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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아이, 장애인에 막말ㆍ행패... 약자 향한 '뒤틀린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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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하철 휠체어 승객에 대놓고
"통행 방해 말라" "냄새 난다"
성소수자엔 "음란하다" 딱지
아이들이 식당서 소란 안 피워도
데리고 온 부모에 푸대접 다반사
#2
온라인서 소수자 혐오 더 심각
사회 구조로 인한 분노를
엉뚱하게 약한 사람에 쏟아내
6세, 4세 아들을 둔 주부 오모(33)씨는 웬만하면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하지 않는다. 오씨는 “멀쩡히 다니던 가게들이 하나 둘 노키즈존으로 바뀌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단골 미용실마저 노키즈존 선언을 하더라”고 씁쓸해했다. “평소 공공장소에서 각별히 주의하는데도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 없다고 생각하니 아이를 키우는 것 자체가 죄인가 싶어 서러워요.”
시각장애1급 김모씨는 최근 서울지하철 2호선 역사 내 승강장에서 길을 헤맸다. 지나가던 사람이 김씨와 부딪혀놓고는 사과는커녕 오히려 “눈도 안 보이는데 돌아다닌다”며 김씨 지팡이를 내던져버렸다. 그는 자신에게 무례를 행한 그 사람이 누군지 지금까지도 알지 못한다. 일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우리 사회의 뒤틀린 분노는 유독 약자를 쫓는다. ‘내가 불편하다’ ‘내 것 빼앗긴다’는 이기심을 먹고 자란 분노는 약한 곳을 헤집고 들어가 혐오라는 악성 종양으로 변질된다. 약한 자일수록 강하게 밀어붙이고, 처음부터 배제해야 나의 권리와 평안을 지킬 수 있다는 못된 습성이 장애인 성수소자 여성 아이 등에게로 확대 재생산되는 실정이다.
일례로 노(NO)키즈존은 있지만, 노(NO)만취객존은 없다. 카페에서 소란스럽게 뛰노는 아이, 식당 의자에서 아기 기저귀를 가는 엄마. 이 못지않게 커피전문점에서 “주문한 커피와 다르다”고 행패 부리거나 테이블에 토사물을 쏟아내는 취객도 있다. 하지만 대놓고 엄마와 아이를 거부하는 노키즈존은 확산되는데, 취객 출입을 금지하는 노만취객존은 볼 수 없다. ‘아이 소란 금지’ ‘기저귀 갈기 금지’ 정도면 충분할 텐데, 아예 출입을 원천 봉쇄한다. 모든 엄마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셈이다. 왜? 약하니까.
자녀와 함께 있는 엄마를 대하는 태도는 노키즈존이라고 이름을 달지 않았더라도 대개 음식점에서 비슷한 모양새로 변하고 있다. 주부 김모(32)씨는 얼마 전 두 아이를 데리고 식당에 갔다가 불쾌한 경험을 했다. 식탁에 앉는 순간부터 인상을 쓰던 가게 주인은 아이들이 수저통이나 화장지통을 만지는 족족 자리에 와서 물건을 치워버렸다. “아이들이 소란을 피운 것도 아닌데 대놓고 눈치를 줘서 밥을 먹던 도중 나와 버렸다”고 했다.
장애인 혐오는 ‘아직도 이러나’ 싶을 정도다. 뇌병변장애1급인 30대 허모씨는 경기 일산의 한 지하철 환승역 승강장에서 자신의 휠체어와 스친 여성이 가던 길을 다시 돌아와 가방으로 휠체어를 때리면서 한 말을 똑똑히 기억한다. “통행을 방해하잖아.”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휠체어를 탄 분이 지하철 역사 엘리베이터나 열차 안에 들어서면 ‘아 냄새 난다, 도대체 어디서 나는 냄새야’라며 망신을 주는 사례는 상담소에 비일비재하게 접수될 정도로 (장애인에게는) 일상”이라고 했다. “매번 대응하고 따지기 힘든 장애인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쉽게, 더 함부로 이야기하고 대한다”는 것이다.
성소수자에게는 “존재만으로 음란하다”는 딱지가 붙여진다. 2000년 시작된 성소수자 문화행사인 퀴어축제는 매년 반대단체 방해에 시달린다. 2015년 7월 대구에서 열린 퀴어축제 당시 보수단체 회원들은 퍼레이드를 막기 위해 도로에 눕거나 축제 현수막에 오물을 투척하기도 했다. 서울대 내 성소수자 동아리가 내건 신입생 환영 현수막이 훼손되기도 했다.
약자에 대한 비뚤어진 분노와 혐오는 온라인상에서 더 심각하다. 익명에 숨어 공격과 비판을 더 강력하게 표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빅데이터 분석업체 아르스프락시아에 의뢰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6년 ‘일간베스트’ ‘오늘의 유머’ ‘디시인사이드’ 등 주요 커뮤니티에 나타난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은 8만1,890건으로 여성 혐오가 5만1,918건으로 가장 많았고 ▦성소수자 2만783건 ▦장애인 혐오 6771건 순이었다.
전문가들은 기나긴 경제 불황, 사상 최악의 취업난 등 좌절과 불안이 일상화한 사회 구조로 인한 분노가 엉뚱하게 약자에 대한 혐오로 쏟아내고 있다고 분석한다. 고통의 원인이 사회 구조에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눈 앞에 보이는 약자 탓으로 돌리는 게 손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혐오는 분노를 자신들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배설하려는 결과로 볼 수 있다”라며 “경쟁이 치열해 자신의 지위나 수입이 안정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혐오를 통해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전공 교수는 “민주주의가 진전되고 권위주의 체계가 허물어지는 과정에서 과거 나름 특권을 누리던 사람들의 박탈감이 혐오로 표현되는 것”이라며 “예컨대 취업이나 승진 등에서 박탈감을 느낀 남성들이 그 원인이 사회 구조보다는 눈 앞 여성에게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지난해 9월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관련 주민토론회에서 장애인 학생 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했지만 반대 주민들이 외면한 사례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이 특수학교 설립과 관련된 권리를 획득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들의 자리를 침범하고 위협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약자에 대한 분노와 혐오를 문화적 코드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불황이나 실업 등 개인이 겪는 사회적 위기를 국가가 제도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때 그 사회는 역사적으로 가져온 문화적 코드에 따라 약자에게 그 원인을 돌리게 된다”며 “문화적으로 가부장적이고 유교적인 문화적 코드를 가진 한국 사회에서는 그런 경향이 여성이나 동성애자, 장애인에 대한 혐오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쟁이 치열한 데 반해 배려와 환대가 없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전반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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