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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폭탄테러 줄었지만 여성 테러리스트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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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이라크 모술에서 찍힌 한 장의 사진은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사진 속엔 폭격으로 폐허가 된 시내에서 한 여성이 아이를 안은 채 무장한 군인들 사이를 지나가는 모습이 담겼다. 전쟁에 고통 받는 시민의 모습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 여성은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자살폭탄테러리스트로 가방 속에 폭탄을 숨긴 채 잠입 중이었다. 사진이 찍힌 직후 그는 곧바로 폭탄을 터뜨렸다. 테러로 이라크군 병사 두 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의 민간인이 다쳤다. 물론 여성 자신과 품 속 아기도 사망했다.
지난해 전세계적으로 자살폭탄테러는 줄어들었지만 여기에 가담한 여성 테러리스트 수는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 안보연구소(INSS)가 지난 7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자살폭탄테러는 348건으로 지난 201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반면 자살폭탄테러에 가담한 여성의 수는 137명으로 2016년 77명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다.
IS가 성전 참가할 ‘무자히다’ 부른 이유
자살폭탄테러는 원래 여성에겐 가담이 허락되지 않았다. IS같은 일부 무슬림 극단주의 테러단체는 자살폭탄테러를 지하드 즉 이슬람 성전(聖戰)의 하나로 보고 있는데, 극단주의 세력들은 성전은 오직 남성만이 수행할 수 있으며 성공한 남성은 천국에서 수천명의 처녀를 누리는 행복을 얻는다고 홍보한다. 여성에겐 오직 자녀를 낳고 그들을 지하드 전사로 기르는 의무만 부여됐다.
이랬던 IS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한 건 IS에 대한 미국의 공습이 본격화된 2000년대 중반부터다. 조직 내 인명손실이 커지자 여성도 전투에 나서야 할 필요가 생겼다. 여성은 남성보다 덜 위협적으로 여겨지고 쉽게 테러리스트로 의심받지 않는다는 점, 군인들이 여성의 몸수색을 철저히 하기 어렵다는 점도 IS가 여성을 테러에 가담시킨 이유다.
전문가들은 2005년 IS의 지도자 아부 알자르카위가 ‘무자히다’의 각성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공개한 것이 여성 테러리스트를 증가시킨 결정적인 계기로 본다. 무자히다는 아랍어로 ‘지하드를 수행하는 여성’이라는 뜻이다. 알자르카위는 “여자는 단지 아이를 낳는 것을 넘어 스스로 싸우고 목숨을 바쳐 영적인 자유를 얻어야 한다”며 여성이 보다 적극적으로 테러에 가담할 것을 종용했다. 이후 여성 자살폭탄테러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IS에서 전통적인 성별 고정관념이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여성들 역시 성평등을 쟁취하기 위해 테러에 더욱 가담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라크에서 유엔의 인도주의적 지원업무를 수행했던 미국의 저널리스트 마이클 수산은 “교육받은 여성과 소녀들은 단순 희생자에서 벗어나 IS사상을 신봉하는 일원으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해석은 분쟁지역 여성의 고난을 축소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여성 테러리스트들을 연구해온 비나 파텔 미국 노바사우스이스턴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여성들은 평등이 아닌 탈출을 위해 지하드를 선택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여성 테러리스트들은 대부분 성폭행 피해자이거나 이혼당한 사람, 즉 무슬림 사회 내에서 부정하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이다. 무장단체들은 이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며 ‘우리를 위해 싸운다면 죄를 용서해주겠다’고 말하고, 여성들은 박해에서 벗어나고 명예회복을 하기 위해 테러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는 나이지리아의 이슬람 무장단체 ‘보코하람’의 ‘치복소녀’ 집단 납치사건 이후 여성 자살폭탄테러범 공격이 급증했다는 미국 대테러센터(CTC)의 연구와 무관하지 않다. 보코하람은 2014년 나이지리아 보르노주 치복의 공립중학교 여학생 기숙사에서 여학생 276명을 집단 납치했다. 당시 57명은 즉시 탈출했고 2년 후엔 22명이 구조됐으나 여전히 보코하람에 묶여 있는 197명의 여학생들은 강간과 폭행을 당하고 테러에 동원되고 있다. CTC에 따르면 보코하람은 2011~1016년 수행한 자살폭탄테러 434건 중 244건에 여성, 특히 10대 이하 소녀를 보냈다.
더 커지는 위험
분쟁지역 여성의 인권침해와 테러가담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이라크와 시리아 등지에서 IS등 무장단체가 힘을 잃어가면서 여성을 테러에 동원하려는 노골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IS는 선전매체인 ‘알나바’를 통해 이슬람 초기 역사에 등장한 여성전사 누사이바 비트 카아브를 거론하며 여성들의 전투참여를 독려했다.
지난해 7월 모술 탈환작전에 투입됐던 이라크군의 알리 압둘라 후세인 병장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여성을 자살폭탄테러에 동원하는 것은 IS의 최후 수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아직 이를 막을 묘안을 찾지 못했다. 파텔 교수는 “현재로선 무장단체가 여성들에게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지 끊임없이 밝혀내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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