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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갈등 리포트]시설 입소 거부 노숙인 전국 2000명… “군대 같은 생활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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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ㆍ지자체 시설 여유 있지만
노숙인 18%는 거리의 삶 선택
“CCTV 감시에 음주 측정까지”
단체생활ㆍ규칙이 기피 이유 1위
격리조치 관행은 그대로 둔 채
못 견디고 나오는 노숙인 탓만
먹여주고 재워준다는데도 거부
“배부른 소리” 따가운 시선도
“시설? 좋지. 따뜻하고 요즘엔 밥도 잘 나와. 일주일에 두 번은 고기도 나오고. 그런데 술을 못 먹게 하려고 외출을 제한하고, 밖에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음주 측정을 하고 그러는 것이 영 답답해서….”
기온이 영하 7도까지 떨어진 지난 3일. 서울역 광장에서 만난 노숙인(홈리스) 최모(62)씨는 노숙인 생활시설에 입소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그는 과거 서울 은평구 ‘은평의마을’, 성동구 ‘비전트레이닝센터’ 등 재활시설에 입소한 경험이 있지만 얼마 못 버텼다. “담배 한 개비만 달라”며 넉살 좋게 웃어 보인 최씨였지만 고등학생 체육복 같은 녹색 면 점퍼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채로 그는 불어 오는 칼바람에 연신 몸을 떨었다.
전국의 노숙인은 1만1,000여명.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생활시설 정원은 1만256명이다. 그런데도 2,000여명이 ‘거리의 삶’을 택한다. 이들은 왜 시설 입소를 거부하는 걸까.
노숙인들은 어디에 있나
노숙자는 바닥을 친 인생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보건복지부 등의 자료에 따르면 2016년 10월 기준으로 전국 노숙인은 1만1,340명이다. 3분의 1에 가까운 31.7%가 서울에 있으며, 경기(13.4%), 대구(9.6%), 경남(8.4%), 충북(6.5%) 등지에 주로 살고 있다.
이혼, 가족해체, 술ㆍ게임 중독, 질병 등의 개인적 문제로 노숙인이 됐다는 비율이 절반(54.2%)이고, 실직ㆍ사업실패ㆍ파산ㆍ주거 상실 등 빈곤으로 거리로 내몰린 비율이 33.4%였다. 다행히 노숙인 중 82.2%는 시설에 들어간다. 하지만 17.8%인 2,015명(일시보호시설 입소 노숙인 493명 포함)는 여전히 거리를 전전하고 있다.
거리 노숙인인 최씨가 밤을 나는 공간은 서울역 광장에서 남대문 방면으로 난 지하도에 마련된 노숙인 응급대피소이다. 40여명이 한 번에 잘 수 있는 크기의 온돌 방이 양쪽으로 두 개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하루 두 번 청소시간 마다 자리를 비워줘야 하고, 개인별로 지정된 자리가 없는데다 짐도 보관할 수 없어 장기간 머물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도난 방지와 안전을 위해 실내에서 폐쇄회로(CC)TV에 항상 노출돼야 하는 것도 대피소를 이용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일종의 비용이었다.
거리 노숙인들은 혹독한 기후와 질병, 범죄 등에 무방비로 노출되며 일상은 고난의 연속이다. 노숙인 인권단체 홈리스행동이 지난해 말 노숙인 9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61.6%는 ‘공공장소에 머무는 중 퇴거를 강요 받았다’고 답했다. 노숙인 50%는 민간 경비원이나 경찰관 등으로부터 ‘욕설, 모욕, 고성, 협박 등 언어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했고, ‘밀치기, 잡아끌기, 멱살잡이, 때리는 시늉 등 물리적 위협행위를 당했다’고 답한 노숙인도 23.3%였다. 11.1%는 실제 폭력 행위를 당했다고 답했다. 노숙인 지원 단체인 ‘프레이포유’의 손은식 목사는 “최근 몇 년 새 을지로입구역이나 종각역 지하에 노숙인이 없어진 것은 이런 강제 퇴거가 훨씬 강화됐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시설 거부하는 이유는
노숙인 생활시설의 총 정원은 1만256명(2016년 말 기준). 지난해 생활시설에 사는 노숙인 수가 9,325명인 점에 비춰 900~1,000여 자리가 남는다. 각 지자체가 고시원이나 쪽방 월세를 지원하는 사업도 하고 있어 공급량이 부족한 것은 아니라는 게 복지부 설명이다.
시설들은 ▦일자리 연계 등을 지원하는 자활시설(62곳) ▦재활프로그램과 사회 적응훈련을 시켜주는 재활시설(35곳) ▦고령 노숙인 등이 입소하는 요양시설(22곳) 등으로 나뉘며, 별다른 조건 없이 입소할 수 있다.
그럼에도 시설을 꺼리는 이유로 노숙인 박모(60)씨는 “시설에 가면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는데, 나는 술을 자제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재활시설 입소 경험이 있다. 또 다른 노숙인 김모(66)씨는 당뇨와 백내장을 앓고 있으면서도 “시설에 가면 (다른 노숙인들이) 술 먹고 싸워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실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실태조사에서 거리 노숙인들은 생활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 ‘단체 생활과 규칙 때문에’(31.2%), ‘실내 공간이 답답해서’(21.1%)를 가장 많이 꼽았다.
시설 입소만이 정답일까
노숙인들이 시설을 거부하는 것을 두고 ‘배부른 소리’라는 따가운 시선이 많은 게 사실이다. “도와주겠다는 데도 거부하는 이들까지 나라에서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날 선 비판도 나온다. 노숙인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한 해 예산만 해도 중앙정부 300억여원, 서울시 500억여원 등에 달하는데 그들도 최소한의 협조는 해줘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시설은 그대로 둔 채, 노숙인만 탓하는 것은 과거의 부랑인 격리 조치를 하던 시절과 별 다를 바가 없다는 반론도 있다. 대다수 시설들은 설비나 음식 등의 측면에서 과거보다 상당히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노숙인들이 정해진 일과를 따라야 하고 외출이 통제가 되는 등 자유가 일정 부분 제한되는 것은 여전하다. 생활시설에 사는 노숙인들도 시설의 가장 불편한 점으로 15.1%가 규칙을 꼽았고, 12.6%는 사생활 보호가 안 되는 점, 9.6%는 개인 공간이 없는 점 등을 꼽았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엄격한 규칙 속에서 살아야 하는 시설 생활은 군대 생활을 평생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서정화 열린여성센터 소장도 “사생활 보호가 잘 안 되는 정원 1,000명 이상의 초대형 시설에 노숙인을 수십년씩 장기 입소시키는 관행이 옳은지 되돌아 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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