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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갈등 터진 창동역... 노점상 “생존권을" 주민들 “보행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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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민들 “30여년을 참아왔다”
취객들 고성방가ㆍ화재 위험
“세금 쏟아부어 유흥가 만드나”
박스형 매대 설치도 반대
#2
상인들 “구청만 믿었는데…”
맞춤형 특화거리 위해 임시 철거
“기업형 장사치는 이미 걸러내
다른 지역에서라도 장사 재개를”
지난해 12월 30일 새벽 서울 도봉구 지하철 4호선 창동역 2번 출구 앞. 쌀쌀한 날씨에도 노점상과 인근 주민 등 500여명이 뒤엉켜 밤샘 대치를 이어 가는 중이었다. 노점상들이 지하철이 지나는 고가 철로 밑에 박스 형태의 매대를 설치하려 하자 주민들은 필사적으로 막아 섰다. 8시간에 걸친 긴 대치 끝에 주민 6명이 다쳤고, 노점상들의 매대 설치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주민들은 지난해 11월부터 노점상 양성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창동역 재단장을 위해 노점상이 포장마차를 자진 철거한 직후이다. 규격화한 매대를 다시 설치하겠다는 상인들과 더 이상 거리가게는 허용할 수 없다는 주민들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3개월 째 되풀이되고 있다. 원래 노점이 있던 고가 철로 아래에서 기둥 두 개를 사이에 둔 채 각각 천막농성도 진행 중이다. 상인들이 철거한 노점은 총 55개,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재설치는 한없이 미뤄지고 있다.
30년간 소음ㆍ악취 시달려
창동역 노점 역사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5년 개통된 지하철 4호선이 지나는 고가 철로를 지붕 삼아 가게가 하나 둘 들어섰다. 그렇게 노점은 30년 이상 창동역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 하지만 환경개선 작업을 명목으로 노점이 임시 철거되면서 불만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구청 측이 보행로를 확장하고 상ㆍ하수도 시설 개선, 화장실 설치 공사 등에 나서자 ‘세금이 노점을 위해 쓰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커진 것이다.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중심이 된 ‘창동역 2번출구 불법 노점상 양성화 결사반대 주민대책위’는 주민 1만8,000여명에게서 반대 서명을 받았다.
주민들은 그 동안 난립한 노점 탓에 생활 공간이 침해 받고 있다고 성토했다. 특히 야간 시간대 철로 아래 포장마차에서 쏟아져 나온 취객들의 고성방가와 구토 등 각종 비위가 반복되면서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안전 우려도 있다. 포장마차들은 보통 액화석유가스(LPG)를 이용해 음식을 조리하는데, 철로와 인접해 있어 불이 나면 막대한 인적ㆍ물적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 2008년 노점에서 화재 사고가 난 적도 있다. 인근 아파트 주민 최모(30)씨는 “역사를 나서자마자 어두컴컴한 철로 밑에서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향할 때 느끼는 불안감은 상상 이상”이라며 “동네가 이제야 조용해 지나 했더니 다시 유흥가를 만들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은 상인들이 수십년 간 영리행위를 해온 만큼 ‘생존권’을 앞세운 노점상 재설치 논리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번듯한 건물을 소유하거나 다른 지역에서 임대 수익을 올리고 있는 상인이 적지 않은데, 과연 이들을 ‘생계형 노점’으로 볼 수 있냐는 것이다. 김현식 주민대책위 부위원장은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노점상들에게 지자체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며 “노점들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더라도 생계를 위한 것인지, 부업 활동인지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청만 믿었는데…
도봉구의회는 지난해 8월 ‘맞춤형 노점 특화거리를 조성하되 기업형 노점은 정리한다’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10개월 동안 ‘노점상 개선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운영하며 머리를 맞댄 결과다. 이에 따라 구청과 전국노점상총연합회 북동부ㆍ북서부지부는 환경개선 업무협약(MOU)을 맺고 ▦사업 기간 노점상 철수 ▦재입점 시 기존 천막보다 작은 규격의 부스 사용 ▦도로 점용료 납부와 입점자 재산공개 등에 합의했다. 구는 환경개선 사업에 예산 12억9,200만원을 편성하고, 이 중 6,500만원을 상하수도 개선 및 화장실 건설에 사용하기로 했다. 통일된 규격의 매대 제작 비용은 노점상들이 부담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상인들은 구청 설득으로 환경개선 사업을 받아들여 포장마차를 철거했다가 바닥에 나앉게 생겼다고 억울해 하고 있다. 주민 정서를 고려해 노점을 옮기고 규모를 줄이는 것은 물론, 기업형 장사치를 걸러내기 위한 실태조사도 받아들였는데 노점 재설치 자체가 거부당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의선 전노련 북서부 집행위원장은 “노점상이란 업태가 생계형을 추구하지만 지나치게 수익을 많이 내면 물러나는 것이 옳다고 동의했다”며 “고가 하부를 제외한 다른 지역 공사라도 마무리해 하루빨리 장사를 재개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보행권 침해냐 생존권 사수냐
노점을 둘러싼 갈등은 결국 주민 보행권과 상인 생존권 사이의 싸움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08년 각 지자체에 노점을 도로점용허가시설로 규정하는 조례를 만들 것을 권고했으나 관련 규정이 구비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여전히 불법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시내에 설치된 노점은 7,307개, 2013년 이후 4년간 1,519개가 줄었다. 이 가운데 재산 3억원 미만의 생계형 노점상에게 도로점용 허가를 내 준 노원구와 노점 실명제를 적용한 중구 남대문시장, 특화거리로 지정된 동작구 노량진 컵밥거리 등 ‘합법’ 노점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지난해 8월 서울시의회가 전통시장 내 노점상 양성화 취지의 ‘전통시장 거리가게 관리 등에 대한 조례안’을 입법예고하고 시도 노점상 가이드라인(허가 기준)도 만들고 있지만 노점상과 일반 상인, 주민 등 각각의 이해관계를 모두 충족하기는 쉽지 않다.
창동 노점상 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이영숙 도봉구의원은 “도봉구만 해도 창동역과 도봉산 입구 지역의 사정이 서로 달라 차근차근 접근해야 한다”며 “생활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시민들과 가게가 문을 닫으면 생업에 어려움을 겪는 노점상들의 입장을 조율하는 게 까다롭다”고 토로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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