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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화재]“어머니, 오늘이 퇴원하는 날이었는데…” 딸ㆍ사위들 통곡

입력
2018.01.26 17:45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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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시길 간절히 기도하며

다녔지만 끝내…” 울먹여

97세 최고령 사망자 박봉기씨 딸

“이렇게 보내드리게 돼 너무 죄송”

26일 오전 7시 30분쯤 경남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에서 불이나 노인 환자를 대피시키고 있다. 밀양=전혜원 기자
26일 오전 7시 30분쯤 경남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에서 불이나 노인 환자를 대피시키고 있다. 밀양=전혜원 기자

“오늘이 퇴원 날이었는데 이런 일이…”

박모(92)씨의 딸과 사위들은 26일 오전 8시30분 뉴스를 통해 밀양 세종병원 화재 소식을 전해들은 뒤 언론에 보도된 병원을 모두 찾아 헤매야 했다. 세종병원에 입원해 있던 박씨가 어느 병원으로 이송됐는지 몰라서다. 박씨는 폐에 물이 차 세종병원에서 치료 받던 중 상태가 호전돼 5층으로 옮겨져 퇴원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수소문 끝에 박씨의 시신을 마주한 가족들은 오열했다. 사위인 A씨는 “살아있으시라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찾아 다녔는데 끝내…”라며 울먹였다.

37명이 숨진 밀양 세종병원 참사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세종병원엔 고령자가 많이 입원해 있었기 때문에 사고 현장과 후송병원에는 연로한 어머니나 아버지를 찾는 초로의 자식들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사망자 중 최고령자인 박봉기(97)씨의 넷째 딸 손경숙(64)씨는 “어머니는 8남매를 기르셨고 지금도 다같이 모이면 복작복작 사이가 좋던 가족이었다”면서 “나이가 많이 드셔서 고통스럽지 않게 가셨으면 했는데, 이렇게 보내드리게 돼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이두수(80)씨의 첫째 며느리 김소희(56)씨는 “치료 받으러 간 사람이 병원에서 죽다니, 이건 말도 안 된다”고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어머니는 욕창 때문에 입원하셨기 때문에 금방 퇴원하실 줄 알았다. 29일에 다른 병원으로 옮길 예정이었는데 하필이면 그 사이에…”라면서 여전히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는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내게 ‘욕본다’고 하셨는데, 그게 마지막 말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시신을 봤는데 이까지 새까맣더라. 얼마나 괴로우셨을지 도무지 상상도 안 된다”고 흐느꼈다.

아버지 박지윤(59)씨를 잃은 재우(28)씨는 소식을 듣고 서울 강남에서 황급히 사고가 난 밀양으로 달려왔다. 그는 “아버지는 루게릭병으로 3층 중환자실에 계셨는데, 아침 일찍 병원을 방문한 어머니가 직접 화재를 목격하셨다”고 당시 상황을 전하며, “인공호흡기로 연명하셨던 아버지는 구조 뒤 호흡기도 없이 현장 옆 노인정에 방치됐다가 숨진 것으로 안다”고 호소했다.

전날 저녁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날 화재 뒤 사라진 어머니를 찾아 헤매던 이모(68)씨는 소방지휘본부를 찾아와 울먹였다. 이씨는 “88세에 치매환자다. 병실이 없어 응급실에 대기하고 계셨던 건지 지금은 소재는커녕 생사도 확인할 수도 없다”고 소방대원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제발 어머니를 찾아주세요.” 다행히 이씨 어머니는 사망자 명단에 없었다.

이날 빈소가 차려진 장례식장에는 부모가 당한 일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 듯 경황없는 표정의 유가족과 친지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시신이 많다 보니 일부 시신은 안치실에서 나와 복도에서 대기하는 일이 발생하는가 하면, “시신이 바뀐 것 아니냐”라며 일부 유가족이 관계자들에게 항의하는 일도 벌어졌다. 다른 병원으로 옮겨진 환자 중 중상자 대부분이 고령이라 사망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밀양=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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