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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세] 이 공정무역 커피 원산지가? “동티모르입니다”

입력
2018.02.0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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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다만세는 ‘다시 만난 세계’의 줄임말입니다. 국제뉴스에서 소외됐던, 그러나 흥미로운 나라들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연재입니다.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커피 중 마니아들 사이에서 가장 각광받는 커피는 단연 동티모르산이다. 동티모르 커피는 해발 700~1,000m이상의 산간지역에서 자연상태로 재배된다. 살충제나 비료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 ‘천연커피’ ‘야생커피’라 불리며, 깊고 부드러운 맛을 자랑한다.

재배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생산량은 전세계 커피 생산량(약 697만톤)의 1%도 안 되지만, 동티모르 사람들에게 커피는 없어선 안될 생계 수단이다. 동티모르인의 80% 가량이 종사하는 농업의 절반 이상이 커피농사다. 이 나라에선 대부분의 작물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양만큼만 재배된다. 반면 커피는 유일하게 잉여가 발생하는 작물로, 동티모르 전체 수출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효자품목이다. 커피와 동티모르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동티모르 농민이 재배된 커피콩을 들어 보이고 있다. 동티모르에서 재배되는 커피는 크게 아라비카(Arabica)와 로버스트(Robust),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아라비카는 원두가 크고 길쭉하며, 전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커피 종류 중 하나다. 해발 700m 이상의 고지대에서만 재배되며 신맛이 강하고 향이 뛰어나 고가에 거래된다. 반면 알이 작고 동그란 로버스트는 저지대에서도 재배 가능하며 값이 저렴해 주로 인스턴트커피의 원료로 사용된다. 유엔 제공
동티모르 농민이 재배된 커피콩을 들어 보이고 있다. 동티모르에서 재배되는 커피는 크게 아라비카(Arabica)와 로버스트(Robust),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아라비카는 원두가 크고 길쭉하며, 전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커피 종류 중 하나다. 해발 700m 이상의 고지대에서만 재배되며 신맛이 강하고 향이 뛰어나 고가에 거래된다. 반면 알이 작고 동그란 로버스트는 저지대에서도 재배 가능하며 값이 저렴해 주로 인스턴트커피의 원료로 사용된다. 유엔 제공

식민지배가 남기고 간, 커피

동티모르에서 커피가 처음 재배되기 시작한 건 19세기 초다. 당시 동티모르를 지배하고 있던 포르투갈은 티모르 섬의 특산물인 백단향을 유럽시장으로 수출하며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특유의 향을 가진 백단향은 해충의 접근을 막아줘 귀족의 저택이나 값비싼 수공예품에 주로 쓰였다. 그러나 무자비한 벌목 탓에 금세 자취를 감췄고, 수십년씩 백단향을 키우는 데 부담을 느낀 포르투갈이 대신 재배하기 시작한 게 커피다. 커피와 함께 사탕수수와 밀, 감자 등 다른 작물도 들여왔으나 토질이 척박한 동티모르에선 커피만 천연 군락을 이루며 성공적으로 뿌리내렸다.

포르투갈은 커피재배가 가장 잘 되는 에르메라(Ermera) 지역을 중심으로 커피공장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수출을 시작했다. 커피가 동티모르의 주요 수출품으로 자리매김한 것도 이 때부터다. 그러나 이후 인도네시아 통치시대에 접어들면서 커피산업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수 차례 내란과 학살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커피산업이 내팽개쳐진 것이다.

동티모르 농민들이 재배된 커피콩 중 판매 가능한 것들만 골라내고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 제공
동티모르 농민들이 재배된 커피콩 중 판매 가능한 것들만 골라내고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 제공

동티모르 커피산업이 다시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건 2002년 독립 후 2~3년이 지나고부터다. 당시만 해도 커피는 가난한 농민들이 재배하는 값싼 작물이었다. 다국적 기업들은 이를 터무니없이 싼 값에 사갔고, 농민들은 가난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이에 동티모르의 자립을 돕던 주변국과 시민단체들은 피폐해진 커피산업을 되살리기 위해 ‘공정무역 커피’ 캠페인을 벌였다. 커피산업으로 발생한 이윤이 현지 농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합리적인 값을 치르도록 한 것이다. 현재 동티모르 커피생산량의 절반은 글로벌 커피 브랜드인 ‘스타벅스’가 이런 방식으로 구매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선 YMCA 등이 매년 약 50톤 이상의 공정무역 커피를 들여와 판매하고 있다.

수 백년을 기다린 독립 ‘10일 천하’로

동티모르는 우리나라 강원도(1만6,873㎢) 크기의 작은 섬나라로, 인도네시아 남쪽 티모르섬 동쪽에 위치해있다. 커피의 역사에서 엿볼 수 있듯 동티모르는 오랜 기간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다. 향료무역을 독점하기 위한 유럽열강의 다툼이 치열했던 16세기 무렵, 가장 먼저 이곳에 온 포르투갈이 약 450년을 지배했다. 하지만 포르투갈은 향료, 커피 외엔 동티모르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대신 또 다른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지역에서 전쟁을 치르고, 자원을 착취하는 데 집중했다. 이후 포르투갈 내 파시스트 정권이 무너지며 혼란기가 오자 동티모르에선 수 차례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1975년 11월28일 마침내 ‘동티모르민주공화국’으로 독립했다.

하지만 독립의 기쁨도 잠시. 독립 선언 후 단 10일만에 인도네시아가 무려 6만 여명의 주민들을 학살하며 동티모르를 침공해 인도네시아의 27번째 주로 편입했다. 수백 년을 고대해 온 독립이 ‘10일 천하’로 끝난 것이다. 점령군은 툭하면 전투기로 민간 마을을 폭격했고, 저항하는 사람들을 붙잡아 잔인하게 고문하고 살해했다.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가들은 인도네시아의 이 같은 만행에 눈을 감았다.

억눌렸던 민심이 터진 건 1991년 11월이다. 독립을 외치던 동티모르 청년이 인도네시아군의 폭격에 살해됐고, 그의 추모식에 참석한 수천 명의 군중에 인도네시아 군이 무차별 폭격을 가한 것. 단 하루 만에 273명이 사망했고, 250여명이 실종됐으며, 약 370명이 부상당했다. 이 사건은 당시 청년의 유해가 묻힌 ‘산타크루즈 묘지’에서 이름을 따 ‘산타크루즈 대학살’이라 불린다. 소리 없이 묻힐 뻔 했던 산타크루즈 대학살을 알린 건 현지에 머물던 영국 기자였다. 국제사회는 그간의 침묵을 깨고 1993년 유엔인권위원회(UNCHR)에서 인도네시아를 비난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동티모르 문제에 적극 관여하기 시작했다.

동티모르 아이들이 해맑게 웃으며 뛰어 놀고 있다. 플리커 제공
동티모르 아이들이 해맑게 웃으며 뛰어 놀고 있다. 플리커 제공

21세기 첫 독립국... 가난서 벗어나진 못해

국제정세는 서서히 동티모르에 유리한 쪽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1997년 경제위기가 결정적이었다. 경기침체로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면서 영원할 것 같았던 수하르토 대통령의 독재가 막을 내린 것. 이어 국제통화기금(IMF)의 도움이 절실해진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의 독립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압력에 굴복했다. ‘주민투표를 통한 독립 허용’이란 유엔 방식에 전격 동의한 것이다. 주민들에게 ‘인도네시아 자치령으로 남는 것’과 ‘완전 분리 독립’ 중 하나를 택하도록 했다. 인도네시아는 내심 ‘반대’가 더 많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간 도로 등 기반시설을 정비하고 교육체계를 도입하는 등 동티모르의 경제ㆍ사회 발전에 기여했다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표 결과는 자명했다. 투표에 참여한 45만명(전체 유권자의 95%) 중 78.5%(34만4,580명)가 독립에 찬성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친인도네시아 자치파는 주민 2,000여명을 무자비하게 살상하고, 상점과 거주지를 약탈했다. 그러나 호주를 주축으로 한 다국적군에 의해 바로 진압됐고, 약 24년간의 인도네시아 지배가 막을 내렸다. 당시 다국적군엔 우리나라 상록수 부대도 포함돼 있다. 이후 동티모르는 유엔의 보호 하에 2002년 5월20일 독립을 선포했다. 21세기 첫 독립국이 탄생한 것이다.

독립 후에도 잇따른 내란으로 불안한 정세를 이어가던 동티모르는 최근에야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2016년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134달러로 최빈국(UN 기준 1인당 GDP 900달러 미만)에서 벗어나 개발도상국 대열에 합류했다. 석유와 천연가스 등 자원개발에 따른 경제성장으로 공적개발원조(ODA) 의존도 점차 줄여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인구의 절반 가량은 하루 소득이 1달러 미만인 빈곤층이다. 1인당 국민소득도 2,060달러(2016년 세계은행)로, 우리나라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때문에 동티모르 정부는 2011년 ‘국가개발 20년’ 계획을 수립하고 대규모 인프라 건설을 위해 노력하는 등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베트남의 박항서? 동티모르엔 김신환이 있다

이 작은 나라 동티모르는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가장 화제가 됐던 건 축구다. 최근 ‘베트남의 히딩크’로 급부상한 박항서 감독처럼 동티모르에도 축구로 기적을 일군 이가 있다. 바로 김신환(61) 감독이다. 현대자동차 소속 선수로 활약했던 김 감독은 은퇴 후 사업 아이템 발굴을 위해 떠난 동티모르에서 우연히 유소년 축구단 감독을 맡았다. 2003년의 일이었다. “나에겐 있어도 소중한 줄 몰랐던 ‘축구’가 그들에게는 생명 같은 목표와 사랑”(책 ‘맨발의 기적’ 중)임을 깨달은 김 감독은 전 재산 2만 달러를 탈탈 털어가며 혼신의 힘을 다했다. 아이들은 그런 김 감독의 정성에 결과로 보답했다. 훈련을 시작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2004년 ‘제30회 리베리노컵 국제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 축구 불모지였던 동티모르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우승을 차지하자, 현지에선 ‘히로시마(대회 개최지)의 기적’이라며 김 감독을 ‘국민영웅’으로 추앙했다. 이 공로로 대통령 훈장, 표창장 등을 받기도 한 김 감독은 현재 축구 성인팀을 맡고 있다.

2004년 3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제30회 리베리노컵 국제축구대회'에 출전한 동티모르 유소년 대표팀과 김신환(맨 왼쪽) 감독이 경기 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004년 3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제30회 리베리노컵 국제축구대회'에 출전한 동티모르 유소년 대표팀과 김신환(맨 왼쪽) 감독이 경기 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14년 전엔 ‘한글 수출’ 해프닝

동티모르는 한국어의 위상이 높은 나라 중 한곳이다. 국민의 80%가 ‘테툼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를 표현할 고유 문자가 없어 표기가 뒤죽박죽이다. 2004년엔 “모든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한글이 테툼의 문자 표기에 적합하다”라며 ‘한글 수출’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이후 한글이 문자로 자리잡았다는 소식은 없다. 그러나 2008년 시행된 고용허가제로 한국에서 일하려는 동티모르인들이 늘면서 한국어의 인기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동티모르국립대에서 한국학 연구소를 운영 중인 최창원(48) 교수는 “한국어는 공용어인 포르투갈어, 비즈니스 언어인 영어, 인도네시아어 다음으로 위상이 높다”라며 “국립대 일부 학과는 한국어를 수강하지 않으면 졸업을 못하게 할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기가 높아지면서 최근엔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과 최 교수가 함께 테툼어-한국어 사전도 제작하고 있다. 이는 올해 말부터 네이버의 사전에서 서비스될 예정이다. 도원영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는 “한국어-테툼어 사전도 기획하고 있으며 내후년쯤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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