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편의점 강력범죄 느는데 알바생 보호책은 뒷걸음질

입력
2018.01.24 04:40
10면
구독

업주들 “비용 때문에… 귀찮아”

비상벨ㆍ무다이얼링 시스템 외면

위급 상황 닥쳐도 무방비

경찰은 권고사항에 손 놓아

편의점에 설치된 '무다이얼링 시스템' 전화기. 일정 시간 안에 수화기를 내려놓지 않으면 경찰이 즉시 출동하게 돼 있다. 한소범 기자
편의점에 설치된 '무다이얼링 시스템' 전화기. 일정 시간 안에 수화기를 내려놓지 않으면 경찰이 즉시 출동하게 돼 있다. 한소범 기자

“추운데 왜 안에서 술 못 마시게 하고 XX이야.”

22일 밤 서울 종로구 번화가에 있는 편의점. 술이 거나하게 취한 손님이 아르바이트생 김모(25)씨에게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매장 내에서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말한 것뿐인데 입에 담기 어려운 폭언이 편의점을 쩌렁쩌렁 울렸다. 한참이 지나 손님이 나간 뒤 김씨는 ‘왜 신고를 하지 않냐’는 질문에 “한두번도 아니고, 별 수 없지 않냐”는 듯 한숨만 내쉬었다. 신고하겠다고 전화기를 들었다가는 오히려 상대 화만 돋우기만 할 뿐, 손님이 화를 가라앉히거나 제 발로 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게 김씨 얘기다.

최근 인천 부평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생이 이유 없이 폭행을 당하는 등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줄을 잇고 있지만, 이들을 보호할 ‘무선 비상벨 시스템’ 등의 활용이 미비하기만 하다. 비용 때문에 혹은 귀찮다는 이유로 업주들이 이들 설치에 무관심한 것인데 이로 인해 편의점을 지키는 아르바이트생 안전이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아르바이트생들은 상시적인 위험에 노출돼 있다. 2015년 한 해 편의점에서만 발생한 폭력범죄가 1,543건(경찰청)에 달할 정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서형수 의원이 지난해 9월 20일부터 10월 3일까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402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이 중 54.4%가 폭언이나 폭행을 경험했다고 답할 만큼 폭언이나 폭행에 노출돼 있다.

하지만 이들을 보호할 대책은 뒷걸음이다. 대표적인 것이 ‘무다이얼링 시스템’. 위급 상황에서 수화기를 들었다 내려놓으면 7초 뒤 경찰에 자동 신고되도록 하는 것인데, 처음 선을 보인 2007년부터 대부분 편의점에서 도입할 정도였지만 요즘 업주들이 이 시스템을 계속 없애는 추세다. 수화기를 잘못 놓거나 실수로 건드리면서 경찰이 출동하는 일이 잦은데, 이 때문에 ‘불편하니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는 업주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직원이 주머니에 소지하고 있다가 돌발 상황이 생겼을 때 누르도록 한 ‘무선 비상벨’, 계산대 밑 버튼을 발로 눌러 신고하는 ‘풋(Foot) SOS’ 등은 아예 이용 자체가 거의 없다. 2만원에서 많게는 7만원 정도까지 드는 설치 비용에다 매달 3,000원 정도 하는 유지비가 부담스럽다는 게 업주들 얘기다. 실제로 대표적 번화가인 서울 대학로 인근 편의점 10곳을 취재한 결과, 무선 비상벨이나 풋SOS를 설치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경찰은 “관내 편의점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무선 비상벨 등 설치를 홍보하고 있지만 강제사항이 아니라 권고 사항이기 때문에 별 관심이 없는 듯 하다”고 말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업주들로서는 직원에게 불상사가 생길 시 민사상 책임이 본인들에게도 있다는 점에서 지금처럼 아르바이트생 안전을 나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며 “경찰 등도 업주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글ㆍ사진=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