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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말아달라” 외쳤건만…고개 떨군 경비원 94명

입력
2018.02.01 13:57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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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구현대아파트

용역업체 통한 간접고용 나서

서울 강남구 압구정 구현대아파트 경비원 김모씨가 지난달 5일 3.3㎡ 남짓 경비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김형준 기자
서울 강남구 압구정 구현대아파트 경비원 김모씨가 지난달 5일 3.3㎡ 남짓 경비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김형준 기자

서울 강남구 압구정 구현대아파트가 결국 경비원 94명 모두를 해고하기로 했다. 다만 경비용역업체를 통해 이들을 간접 고용하겠다며 1일 업체 선정에 나섰다. 경비원들이 간접 고용을 저지하기 위해 낸 가처분신청이 각하된 다음날 이뤄진 결정이다. 주차관리 등으로 불거진 아파트 주민과 경비원 간 갈등은 풀리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1부(부장 이제정)은 지난달 31일 구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 3명이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낸 결의 효력정지 신청 사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입주자대표회의는 직접고용 형태로 운영하던 경비 업무를 올 2월부터 용역을 통한 간접고용으로 전환하는 결의안을 지난해 10월 통과시켰다. 이에 경비원들이 “절차적 실제적 하자가 있다”고 소송을 냈지만, 경비원들은 해당 결정을 문제 삼을 ‘법률상 자격’이 없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주민들이 경비원들을 해고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번 대량 해고 조치는 지난해 경비원 절반(47명)이 ‘휴게 미(未)보장 임금을 입주자대표회의가 주지 않았다’라며 실태조사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한 게 발단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회의가 최저임금 수준을 유지하던 임금상승률을 낮추기 위해 근무시간(24시간)에 휴게시간을 포함시켰음에도, 실제로는 주차관리 등을 시켰다는 것이다. 휴게공간 마련, 휴게시간 안내 표지판 제작 등 경비원 요구는 관철되지 않았다. 오히려 대표회의는 경비원을 줄이는 대신 주차관리, 택배보관, 청소, 제설 등 업무를 담당할 ‘관리원’을 신설, 고용하겠다고 밝혔다. 때문에 경비원들은 이번 대량 해고를 명백한 보복으로 보고 있다.

대표회의는 지난해 말 경비원들에게 해고 예고 통지서를 전달하면서 '경영상 이유로 내린 결정'이라며 경비원들을 해고하더라도 용역업체를 통해 이들을 다시 고용하겠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관련 회의에선 1년 뒤 감원 계획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경비원 측은 “재고용이 이뤄진다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매년 재계약을 하게 되면 고용이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라며 “경비원 입장을 반영하지 않은 고용 형태 변경은 해고 수순”이라고 주장했다. 고광찬 현대아파트노조 위원장은 “해고 통지서가 오는 대로 고용노동부에 구제 신청을 하려고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대표회의 측 입장을 듣고자 연락했으나 “답변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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