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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나무다리서 다시 만난 MBㆍ친노의 ‘역린 정치’

입력
2018.01.18 17:52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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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성명 ‘盧 모욕ㆍ사법질서 부정’ 판단

文대통령 “왜 분노한다 말 못하나” 격노

박수현 “대변인 하면서 처음 듣는 말”

MB측 “우리도 있다” 盧파일 공개 압박

홍준표 “盧 비서실장 같은 말은 부적절”

‘분노 발언’ 정치권 갈등 더 부추길 수도

이명박(왼쪽) 전 대통령, 노무현(가운데)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명박(왼쪽) 전 대통령, 노무현(가운데)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분노’라는 격한 표현까지 쓰면서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전날 성명을 비판했다. 정당한 검찰 수사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연계해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한 MB의 성명이 인내할 수준을 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문 대통령이 ‘정부에 대한 모욕’, ‘사법질서에 대한 부정’, ‘정치금도를 벗어나는 일’ 등의 엄중한 문구까지 더한 것은 현 정부의 근간을 흔들려는 MB 등 전 정권 세력에 대한 경고라는 해석도 나온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대통령 발언이 공개된 후 “문 대통령 개인적으로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거론한 것이 불쾌하겠지만, (이 전 대통령이) 사법질서를 부정했다는 지적도 할 수 있다”며 “대통령의 분노는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것과 연관돼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이후 ‘나라다운 나라’를 기치로 내세워 집권한 문 대통령으로선 이 전 대통령의 ‘정치 보복’ 프레임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 수수 등 잘못이 드러나 수사하는 것인데, 마치 구원(舊怨) 때문에 청와대가 검찰 수사를 지시하고 있다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고 했다.

문 대통령과 MB의 악연은 노 전 대통령 서거로 비롯됐다. 문 대통령은 2011년 저서 ‘운명’에서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해 “사법처리가 여의치 않으니 언론을 통한 망신주기로 굴복을 받아내려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지난해 1월 출간한 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는 MB 정부를 향해 양상군자(梁上君子ㆍ대들보 위의 군자로 도둑을 의미)라며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위사업 비리를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다만 문 대통령은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 영결식 당시 “이명박 대통령, 사죄하십시오”라고 외치다 경찰에 제지를 당한 백원우 당시 통합민주당 의원(현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대신해 MB에게 머리 숙여 사과한 바 있다. 그런데도 MB가 이제 와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거론하며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문 대통령 입장에선 참기 힘든 모욕이자 역린을 건드린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참모들과의 회의에서 “왜 우리가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못하느냐”는 취지로 대통령 명의의 입장 발표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수현 대변인은 페이스북에 “문 대통령이 ‘분노’를 말했습니다. 제가 대변인을 하면서 처음 듣는 말이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가장 격노한 순간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의 입장 발표가 정치권의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전ㆍ현 정권 간 정면충돌뿐만 아니라 현안이 산적한 국회에서 여야 경색 국면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당장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날 경기도당 신년인사회에서 “문 대통령이 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돼서 그런 말을 했다면 이해하겠다”면서 “정치보복이다, 청와대가 주도해서 (검찰 수사를) 한다는 말에 대통령이 극도의 분노를 느낀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MB 측근 인사들은 문 대통령 발언이 공개되기 전 방송 인터뷰 등에 나와 거들었다.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도 5년을 집권하지 않았나. 집권하면 모든 사정기관의 정보를 들여다 볼 수 있다”며 “저희라고 아는 것이 없겠나”라고 ‘노무현 정부 파일’공개를 시사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 발언으로 국회에서는 개헌과 권력기관 개편 논의에 빨간 불이 켜질 가능성이 높아졌고, 6월 지방선거까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회경 기자 hermes@hankookilbo.com

김성환 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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