영문학을 가르쳤다. 비평가로서는 ‘보석 경첩이 달린 턱’이나 ‘우현의 와인’ 등 일련의 탁월한 SF 비평서를 출간했다. 그는 SF에 공헌한 바를 인정받아 1985년 SF연구협회에서 수여하는 필그림상을 수상했고, 2002년 SF 및 판타지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2013년에는 서른 번째 SF 그랜드 마스터가 되었다. 또한 퀴어 작가로서 스톤월 도서상, 브루드너 상, 람다 문학상, 빌 화이트헤드상을 수상했다. 딜레이니 자신의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박식한 사람, 혹은 새뮤얼 R. 딜레이니 선생의 생애와 견해’는 여러 퀴어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그는 현재 파트너와 함께 뉴욕에 거주하고 있으며, 매년 퀴어 퍼레이드에 등장하는 마스코트가 되고 있다.

▦새뮤얼 R. 딜레이니 (Samuel R. Delany)

1942년 4월 1일 출생. 새뮤얼 레이 딜레이니 주니어, 친구들에게는 “칩(Chip)” 딜레이니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그는 미국 뉴욕시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신동으로 불리며 영재 교육을 받았지만 난독증으로 인해 뉴욕시립대학교를 중퇴했다. 시인인 마릴린 해커와 맺은 동지적 관계로도 유명하며, 1961년 해커와 결혼하여 1974년에 딸을 두고 1980년에 이혼했다. 60년대에는 한동안 뉴욕 히피 코뮌 ‘헤븐리 브렉퍼스트’에서 생활하며 동명의 밴드에서 음악가로 활동했다. 딜레이니는 미국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SF 작가로서 동료 작가인 로저 젤라즈니의 최대 라이벌로 꼽혔으며, 명실공히 살아있는 거장이 되었다.

심완선ㆍSF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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