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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화해] “성에 관심 많은 딸 걱정” 엄마 피해의식 치유가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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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인 아빠 밑에서 상처받고
엄마가 새 아빠 만나자 반감 쌓여
남녀관계를 질투ㆍ오해로 접근
평생 고통받으며 연애도 못 해
장애 있는 딸 문제 생길까 두려워
딸 아이의 성교육 문제로 고민입니다. 아이는 올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어요. 언어장애가 있어 말을 잘 못하지만 병원 진단 결과 고기능 자폐증이 나와 학교에 들어가기 전 말하기 훈련에 조금 더 집중하려고 합니다.
제가 두려워하는 건 성적인 문제입니다.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성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어요. 어디서 그런 말을 들은 건지 “고추, 코끼리” 같은 말을 하면서 깔깔거리며 너무 좋아합니다. 자신의 성기를 만지기도 해요. 저는 물론이고 집에 오는 어른들의 은밀한 부위에 손을 뻗거나 얼굴을 들이대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럴 때마다 “아이, 창피해”라며 말리는 것 외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소아 자위에 대한 이야기는 책에서도 본 터라 크게 당혹스럽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속이 상해요. 이렇게 성적인 것에 관심이 많아서 나중에 무슨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지, 그리고 왜 하필 저처럼 성적으로 결벽증이 있는 엄마에게서 태어났는지 하고요.
저는 남녀관계 문제로 평생 괴로워했습니다. 일단 남녀가 함께 있는 곳에 잘 가지 못해요. 제가 거기에 끼면 틀림 없이 이상한 눈으로 볼 것 같아요. 여자는 제가 그 남자를 좋아해서 낀 거라고, 남자는 제가 자기를 좋아해서 낀 거라고 오해할까 봐 너무 두렵습니다. 행여 여자가 평소보다 여성스런 목소리를 내면 저보다 주목 받으려고 그런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자가 저에게 말을 더 많이 걸면 저를 이용해서 그 여자를 질투 나게 하려고 그런다는 의심이 듭니다. 그래서 아예 가까이 다가가질 못해요.
이런 일들이 중학생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늘 반복됐어요. 친구에게 이야기하면 제 오해라고 해요. 가는 곳마다 똑같은 일이 일어나는 건 있을 수 없다며 제가 망상을 하는 측면이 있다고 합니다. 그럴지도 몰라요. 그 사람들은 그냥 직장 동료 사이거나 교사-학부모 관계였거든요. 그런데도 늘 질투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반대로 내가 질투한다고 오해 받지 않을까 공포에 떨어요.
이런 문제 때문에 연애를 아예 못했고 지금 남편이 제 첫 연애 상대입니다. 연애도 2개월 만에 끝내고 바로 결혼했으니 사실상 인생에 연애가 없었던 셈이에요. 나는 왜 이럴까, 고민할 때마다 떠오르는 건 늘 하나예요. 부모님이 이혼을 하면서 새 아빠가 들어와 살게 됐는데 당시 사춘기였던 저는 엄청난 반감을 느꼈습니다. 엄마는 아빠가 바뀌는 것에 대해 별다른 설명이 없었고, 그냥 저희 눈치를 보면서 잘 지내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전 모르는 남자와 엄마가 부부관계가 됐다는 사실에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어요.
예전 아빠는 폭력 가장이었어요. 칼을 들 정도로 심한 수준의 폭력이었고, 결국 그게 이혼의 원인이 됐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싫어하는 것과 엄마가 새로운 남자를 만나는 건 다른 문제였어요. 남녀가 서로 좋아하고 만나는 것 자체를 부적절하게 보는 시각이 이때 생겨난 게 아닌가 해요.
지금도 성적으로 개방적이거나 연애에 집착하는 사람을 싫어해요. 하지만 내 아이가 태어나니 다르더군요. 아이가 유치원에서 좋아하는 남자애에게 다가가 웃으면서 몸을 부비며 호감을 표현한다고 합니다. 그 얘길 들었을 땐 참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내 두렵더군요. 지금은 어린애지만 나중에 중학생이 돼서 호감을 갖게 된 반 친구나 선배가 나쁜 애라면, 발달도 느린 애를 성적으로 이용하면 어쩌나 걱정이 됩니다. 뉴스에서 청소년 임신, 낙태 얘기를 보면 너무 끔찍해요.
사실 가장 무서운 건 저 자신이에요. 전 어릴 때부터 얼굴이나 목소리가 여성스럽지 않아 이성으로부터 호감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제 열등감이 지금의 결벽증세를 만든 건 아닌지, 그래서 내 아이가 성적인 문제를 일으켰을 때 그걸 용인해주지 못하고 돌이키지 못할 상처를 주지는 않을지. 아이가 성에 일찍 눈을 떠 엄마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게 될까 봐 무섭기도 합니다. 딸이 엄마 같은 인생을 살지 않고 좋은 남자를 만났으면 해요.
(이현영, 가명ㆍ45세ㆍ주부)
이성에게서 주목받고 싶은 욕망
열등감과 함께 피해의식으로 변해
왜곡된 성 정체성 형성되며 고통
전문가 도움으로 자신 들여다보고
사람들 상호작용 제대로 이해해야
현영씨, 누구에게나 아주 조금씩은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사연을 보면서 내내 이 생각이 들었어요. 현영씨가 살아온 삶은 건조하고 황폐한 사막 같은 느낌이에요. 사연을 읽으면서 현영씨의 갈증과 두려움이 느껴져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경험할 수 있는 긍정적이고 풍성한 관계들을 현영씨는 거의 경험하지 못한 것 같아요.
사람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자신의 성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겪습니다. 상대방의 성에 대해서도 수용하게 돼요. 현영씨에겐 이 발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같아요. 현영씨가 인간관계를, 남녀를 떠나 그냥 사람 대 사람의 관계로 보지 못한다는 거예요. 남녀관계가 늘 서로 좋아하거나 성적인 관계로만 이뤄져 있진 않거든요. 이 세상엔 남녀가 적절히 섞여서 살고 우리는 끊임없이 화합하고 갈등해요. 물건을 사고 팔고, 호의를 베풀고, 전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신장을 이식하는 등 정말 다양한 상호작용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현영씨는 인간관계에 있는 이런 수많은 상호작용을 오직 성적인 것으로만 이해해요. 심지어 본인의 딸도 성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나이 전까진 귀엽고 예쁘다고 생각하지만 사춘기부터는 성적인 대상이 되거나 누군가에 성적으로 접근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죠.
성적 관계에 대한 현영씨의 생각은 매우 피해의식적이에요. 내가 두 사람의 성적 관계에 끼어 들었다고 날 미워하면 어쩌나, 자기 남자를 가로챌까 봐 날 나쁘게 보면 어떡하나, 이런 생각이 피해의식적인 사고예요.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피해의식 밑면에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기를 원하고 주목 받는 사람이고 싶은 과대적 생각이 동반된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국정원이 자신을 쫓아온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나 국정원이 쫓는 사람은 보통 매우 중요한 사람이죠. 이렇게 피해의식 밑면에 과도한 자의식이 깔려 있을 수 있어요.
현영씨도 혹시 이런 면이 있는지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전 현영씨가 실은 이성으로부터 매우 주목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상대 이성에게 매력적이고 좋은 사람으로 비쳐지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지요. 그러나 현영씨는 여성이라는 성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많은 열등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사람과의 관계가 발생할 때 늘 이성간의 관계로 먼저 생각을 하고 피해의식적 사고를 하지만, 그 아래엔 누군가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은 바람이 있었을 수 있어요. 이것은 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해결되지 못한 갈등에서 시작된 무의식적 과정이지요.
현영씨는 본인이 남녀관계에 끼었을 때 여자로부터 내가 ‘저 남자를 좋아해서 끼어든 거다’란 오해를 받을까 봐 두렵다고 했죠.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끼어 들면 그 남자가 날 좋아할 수도 있잖아요’. 현영씨는 왜 이렇게 생각하지 못할까요. 왜 늘 반대로 생각할까요. 그 아래엔 어떤 마음이 있는 걸까요.
그 실마리를 찾으려면 폭력적인 친부로 올라가야 해요. 배우자를 때리는 것은 가정폭력이자 용납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그 사이에서 자녀는 때리는 부모가 야수처럼 생각되고 공격자로 느껴지지요. 그런 사람은 안정된 가정을 이룰 수 없어요. 그런데 현영씨의 엄마는 그 야수와 결혼해서 자식을 낳았어요. 성관계를 했다는 의미죠. 물론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성인 남녀는 사랑을 하고 자녀를 낳아서 키우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요. 그러나 현영씨는 친부가 야수와 공격자로 느껴졌기 때문에 성관계와 자녀출산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엄마는 이혼을 한 뒤 그리 오래지 않아 새 남편을 얻었어요. 자식들은 이 사람이 누군지, 엄마와 어떤 관계였는지 몰라요. 다만 엄마의 새 남자일 뿐이에요. 이런 엄마를 보는 현영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혹시 남자에 목 맨 여자로 보이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심한 폭력을 당하고도 남자가 좋은가, 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갑자기 낯선 남자와 한 집에서 지내는 것이 얼마나 불편했을까요. 엄마와 재혼한 낯선 남자가 한 방으로 들어갈 때 어린 현영씨는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요. 엄마가 얼마나 미웠을까요.
현영씨 엄마가 재혼을 하신 것이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몹시 안타까운 건 새 아버지가 상처 받은 엄마를 어떻게 도와줬는지 자녀들에게 잘 얘기해줬다거나 결혼 전에 아이들과 친해지는 과정이 있었더라면, 남자가 아닌 인간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그런 과정이 없었고, 현영씨는 여자와 남자가 만나는 것을 성적인 관계로만 볼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물론 현영씨의 독특한 면이 있기도 해요. 환경적으로도 특수했고, 아버지의 배우자 폭행, 부모의 이혼, 바로 이어진 엄마의 재혼을 견뎌내기엔 현영씨는 너무 어렸고 설명을 해주는 사람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여기에 사춘기 시절의 열등감, 누군가에게 인간적인 면이 아닌 성적으로 매력 있게 보였으면 하는 무의식적 마음이 복잡하게 얽혀서 왜곡되고 해결되지 않아 성에 대해 부정적이고 증오하는 감정이 들었을 겁니다.
현영씨가 스스로의 이런 내면을 들여다보고 알아차리는 일은 매우 힘들 거예요. 성적욕구는 인간이라면 지극히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반응임에도 불구하고 현영씨 자신이 성적으로 욕망되길 바라는 면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엄마와 유사한 사람처럼 느껴지고 이것은 해결되지 않은 현영씨의 깊은 갈등을 건드려서 엄청나게 고통스러울 거예요.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니 마치 수녀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거죠.
제가 현영씨의 깊은 고통을 몇 줄의 글로 설명을 하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어요. 현영씨의 고통이 의식수준에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성과 관련된 문제에 두려움과 적개심의 철벽을 치는 방어기제를 동원하겠지요. 그래서 현영씨에게 이런 설명을 하는 것이 당신을 더 아프게 할까 봐 저도 두렵고 마음이 아픕니다. 진심으로 현영씨를 돕고 싶어요. 당신은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자식까지 낳았지만 아직도 고통 받고 있어요. 어릴 때부터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협조하고 화합하는 관계로 보는 것 자체가 어려울 거예요. 이게 어머니의 재혼과 새 아버지의 등장으로 고름이 터지듯이 그쪽으로 터진 거예요. 현영씨의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에 대한 엄청난 불신과 피해의식이에요. 스스로 여성으로서 열등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냥 인간으로서도 존중 받을 가치가 있다고 여겨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을 거예요.
현영씨가 너무 안 됐어요.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수많은 감동과 풍성한 관계들을 지금까지 거의 누리지 못하고 산 셈이에요. 결혼을 하고 자식이 생기면 지금까지 누렸던 관계가 확장되면서 더 다양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돼요. 그런데 현영씨는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여전히 모든 인간 관계를 성적인 것으로만 보고 두려움과 증오에 붙들려 있어요. 현영씨가 살아온 삶이 정말 안타까워요.
이 문제의 뿌리는 매우 깊습니다. 아이의 성교육을 어떻게 하란 말로 해결할 수 없을 만큼 현영씨의 고통은 오래된 것이에요.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셨으면 해요. 아이는 결국 부모의 교육으로 자랄 수 밖에 없어요. 당신의 사랑하는 딸, 도움을 필요로 하는 딸을 위해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꼭 밟으셨으면 해요.
정리=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지면을 통해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신청해 보세요. 사연은 한국일보 사이트(http://interview.hankookilbo.com/store/advice.zip)에서 상담신청서를 내려 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 지면에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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