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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 또 좌절, 더 요원해진 치매 정복

입력
2018.01.22 04:40
2면

수조원 투입 불구 성공 확률 희박

화이자 등 개발 포기 선언 잇달아

치매 원인 가설마저도 갑론을박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세계 최대 다국적 제약회사 화이자는 이달 초 알츠하이머병(노인성 치매)과 신경퇴행성 질환인 파킨슨병 치료제 개발 프로젝트를 전격 중단했다. 앞으로 치매치료제 개발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수조원대의 막대한 개발 비용이 투입됨에도 성공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화이자는 2012년에도 존슨앤존슨과 공동개발 중이던 치매 치료제(바피뉴주맙) 연구를 3상 임상에서 접었는데 이 때 손실만 4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이자만이 아니다. 2016년 11월에는 또다른 제약회사 일라이 릴리가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솔라네주맙) 개발을 3상 임상 단계에서 포기했다. 굴지의 제약회사들이 하나 둘 ‘두 손’을 들면서 인류의 치매 정복의 꿈은 점점 더 요원해지는 모습. 정말 치매 치료제 개발은 불가능한 것인지 공방도 커지고 있다.

치매는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질병이다. 21일 보건복지부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설문응답자(15~69세 남녀 1,000명) 절반 이상인 54.8%가 가장 고통스러운 질병으로 치매를 꼽았을 정도다. 의료비 지출 부담도 치매(34.3)가 암(15.1%)보다 2배 이상 더 컸다. 문재인 정부가 더 이상 치매를 개인이 아닌 국가가 책임지겠다며 치매국가책임제를 선언한 배경이기도 한데, 치매 정복이 요원해질수록 국가가 부담해야 할 몫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치매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제약회사들의 도전은 수십년간 지속됐지만 현재까지 성과는 보잘것없다. 현재 사용 중인 치매치료제가 전혀 없지는 않다. 아리셉트(성분명 도네페질) 등은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양을 일시적으로 늘려 인지기능 개선을 돕는데 사용된다. 신경전달물질의 공급을 늘려 치매증상의 급격한 악화를 완화시키는 것이지만, 이미 진행된 치매에서 필연적으로 따르는 뇌세포 파괴는 막지 못한다. 사실상 '치료제'가 아니란 얘기다.

국내 제약사들도 글로벌 제약사들의 포기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일동제약, 대화제약 등이 천연물신약과 줄기세포치료제 등을 이용한 치매 치료제 개발을 진행 중인데, 점점 더 확률이 희박하다는 것이 확인되는 것을 보면서 엄청난 투자를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지금까지 매달려 온 치매 치료제 개발은 주로 ‘아밀로이드베타(Aβ)’ 가설을 따랐다. 뇌 속 노폐물 단백질인 아밀로이드베타는 10년 이상 서서히 뇌 안의 신경세포막에 생성된 후 응집 과정을 거쳐 뇌세포를 파괴하는데, 이렇게 뇌 속에 축적된 아밀로이드베타를 제거하거나 억제해야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잇단 실패에 이 가설이 점점 힘을 잃어가는 모양새다. 이동영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화이자, 일라이릴리 등의 치매치료제 개발이 연거푸 실패하자 학계는 아밀로이드베타 가설이 유효하지 않다는 해석들을 내놓고 있다“며 “아밀로이드베타 외에 뇌에 축적되는 타우 단백질을 뇌에서 제거하면 치매를 치료할 수 있다는 또다른 가설도 나오고 있지만 이 또한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아직 이 가설의 실패를 단언하긴 어렵다. 김영수 연세대 약학대학 교수는 “아밀로이드베타 제거를 위한 신약후보 물질들이 바이러스 등의 침투로부터 뇌를 보호하는 뇌혈관장벽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 주요 패인”이라며 “뇌혈관장벽 투과율 문제를 해결한다면 임상시험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뇌혈관장벽 투과 문제를 풀어줄 ‘키’로 미국 바이오젠사의 항체치료제 아두카누맙이 꼽힌다. 김 교수는 “현재 의학계에서는 아두카누맙이 아밀로이드베타가 치매의 원인이냐는 질문에 답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망은 전반적으로 어둡지만 그래도 온통 비관 일색은 아니다. 최호진 한양대구리병원 신경대 교수는 “치매치료제 개발은 에이즈(AIDS)처럼 감염 관련 치료제를 만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했고, 임현국 여의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치매치료제 개발이 쉽지 않은 만큼 기존 치료제를 조기에 투입해 증상 완화를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영수 교수는 “치매 치료제 개발은 난이도가 높고 성공확률이 매우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시장성과 잠재력이 충분해 제약사들이 계속 도전할 것이어서 정복 불가능하다고 보진 않는다”고 전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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