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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비트코인과 유시민의 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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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누군가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신기술의 총아라고 극찬하는 반면, 유시민 작가는 비트코인을 ‘바다이야기’와 다를 바 없는 도박에 불과하다고 혹평한다. 논란이 이렇게 커진 이유는 암호화폐 거래가 이상과열 징후를 보였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도 이제 거래실명제를 도입하고, 거래소 폐쇄여부를 포함한 종합적 대책 마련에 나섰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암호화폐 가격은 정부 발표에 따라 폭락과 반등의 롤러코스터를 반복했다.
암호화폐 논란을 보면서 나는 20세기 초반의 과학계 상황이 떠올랐다. 19세기의 과학과 20세기의 과학 사이에는 엄청난 인식론적 단절이 있다. 그 핵심은 물론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등장이다. 특히 양자역학은 과학자들이 원자 이하의 미시세계를 탐구하면서 알게 된 새로운 자연의 규칙이었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거시적 물체와 세상을 잘 이해하도록 진화해 왔다. 불행히도 인간에게 익숙한 현상이나 그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이 자연의 근본적 원리와 본성을 그대로 담고 있을 이유는 없다. 빛이 입자인가 파동인가, 원자 속의 전자는 입자인가 파동인가 하는 논란도 그래서 생겨났다. 입자나 파동은 19세기까지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도입한 개념이었다. 이런 개념들은 거시적 물체와 세상을 설명하는 데에 대단히 편리했고 인간의 직관경험과도 잘 맞았다. 하지만 입자나 파동이라는 개념은 빛이나 전자 같은 자연의 실재를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과학자들은 아예 미시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고전물리학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다. 양자역학은 그렇게 태어났다. 레너드 서스킨드 같은 석학은 이 과정을 ‘생각의 회로를 재배선하는 과정’이라 불렀다.
양자역학은 일반인들에게 무척 낯설겠지만 이와 비슷한 회로의 재배선 필요성을 다들 한 번쯤은 느껴봤을 것이다. 인터넷과 스마트 기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인터넷/스마트폰 이전의 가치와 개념으로 인터넷/스마트폰 이후를 가늠하거나 평가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가. 구글이나 애플은 구체제의 낡은 질서 속에서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거기에 따라 생각의 회로를 바꾸었다.
지금 우리 눈앞에 놓여 있는 암호화폐나 블록체인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의 회로를 바꾸어야 할 새로운 사례일지도 모른다. 암호나 화폐는 일상에서 흔히 쓰는 단어이기 때문에 암호화폐라는 개념을 지금까지의 우리 일상경험으로만 받아들일 소지가 많다. 비트코인이 과연 화폐인가 아닌가라는 논란의 핵심도 결국은 암호화폐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이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암호화폐가 과연 생각의 회로를 바꾸어야 할 만큼 가치 있는 새로운 문물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아이폰은 왜 모바일 혁신의 주인공이 되었을까 생각해 보자.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전화와 인터넷과 아이팟이 하나로 합쳐진 물건이라고 소개했다. 여러 기능이 하나로 통합된 물건은 아이폰 이전에도 많았다. 예컨대 사무복합기는 프린터, 스캐너, 팩스, 복사기가 하나로 통합된 기계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복합기가 아이폰보다 더 혁신적 기계라고 말하지 않는다. 왜 혁신은 복합기가 아니라 아이폰에서 시작되었을까? 그 답은 바로 디지털이다. 아이폰은 그 모든 기능이 디지털로 통합되었다. 아이폰의 모든 작업결과는 이메일로 주고받을 수 있다. 복합기에서는 이런 통합이 불가능하다. 모든 기능이 디지털로 통합되었다는 말은 우리 삶의 일부가 디지털로 구축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나는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날로그 위주의 세상을 ‘디지털 슈프리머시’로 바꾸는 과정이 바로 혁명이다.
쉽게 말해,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매트릭스’를 만드는 과정이다. 디지털로 건설될 새로운 세상에는 그에 걸맞는 화폐와 금융체계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 지금의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 바로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비트코인을 단순히 사토시의 장난감이나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또는 ‘바다이야기’로 등치시키는 것은 디지털 우위의 시대로 향하는 중요한 퍼즐조각을 놓치는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비트코인이 화폐로서 성공할 것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은 지극히 아날로그 편향적인 20세기의 질문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관점에서는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 과연 비트코인이 디지털 우위의 시대에 걸맞은 역할을 해낼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대안은 무엇인가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유시민의 튤립으로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가 없다.
지금의 투기광풍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부의 적절한 규제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정말로 중요한 점은 규제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관점과 철학으로 어느 정도의 규제를 할 것인가이다. 정부에서 이런저런 규제안을 만든다고 하는데, 정작 대통령 직속의 4차 산업혁명위원회에서 생산적인 논의를 주도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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