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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세] “돈 걱정은 없는데…” 아시아 ‘복지 킹’ 브루나이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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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다만세는 ‘다시 만난 세계’의 줄임말입니다. 지리적으로 가깝거나 정치적으로 중요한나라들이 아니여서 국제뉴스에서 소외됐던, 그러나 흥미로운 나라들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연재입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나라들이 어떤 사회, 문화적 배경을 가졌는지, 또 우리나라와는 어떤 인연이 있는지 등을 10회 분량으로 전해드립니다.
동남아시아 국가 중 한 곳으로, 매년 새해가 되면 국왕이 국민들에게 90만원 상당의 세뱃돈을 주는 나라. 정부가 가정당 평균 4대의 차량을 지원해 차량 보급률이 ‘자동차 왕국’이라 불리는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인 나라. 풍부한 천연자원 덕에 1인당 국민소득(GNIㆍ3만2,860달러)이 우리나라(2만7,600달러ㆍ세계은행 2016년 기준)보다 높은 이 나라. 과연 어느 나라일까?
아마 쉽게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싱가포르, 홍콩 정도만 제쳐놓고 동남아를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라 여긴다면 답은 오리무중이다. 편견을 버리고 다시 동남아를 들여다보자. 일부 동남아 국가들은 우리보다 풍요로운 삶을 영위한다. 그 대표적 나라 중 한 곳이 남태평양 보르네오 섬 북쪽에 위치한 ‘브루나이’다.
쪼그라든 영토… 석유로 되찾은 영광
지금의 브루나이는 보르네오 섬 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나라에 불과하지만, 한 때는 섬 전역(75만5,000㎢)과 북부 필리핀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지닌 막강한 나라였다. 당시(15~17세기) 브루나이는 오늘날과 같은 왕실체계를 만들고, 대내외적으로 굳건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왕위 계승 다툼으로 내부가 분열된 데다, 유럽인들의 침략이 시작되면서 서서히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특히 1800년대엔 섬에 침입한 영국과 여러 차례 우호조약을 체결하며 대부분의 영토를 영국에 넘겨줬다. 이 과정에서 영토가 대폭 쪼그라들어 현재는 국토면적이 경기도(1만172.4㎢)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렇잖아도 좁은 국토의 85%가 숲과 삼림지대로 이뤄져 있어 경작할 수 있는 땅은 고작 2%. 인구수도 우리나라의 1%(43만명)에 못 미치는 이 작은 나라가 존재감을 발휘하며 ‘동남아 최부국’ 중 한 곳으로 자리매김한 건 1929년에 발견된 석유 덕분이다.
브루나이의 일일 석유생산량은 약 13만 배럴(2015년 기준)로, 동남아 원유생산국 중에선 인도네시아 등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브루나이에서 생산된 원유는 대부분 호주, 한국, 일본 등으로 수출돼, 유가가 폭등했던 1960년대 말부터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였다. 또 1972년 아시아 최초로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출하기 시작해 현재 동남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천연가스 보유 및 생산국이 됐다.
월 30만원이면 축구장 크기 수상가옥 임대
브루나이가 중동의 여타 산유국과 다른 점은 천연자원으로 끌어 모은 부를 복지시스템을 통해 일부나마 국민들에게 돌려준다는 데 있다. 대표적 산유국 중 한곳인 이란은 석유매장량 기준 세계 3위, 천연가스 세계 2위 등으로 자원대국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5,443달러에 그친다. 우리나라의 1/5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천연자원이 넘치도록 풍부하지만 정작 국민들은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해 가난하단 얘기다.
반면 브루나이 국민들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달할 뿐만 아니라, 북유럽 부럽지 않은 풍족한 복지 혜택으로 교육ㆍ의료ㆍ주거 등 최소 세 가지만큼은 돈 걱정 없이 누릴 수 있다. 우선 교육은 초등학교(6년)부터 중ㆍ고등학교 5년, 대학 4년까지 모두 무상으로 이뤄진다. 일정 기준을 통과하면 유학도 정부지원으로 다녀올 수 있다. 의료서비스도 매년 1브루나이 달러(한화 약 800원)만 내면 개개인에게 필요한 모든 의료지원을 추가 비용 없이 받을 수 있다.
주거문제 또한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주고 있다. 브루나이 사람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수상가옥 지역인 ‘캄퐁 아예르’에선 월 30만원만 내면 4대가 함께 살 수 있는 축구장 크기의 수상가옥을 평생 임대할 수 있다. 현재 브루나이 국민의 5%(약 2만2,000명)가 이곳에서 거주하고 있다. 최근엔 전통적 수상가옥에 거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정부가 최고급 설비를 갖춘 수상주택을 증ㆍ개축하기도 했다. 노년에도 연금혜택을 받으며 부족함 없는 생활을 할 수 있다. 브루나이에선 60세 이상이 되면 누구나 매달 150달러씩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비슷한 제도를 통해 노년에 수입이 없어도 생활에 큰 지장이 없다.
외국인ㆍ종교에는 살벌한 나라
복지혜택으로만 보면 ‘지상 낙원’이 따로 없지만, 브루나이는 자못 살벌한 나라이기도 하다. 동남아 유일의 전제군주제 국가인데다 잔혹하기로 이름난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국법에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샤리아는 참수형, 투석형, 손발 절단 등 무자비한 형벌이 많다. 때문에 대개의 이슬람 국가는 이를 종교법으로만 두고, 실제 국법은 서구의 법체계를 따른다. 하지만 브루나이에선 샤리아에 따라 절도범은 손발 절단형, 간통ㆍ동성애 등은 투석형에 처한다. 당연히 국제인권단체는 부르나이를 ‘인권 탄압국’으로 낙인 찍었다.
종교적인 차별도 극심하다. 브루나이는 표면적으론 국교인 이슬람교 외 다른 종교를 포용하는 듯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타종교의 선교행위를 엄격히 금지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 공포증’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기독교에 유독 배타적이다. 성경만 들고 다녀도 포교로 간주돼 종교경찰(무타와)에 즉시 체포되며, 경우에 따라 태형에 처해질 수 있다. 또 2015년부터는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행위를 하면 최대 5년의 징역형을 내릴 것이라고 경고하며 ‘크리스마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 불교, 도교, 힌두교 또한 사원 증축을 금지하는 등 명맥을 잇지 못하게 만들었다.
사실 외국인은 살기가 힘든 나라다. 브루나이 국적자의 대부분이 ‘무슬림 말레이’인이며 이들이 전체 인구의 70% 가까이 차지한다. 정부는 이들이 경제활동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부미푸트라 정책’이다. ‘부미푸트라’는 ‘말레이계 사람’을 뜻한다. 이 정책은 브루나이 내에서 빠르게 경제적 세력을 키워가고 있는 화교들을 경계하고, 자국민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시행됐다. 이 같은 배타적 정책 탓에 브루나이는 세계은행이 선정한 ‘사업하기 좋은 비즈니스 환경 순위’에서 2015년 189개국 중 101위를 기록했다.
국왕 소유 자동차 4,000대ㆍ정비사만 100명
이 모든 엄격한 규율에도 예외는 있는 법. 바로 왕족이다. 브루나이에선 절대군주인 국왕(술탄)과 그의 가족을 견제할 법적, 제도적 장치가 없다. 이들에겐 국법도 적용되지 않는다. 브루나이에서 왕족이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존재다. 게다가 천연자원을 수출해 끌어 모은 부의 대부분이 사실상 국왕의 것이다. 미국 경제 주간지 포브스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의 재산은 약 200억달러(약 23조원)에 달한다. 세계에서 11번째로 재산이 많은 부자다.
국왕이 누리는 사치 또한 여느 부자들 못지 않다. 단적인 예로, 볼키아 국왕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4,000대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차를 관리하기 위해 그의 집에 상주하는 정비사만 100명 이상이다. 그는 자동차 외 항공기, 오토바이 수집광이기도 한데, 이미 보유한 항공기만 수백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ㆍ아세안 특별 정상회의 2014’에 참석하기 위해 4년 전 우리나라에 방문했을 때는 자신의 전용기를 직접 몰고 와 눈길을 끌기도 했다. 당시 볼키아 국왕이 머물렀던 호텔 스위트룸은 하루 숙박비가 1,000만원에 달했다. 가족들의 사치도 지지 않는다. 왕위서열 3위인 하지 압둘 아짐 왕자가 2013년 자신의 생일파티에 미국 할리우드 배우 린지 로언을 초대했는데, 초대비용으로만 10만달러(약 1억원)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왕족들의 놀라운 재력과 별개로 브루나이는 최근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 2009년 아시아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정부의 신규 개발사업이 중단되고,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GDP에서 석유와 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52.6%(2016년 기준)에 달하는 등 천연자원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높다 보니, 국제유가에 따라 경기가 출렁이는 게 큰 문제다. 실제 2008년엔 국제유가 변동의 여파로 148억 달러였던 명목 GDP가 이듬해 113억 달러로 내려앉으며 간담을 서늘케 했다. 때문에 브루나이는 석유ㆍ천연가스 의존에서 벗어나 경제를 다변화하고, 관광 등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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