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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B] 백지원 "평범해서 더 인상적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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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무대서 내공 쌓은 실력파
‘아내의 자격’으로 드라마 데뷔
‘밀회’ ‘황금빛…’ 인상적인 연기
“끼 없어 안돼” “쌍꺼풀·턱 해라”
숱한 지적도 근성으로 이겨
“다양한 인물 표현 가능한 얼굴
저만의 쓰임새 있을거라 믿었죠”
“1999년 한국일보와 인터뷰한 추억이 있는데, 새해 시작을 이렇게 함께 하게 되니 영광이네요.”
배우 백지원(45)은 화려한 빛을 발하지 않지만 연기력이 단단한 배우다.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다져 대학로의 조명을 받았고, 방송과 영화 쪽으로 옮겨 제작진의 신뢰를 얻었다. 최근 KBS2 드라마 ‘매드독’에서 냉철한 수간호사를, KBS2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납치범 조순옥을 연기해 시청자 눈에도 깊게 새겨졌다.
지난 8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았던 1990년대에는 단원들이 직접 신문사를 돌아다니며 연극 홍보 활동을 벌였다”며 1999년 한국일보를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대학 졸업 무렵인 1996년 극단 연우무대에서 연극 ‘떠벌이 우리 아버지 암에 걸리셨네’로 배우 생활을 시작한지 3년이 채 안됐을 때다. “성인 무대 데뷔 후 탄력 받아 열심히 활동하던 때에요. 내내 연기를 반대하셨던 부모님도 ‘그래, 연기 인생 가열차게 한 번 살아봐라’라며 두 손 두 발 다 들었죠. 그 땐 주머니 사정도, 마음도 힘들었는데 데뷔 22년 되는 해에 한국일보를 다시 만나니 감회가 새롭네요.”
“배우 못할 것”이라는 지적, 근성으로 승화
서울 이화여고를 다니던 시절 연극반 친구를 통해 연극에 흥미를 가지게 됐지만, 숫기 없는 성격 탓에 적극적으로 배우라는 미래를 구상하지는 못했다. “꽃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경희대학교 원예학과에 진학했다가 대학교 연극 동아리에 들었다. 친구들과 창작극을 만들며 어떤 작품을 하고 싶은지,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자기만의 연기관이 생겼고, 학교 문을 나선 후 연우무대에 입단했다.
하지만 “배우의 길을 갈 것”이라고 그가 말하면 늘 “너는 못한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연예인이 갖춰야 할 끼나 에너지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다음엔 “쌍꺼풀이 없다”, “턱을 줄여야 한다”는 등 외모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다행히 백지원에게는 근성이 있었다. “오기는 아니었어요. 제가 생각해도 흔히들 요구하는 여배우의 조건에 저는 해당하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다양한 인물 중에 분명 저 같은 인물도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했죠. 저만의 쓰임새가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연극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2005), ‘내 심장을 쏴라’(2010),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사회의 기둥들’(2014) 등 연극 무대에서 실력을 키웠다. 마흔이 다 된 2012년 드라마에 진출했다. JTBC 드라마 ‘아내의 자격’을 통해서다. 2016년 소속사가 처음으로 생긴 후 대중적인 작품들에도 꽤 얼굴을 비쳤다. 지난해 SBS 드라마 ‘피고인’에서 서은혜(권유리) 변호사의 이모, KBS2 ‘쌈 마이웨이’에서는 여자고등학교 선생님이 됐다. 백지원은 친근한 이미지를 지녔을 뿐 아니라 고고하고 우아한 역할과도 잘 어울린다. ‘매드독’에서는 연극으로 익힌 명료한 발성으로 수간호사 오서라의 이성적이면서 냉정한 면모를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여배우답지 않은 평범한 외모”가 다양한 역할에 잘 맞아떨어져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했다.
“드라마 ‘밀회’, 배우 그만 두려던 나를 구제”
그는 10년을 연기하면 어디 가서 당당히 “내 직업은 배우”라고 말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10년이 지나도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기다리는 시간이 “메아리로만 돌아오는 사랑 고백”같았다. 자괴감에 내내 땅만 내려보며 걷던 2013년 연기를 접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동대문에서 옷 판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자격’ 출연으로 인연을 맺은 안판석 PD에게 전화가 왔다. “큰 역할은 아닌데, 함께 할래요?” 그는 고민 없이 그 자리에서 출연을 결정했다.
그렇게 투입된 JTBC 드라마 ‘밀회’는 백지원의 대표작이 됐다. 그가 연기한 왕비서는 20년 지기 친구 혜원(김희애)의 몰락을 기다리며 권력에 대한 야망을 드러낸다. 백지원은 “연극을 할 때는 얄미운 역할을 해본 적이 없는데, 드라마 진출 이후 이런 역할을 자주 맡았다”고 했다. 그는 “내 안에 잠재돼있던 색깔이 드라마 연기를 통해 표출돼 재미를 느꼈다”고 웃었다.
백지원에게 안 PD는 특별하다. ‘아내의 자격’을 시작으로, ‘밀회’,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등 연이어 그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믿고 맡겨주셨던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전 일할 때 운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운만 좋아선 안 되죠. 평소에 실력을 다지고 늘 준비돼 있어야 운도 그냥 흘려 보내지 않는 것 같아요.”
20년 동안 연기를 했지만 백지원은 아직도 만족하진 못한다. 요즘은 연극으로 익숙해진, 똑 부러진 발음이 되려 단점인 것 같아 고민이다. “발음이 명확해 대사 전달력이 뛰어나다”는 칭찬을 듣지만, 힘을 빼야 하는 역할을 맡을 때는 발음 때문에 인물의 특성이 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는 “작은 역할은 있지만, 중요하지 않은 역할은 없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 역할의 중요도를 따지지 않고 지금보다 더 폭넓은 역할을 소화하고 싶다. “전 저를 잘 알아요. 섭외 1순위 배우는 아니지만, 분명 저만의 쓰임새가 있죠. 요즘은 미니시리즈와 주말극 대본을 검토 중입니다. 가늘고 길게, 오랫동안 활동하는 모습 보여드릴게요.”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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