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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88올림픽 불참했지만... 남한 개최한 대회 4차례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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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금까지 국내에서 열린 국제 종합 스포츠대회에 선수단을 파견한 건 네 차례다.
북한은 동ㆍ서방 냉전 시기였던 1988년 서울올림픽 참가는 고심 끝에 보이콧했다.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을 우리가 먼저 치르는 것에 대해 ‘체제 경쟁’에서 밀렸다고 보고 민감하게 반응한 탓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연이어 선수단을 보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는 18개 종목에 선수 184명, 임원 132명 등 총 316명을 파견했고, 여기에 응원단 280명과 취재진 및 만경봉호 선원 등을 포함하면 총 703명이 부산을 찾았다. 북한은 금메달 9개, 은메달 11개, 동메달 13개 등 총 33개의 메달을 수확해 종합 9위에 올랐다.
이듬해인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225명(선수 94명)의 선수단을 파견해 역시 종합 9위에 오르는 수확을 올렸다.
선수단 20명과 124명의 응원단이 파견된 2005년 인천 아시아육선수권대회 때는 김정은 위원장의 부인인 리설주가 청년ㆍ학생협력단 소속으로 방문하기도 했다. 성적은 동메달 1개에 그쳤다.
이어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도 14개 종목에 걸쳐 부산 아시안게임보다 다소 적은 선수단 273명을 파견해 경색된 남북관계에서 긴장 완화에 한몫 했다. 폐회식에는 북한선수단이 참가한 것은 물론 최룡해 비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등 최고위급 인사들이 참석하며 남북 경색 국면을 완화하기도 했다. 당시 북한은 금메달 11개와 은메달 11개, 동메달 14개로 종합 7위를 달성했다. 부산 아시안게임 이후 12년 만에 종합 ‘톱10'에 올랐다.
그러나 2015년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에는 북한이 불참하며 남북 스포츠 교류는 부침을 거듭했다.
북한이 참가를 결정하기까지 과정은 당시 상황에 따라 달랐다. 김대중 정부 때 열린 부산 아시안게임은 남한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처음 참가하는 거라 산통이 있었다. 남북간 실무 접촉 끝에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처럼 불과 개막 한 달을 남겨두고 참가 의사를 밝혔다. 남북 관계가 비교적 좋았던 노무현 정부의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때는 개막을 4개월 여 앞둔 상황에서 일찌감치 참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박근혜 정부였던 인천 아시안게임 때도 개막까지 5개월이나 앞둔 상황에서 일찌감치 공식 참가를 결정했다.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면 인천 아시안게임 이후 4년 만이자 역대 5번째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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