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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건설 매각 무산... 강점 '해외사업'이 되레 발목 잡았다

입력
2018.02.08 17:0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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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화력발전 사업 과정서

3000억원대 사업 부실 불거져

호반 “포기 결정의 가장 큰 원인”

네 번째 새주인 찾기 원점으로

“해외사업 대대적 칼질” 전망도

8일 호반건설이 인수를 포기한 서울 종로구 신문로 대우건설 본사 앞. 신상순 선임기자
8일 호반건설이 인수를 포기한 서울 종로구 신문로 대우건설 본사 앞. 신상순 선임기자

대우건설의 네 번째 새 주인 찾기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호반건설은 대우건설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 불과 9일만에 해외 건설 현장의 대규모 손실을 이유로 인수ㆍ합병(M&A)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45년간 숱한 위기 속에서도 ‘건설사관학교’의 명성을 지켜온 대우건설은 이번에도 ‘주인 운이 없는 회사’라는 꼬리표를 뗄 수 없게 됐다.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은 8일 경영진 회의를 거쳐 대우건설 인수를 중단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호반건설은 지난달 31일 대우건설 지분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아직 대우건설 매각 주체인 산업은행과 양해각서(MOU)나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지 않은 상태였다. 계약금 지급 전 실사비용과 지분 매각 풋옵션 보증수수료 등만 감당하고 발을 빼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성사 직전까지 갔던 대우건설 매각이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은 돌발적으로 불거진 해외 사업 부실 때문이다. 대우건설은 올해 초 모로코 사피 복합화력발전소 현장에서 장기 주문 제작한 기자재에 문제가 생긴 것을 발견한 뒤 다시 제작에 들어가며 지난해 4분기 실적에 3,000억원의 잠재 손실을 반영했다. 대우건설의 해외사업은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손실이 855억원이었는데, 이번 모로코 건이 더해지면서 손실 규모가 연간 4,000억원 수준으로 급증했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기준 종합건설시공능력평가액이 8조3,012억원으로,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자산은 10조원, 연 매출도 11조원에 달한다. 대우건설은 1973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영진토건의 영업권을 인수해 직원 12명으로 세운 회사에서 출발했다. 설립 3년 만에 해외 건설업 면허를 취득하고 남미 에콰도르 키토시 도로포장공사를 수주하며 국내 건설사 중 해외 시장에 처음 진출하는 등 빠르게 몸집을 키웠다. 국내에선 동작대교와 서울지하철 2호선 등 굴지의 건설공사를 수행하며 승승장구했다.

굴곡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97년 외환위기 시절이다. 당시 유동성 부족과 경영 악화로 정부와 채권단 등에 넘겨졌던 현대건설과 우리금융, 외환은행, 하이닉스, LG카드 등이 구조조정 과정을 거쳐 새 주인을 만난 뒤 우량기업으로 거듭난 것과 달리 대우건설의 홀로서기는 쉽지 않았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관리를 받으며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졸업 후 2004년 M&A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2년여만인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지분 72.1%를 6조6,000억원에 인수하며 새 주인이 됐다. 그러나 당시 금호산업의 자산규모는 2조원에 불과했다. 결국 무리하게 돈을 끌어 모으는 과정에서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자 금호는 2009년 다시 대우건설을 시장에 내놨다. 2011년 산업은행이 지분 50.75%를 사들이며 최대주주가 됐고, 산은은 대우건설 재매각 작업에 나서 지난달 호반건설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사실 이번 매각 작업 과정에서도 ‘새우가 고래를 삼킨다’는 평가가 많았다. 호반건설의 유동성이 풍부하다 해도 시공능력 13위가 3위를 인수ㆍ운영하기엔 어려움이 커 ‘승자의 저주’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그 동안 대우건설의 강점으로 평가됐던 해외사업이 오히려 매각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1년 매출이 1조2,000억원 수준인 호반건설은 해외 현장 한 곳에서 3,000억원이 넘는 부실이 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호반건설 관계자는 “장래 해외사업 등에서 나타날 손실 규모가 예측 불가능했다는 점이 인수 포기 결정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대우건설 매각 실패를 바라보는 대우건설 직원 사이에는 미묘한 온도 차가 감지된다. 대우건설 간부들 사이에선 은행과 같은 임시 주인이 아니라 새 주인이 나선 만큼 안정적이면서도 공격적인 운영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아쉽다는 반응이 나왔다. 매각이 실패로 돌아가며 해외사업에 대한 대대적 ‘칼질’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그러나 그 동안 산업은행의 매각 진행 과정에 불만을 제기해온 대우건설 노동조합은 호반건설의 인수 포기에 대해 다행이란 반응을 보였다. 김우순 대우건설 노조위원장은 “호반건설은 앞서 다른 기업의 매각 때도 수 차례 치고 빠지기를 한 전력이 있는데도 밀실 매각을 진행한 산은의 책임이 크다”며 “이번 모로코 해외건설 부실도 산은의 경영 아래에서 수주했던 사업장이란 점에서 관리부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기중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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