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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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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온
동생이 실종된 뒤로 괄호는 수시로 발견되었다. 그것은 발뒤꿈치에서 으깨지기도 하고, 식탁 위로 튀어 올라 입을 벌리기도 했다. 시계추와 함께 흔들거렸고 가만히 방안의 먼지를 받아내기도 했다. 가끔 햇빛이 드는 창가에 누워 양팔을 휘저었다. 낯선 이의 목소리에 울상 짓고 하염없이 떠는 건 이제는 내게 익숙했다. 장마가 시작되던 날엔 처마에 매달려 비를 그었다. 그러다 날아든 새에게 쪼이곤 다시 집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축축이 젖은 채로 집안에 흘러 다닐 때면 애처롭기보단 불안해 견딜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어디론가 증발해버릴 것만 같았으니.
괄호는 여러 형태를 가졌다. 허공과 허공 사이에 그악스럽게 들어앉아 있다가도 어느새 공기 중으로 풀려 들어가 고요하게 남겨질 때도 있었다. 가끔 누런 벽에 얼룩져 있었는데, 어머니가 물에 젖은 걸레를 들고 북북 닦아내곤 했다. 괄호는 백태 낀 안구처럼 희미해지더니 다시금 단단하게 뭉쳐 풍경 위로 떠 올랐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목에 감긴 괄호를 그때까지만 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눈치였다. 괄호를 풀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기라도 하면 어머니는 탄식을 내지르듯 중얼거렸다.
목이 마르구나. 물 좀 다오. 아가.
*
괄호는 팔을 벌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도 한껏 몸을 웅크리고 등을 돌리곤 했다. 그러다 슬그머니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단 한 번도 몸을 숙여 동생과 눈높이를 맞춘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공교롭게도, 나는 그럴 때마다 동생을 떠올렸다.
동생은 최소한으로 존재했다. 최소한의 반경에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소한의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내가 기억하는 동생의 일생이 그랬다. 동생에게 허락된 최소한의 반경은 집 안이었다. 작은 방에는 아버지가 가져온 등유 난로에 방바닥이 그을린 자국이 있었는데 그 자국을 가리기 위해 얇은 요를 한 장 깔아 두었다. 동생은 그 위를 좀처럼 벗어나지 않았다. 가끔 요를 빨아 널어두기라도 하면 그새 다른 요를 가져와 깔고 누워 있었다. 태아처럼 등허리를 한껏 구부린 채 동생은 숨을 흩트리고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요 위를 내어주지 않았다. 아마도 그건 하나의 권리이자 의무였다.
집안은 괄호로 넘쳐났다. 아버지가 가끔 빗자루로 괄호를 문밖까지 쓸어 놓았지만 돌아오면 어느새 또 다른 괄호들이 가득했다. 불가분의 관계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그러한 사실에 간단하게 동의한 채 살아갔다. 인정하고 동의하며 살아가면 모든 게 편했다. 동생의 실종은 아니었지만.
아주 드물게 괄호는 길거리에, 건주장에, 무덤가에 흐트러져 있곤 했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처음 괄호를 본 건 아버지였다. 그날은 오일장이었다. 비가 왔고 어김없이 길을 잃었다. 항상 다니는 길이었지만 아버지는 비만 오면 길을 헤매기 일쑤였다.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기억은 빗물에 씻겨 강으로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
아버지는 손에 서리태가 가득 든 비닐봉지를 든 채 사거리에 서 있었다. 익숙한 길을 따라왔지만 더는 나아갈 수 없었다. 몸은 이미 비에 젖었고 기억은 멎은 지 오래였다. 아버지는 비를 피하기 위해 사거리에 있는 집 대문 앞에 섰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폐가가 된 집이었다. 대를 이어 살다가 어느 순간부터 아무도 살지 않았다. 그즈음 폐가를 둘러싼 소문이 무성했다.
비가 오니 좀 들어가겠네. 비가 오니…….
오랫동안 녹슬고 부식된 대문을 밀어내자 폐가가 보였다. 누군가 문을 뜯어갔는지 집안이 훤히 보였다. 집안엔 가족사진이 힘겹게 걸려 있었고 서랍장은 하나하나 열려 있었다. 들쥐들이 들어와 지냈는지 가까이 갈수록 분뇨 냄새가 진동했다. 그리고 괄호. 괄호는 폐가 곳곳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분열이 일어난 벽 틈 사이나 섬돌 아래에 죽은 이의 뼈처럼 앙상하게 마른 괄호들이 자리를 지켰다. 아버지는 손바닥으로 마루에 쌓인 먼지를 쓸어내고 앉았다.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비가 그치면 돌아가겠네. 비가 그치면 함께…….
아버지가 뱉어낸 말들이 강으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괄호는 목격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괄호의 존재를 알면서도 다들 쉬쉬하는 눈치였다. 아주 가끔 서로를 마주치면 못 본 척 지나가거나 간단히 안부만 묻는 정도로 말을 아꼈다. 철저히 개인의 일이었다. 슬픔을 포함한 모든 감정 또한 그랬다. 우리는 각자의 슬픔에 치중한 채 살아갔다. 슬픔은 나눌수록 배가 되는 법이니까. 우리는 그걸 알아서, 서로를 방관하기로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리와 그들 사이에 시차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지내는 시간과 그들이 지내는 시간 사이에 분명 무언가 있을 거라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아득한 멀미를 느끼는 걸지도 몰랐다.
*
아버지는 택시기사였다. 내가 막 걸음마를 뗐을 때 얻은 첫 직장이었다. 몇 군데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번번이 서류심사에서 떨어졌다. 자격증이라곤 운전면허증밖에 없었으니,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택시기사가 됐다. 당시에 아버지는 택시기사야말로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직업이라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주로 버스가 끊긴 시간에 아버지는 택시를 몰고 나갔다. 새벽을 꼬박 달리며 하루 치 사납금을 벌었다. 아버지는 승객 몇 명에 기뻐하고 슬퍼했다. 그런 삶이었다. 미터기가 뿜어내는 나약한 불빛이 아버지에게 전부였다. 미터기를 끄는 순간 세상의 모든 불빛이 꺼지듯, 어둠은 그렇게 찾아왔다. 가끔 만취한 승객에게 팁을 받는 일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트럭에서 파는 통닭구이를 사 왔다. 나와 어머니는 얼굴에 기름을 잔뜩 묻힌 채 맨손으로 살을 쩍쩍 찢어냈다.
괄호 안에 만월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택시 안에 몸을 구겨 넣었다. 택시는 일정한 속도로 밤을 가로질렀다. 승객이 끊긴 지 오래였고 택시는 허구한 날 말썽이었다. 십 년 넘게 탄 세월도 세월이지만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곤 하루도 빠짐없이 달려댄 탓에 주행거리도 한몫 했을 것이었다. 회사에선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 택시는 양쪽 깜빡이가 고장 난 채로 삼켜지듯 어둠에 빨려 들어갔다. 아무렴 괜찮았다. 그즈음 아버지에게는 아무런 방향도 목적지도 없었다.
당신, 저기 좀 봐요. 강 위 말이에요.
강변을 따라 달리는 택시 안에서 어머니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을 지운 어머니가 중얼거렸다.
강 위에 있다니까요. 지금 막 강 위를 걸어가는 중인데……. 보이지 않으세요?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그저 두 손으로 핸들을 꼭 쥔 채 택시를 지나쳐가는 풍경들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일 년이, 마침내 택시기사의 생애까지도 이 풍경처럼 빠르게 지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강변을 지나자 익숙한 집 한 채가 튀어나왔다. 아버지는 그 집을 기억해내려 애썼다. 라디오가 켜진 건 그때였다. 라디오는 가끔 혼자서 켜지거나 꺼졌다. 제멋대로 주파수를 맞추기도 했다.
현재 시각, 전국적으로 비가 오고 있으니 우산을 꼭 챙기시기 바랍니다.
기상캐스터의 목소리가 택시 안에 퍼졌다. 아버지는 하늘을 흘끗 바라봤다. 비는커녕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다. 비가 오지 않을 동안에 어서 날이 밝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가 오면 길을 잃을 게 분명했다. 아버지는 조금 더 속도를 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감았다.
택시는 새벽을 지나 마침내 집에 도착했다.
*
괄호를 처음 발견한 건 동생의 실종신고를 마친 날이었다. 여름이었고 비는 내렸다. 장마의 시작이었다. 집안에 어둠이 먼지처럼 가라앉았다. 우리는 어둠 앞에서 침묵했다. 너무나 고요해서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방안에 물이 가득 차 있는 듯한 환영에 시달렸다. 불면이었다.
나는 반듯이 누워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작은 방 지붕은 작게 균열이 가 있었는데, 거기서 빗물이 자꾸만 새어 들어왔다. 아버지는 빗물을 받을 양은 대야를 두었다.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규칙적으로 빗물 소리가 났다. 나는 그 소리를 견딜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
허공으로 소리가 분분히 흩어졌다.
어머니는 커튼 뒤에 서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커튼은 비스듬히 기울어 있었고 그 너머의 풍경은 철저하게 가려진 채였다. 아무도 커튼이 기운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나는 집이 미세하게 기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간단하게 답을 내고 쓸데없는 의문은 갖지 않았다. 커튼 위로 그림자가 차분하게 떠올랐다.
애야, 기다려도 오지 않을 땐 기도를 하면 된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너무도 아득하게 들려왔기 때문에 나는 커튼 뒤에 서 있는 사람이 어머니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아주 잠깐 했다. 바람이 불었다. 커튼이 가만가만 흔들렸다. 그림자가 제멋대로 수축하고 팽창했다. 두 발이 가지런히 모여 있었다. 발은 미사포처럼 새하얗고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어머니는 한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내가 낮잠을 자고 깨어날 때까지도 그 모습 그대로였다.
양은 대야에 물이 흘러넘쳤다. 빗물은 작은 방을 지나 부엌으로, 마루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아버지, 빗물이 바닥에 흥건해요. 물을 비워내야겠어요. 손뼉을 칠 테니…… 이쪽으로 오세요.
발바닥에 빗물이 고여 들었다. 빗물을 피해 맨바닥으로 가 서면 또다시 빗물이 흘러와 발바닥을 적셨다. 그러는 새 아버지가 문밖으로 지나갔다. 나는 한동안 빗물을 피하고 서 있었다.
그럼. 물을 비워야지. 작은 방으로 가마. 가만히 있으렴…….
방은 어느새 빗물로 가득했다. 동생의 요는 이미 축축이 젖어 있었다. 나라도 양은 대야에 가득 찬 빗물을 비워내야 했다. 나는 작은 방 한켠에 둔 대야를 들여다봤다. 똑-. 빗방울이 떨어지자 수면 위로 괄호가 떠 올랐다. 괄호 안에 또 다른 괄호가, 그 안에 또 다른 괄호가 퍼져나갔다. 나는 오랫동안 괄호를 내려다보았다. 손으로 수면을 쓸자, 손가락 사이사이에 수많은 괄호가 얽혀 올라왔다.
아버지, 이것 보세요. 여기 있어요……. 작은 방에 말이에요…….
나는 대야에 찬 빗물을 방에 쏟아내었다. 방바닥에 괄호가 이리저리 흩어졌다. 문밖 저만치에서 그 광경을 보던 아버지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운 채 손뼉을 치며 찢어지게 웃었다. 나는 괄호가 쌓인 요 위에 오롯이 누웠다. 굳게 닫힌 괄호 안을 비집고 들어갔다. 그 어디에도 활자는 없었다. 괄호 안에는, 차가운 눈이 내렸다. 그리고 동생이 있었다. 나는 눈을 맞으며 저 멀리 걸어가는 동생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꽤나 외로운 시간이었다. 봄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길을 앓았다.
*
강에서 봤다.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어머니는 괄호를 매만지며 말했다. 누군가에게 최면을 걸듯 끊임없이 말을 이어갔다.
강으로 가야 한다. 강물이 붇기 전에 찾아야 한다. 강물이 붇기 전에…….
커튼에 걸린 괄호는 문틈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적당히 날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짐을 쌌다. 검정 보자기에 얇은 옷가지와 속옷을 올리고 단단히 묶었다. 신 한 켤레는 손에 들었다. 모두 동생의 것이었다. 추운 데 있어서 감기가 들었을 거라고, 어머니는 두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어머니는 짐을 들고 대문을 나서다가도 몇 번이고 집으로 되돌아왔다. 그러고는 짐을 새로 싸기 시작했다. 겨울옷을 챙기기도 하고 마른 꽃을 담기도 했다. 아버지가 장날에 사 온 무화과를 보자기에 한가득 싸기도 했다. 그때마다 신 한 켤레는 꼭 잊지 않고 챙겼다. 어머니는 긴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말렸고 어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짐을 싸고 풀었다.
방으로 걸어 들어가는 어머니의 등 뒤에 괄호가 돋아나 있었다. 괄호는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괄호 안에 술을 따라 마셨다. 술이 센 아버지였지만 쉽게 취했다. 괄호를 손에 쥔 채 비틀거리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조금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아버지는 좀처럼 괄호를 내려놓지 않았다. 어린 동생에게 처음으로 말을 가르쳐준 건 아버지였다. 동생은 여러 종류의 말을 작은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아빠, 하며 울었고 엄마, 하며 손뼉을 쳤다. 밤이라는 단어는 오래 들여다봤고 여름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괜찮다 했다. 괜찮다고 말하면 정말, 다 괜찮아지는 법이니까.
참지 못하면 달아나면 된다. 사는 건 줄기차게 도망가는 것이다. 혹시라도 길을 잃으면 손뼉을 치렴. 그럼 찾으러 가마.
동생은 아버지의 말에 재채기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괄호 안에 온갖 활자를 꾹꾹 눌러 담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괄호를 손에 쥐고 있었다. 술이 괄호 가득 차 있었지만 마시지 않았다. 벽에 몸을 기대고 앉아 어머니를 감시하듯 지켜볼 뿐이었다. 어머니는 그 어떤 시선도 느끼지 못하고 지궁스럽게 옷장을 뒤졌다. 대문을 나서다 혹여 마을 사람들을 마주쳐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그 무엇도 개의치 않았다.
강 위를 걸어가더라고요. 아시잖아요, 다들……. 그 애는 길을 잃은 것뿐이에요.
어머니의 말 사이사이에 괄호가 툭툭 떨어져 내렸다. 그 누구도 어머니의 말을 믿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동생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는 눈치였다.
건주장에 말린 무화과가 널려 있었다.
*
장마는 지나갔다. 더 이상 떠내려가는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 놓였다. 잔뜩 불었던 강물도 서서히 제 높이를 찾아갔다. 택시도 온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래전 아버지가 가르쳐준 방식대로 이제는 다 괜찮아지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동생이 사라진 사실까지도 그랬다.
어머니는 더는 짐을 챙기지 않았다. 집안 곳곳에 짐이 가득 든 보자기가 단출하게 놓여 있었다. 보자기 안에 어떤 짐이 들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가끔 검정 보자기가 주인 없는 무덤으로 보이기도 했다. 나는 보자기를 들춰내고 풀어낼 수 없었다. 싱크대 한쪽에 밀어둔 보자기에는 자꾸만 벌레가 꼬였다. 어머니가 어제까지 꾸렸던 짐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살면서 한 번도 맡아보지 못했던 악취가 풍겼다.
저 보자기 안엔 썩은 무화과가 있을 거야. 분명 썩은 무화과가…….
가끔 벌레가 한 마리씩 방안에 날아 들어오곤 했다. 손뼉을 쳤지만 단 한 마리의 벌레도 잡지 못했다. 아버지는 손뼉 치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벌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애가 길을 잃었구나……. 데리러 가야 한다. 미터기를 켜고 말이다.
나는 포기가 빨라서 더 이상 손뼉 치지 않았다. 가끔 괄호 안에 벌레를 잡아 가둬두는 게 전부였다. 어머니는 방 한 켠에서 썩은 무화과를 베어 물고 있었다. 입 주위에 과즙이 말라붙었고 그 위로 검고 작은 씨가 엉겨 있었다. 가끔 벌어진 입으로 벌레가 날아들었다. 어머니는 무화과를 오랫동안 꾹꾹 씹어 삼켰다.
여전히 커튼은 기울어져 있었다.
유난히 밤은 어두웠다. 괄호를 쥐고 잠이 들었던 나는 어떠한 인기척에 깨었다. 누군가 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아버지, 손님이 왔나 봐요. 이 밤에 손님이요……. 그치만 밤인걸요. 이대로 문을 열면 영영 밤을 살아야 할지도 모르잖아요……. 평생을 밤처럼 말이에요…….
나는 방에서 나와 대문으로 향했다. 주위가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소리의 근원지는 문 바깥쪽이 아닌 문 안쪽이었다. 맨발의 여자가 손바닥으로 부지런히 철문을 때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커튼이 흔들리겠네요. 나는 저절로 읊조렸다. 철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리는 점점 더 거세졌다. 나는 홀린 듯 대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여자는 밖으로 휘적휘적 걸어 나갔다. 양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나는 가녀린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철문이 스스로 닫히자 나는 중얼거렸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네요, 어머니.
날이 밝았지만 우리는 괄호 안에서 여전히 밤을 헤매고 있었다. 겨울을 걷기도 하고 가뭄에 목말라 하기도 했다. 밤하늘을 그으며 떨어지는 벼락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잠결에 나는 문득 외로워졌다. 온통 사라지는 것들 투성이었다.
*
거룩한 악몽을 꾸었어요. 사방이 빛이었고 저는 그 한가운데 서 있었어요. 멀리 바다가 보였는데 입을 지운 사람들이 자꾸만 그곳으로 돌멩이를 던졌어요.
나는 마른 침을 자꾸만 삼켰다. 입안에 단내가 났다. 지독한 갈증에 시달렸다. 커튼 위로 청량한 햇빛이 번져 있었다. 가끔 창틈 사이로 바람이 밀려 들어오기도 했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
집안을 제외한 모든 공간의 풍경들이 아득했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 장벽처럼 괄호가 쌓여 있었다. 시야가 반쯤 가려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요 위에 누워 있었는데, 그 형태만 대략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나는 팔을 뻗어 괄호를 쓸어냈다. 나뭇가지처럼 앙상하고 핏기 잃은 두 볼이 움푹 패어 보였다. 아버지는 여전히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라디오를 틀기로 했다. 주파수를 타고 흐르는 소리에 아버지가 깨어날 거라 생각했다. 나는 젖은 천으로 전축에 쌓인 괄호를 닦아내었다. 전원을 켜고 주파수를 맞추기 시작했다. 버튼을 돌리자 방안은 소음으로 가득 찼다. 아주 가끔 누군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곤 했지만 그마저도 잡음에 뭉개졌다. 지붕에 올라가 안테나를 돌리다 보면 주파수가 맞춰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방안엔 아버지 혼자였다.
집을 비운 사이에 동생이 돌아올지도 몰라.
나는 아버지를 내려다봤다. 아버지의 눈가가 푹 꺼져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손뼉을 쳤다. 아버지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버지, 달아나는 중인가요. 사는 건 그런 거라 하셨잖아요.
방안에 라디오 소음이 함부로 울려 퍼졌다.
달력을 한 장 찢었다. 동생이 실종된 지 이주 가량이 지났다. 누구도 돌아오지 않았다. 대문은 며칠째 굳게 잠겨 있었다. 나는 자꾸만 닫힌 괄호에 대고 중얼거렸다. 말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날마다 군청 직원들이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우편함은 온갖 고지서와 군청에서 보내온 편지들로 넘쳐났다. 나는 편지를 뜯어 큰소리로 읽었다. 편지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로만 가득했다. 사인, 인정, 선고 그리고 사망. 단어와 단어는 충돌하고 분열하기를 반복했다. 나는 허공을 떠도는 단어들 사이에서 귀를 틀어막았다. 이 집에서의 소리는 라디오 잡음으로 충분했다.
괄호를 손에 들고 편지를 잘라냈다. 편지 조각들이 분분히 요 위로 떨어져 내렸다.
*
먹버섯처럼 어두운 밤이었다. 나는 괄호 안에 익숙하게 손을 넣어 보자기를 꺼내 들었다. 신 한 켤레와 소금 한 주먹을 넣었다. 천장에 붙어 있던 야광별도 하나 떼어 담았다.
어머니를 찾으러 가야겠어요.
나는 방문을 나서기 전 아버지를 돌아봤다. 누구보다 편안한 모습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괄호를 끌어모아 아버지의 목 아래까지 덮었다.
아버지, 밤이 되었어요. 오늘은 승객을 태우러 가지 않을 모양이네요.
대문은 단단히 잠갔다. 엄연히 빈집이었다. 우편함을 비운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았지만 어느새 또 채워져 있었다. 남은 편지들은 돌아와서 읽기로 했다. 나는 보자기를 고쳐 들고 숨을 몰아쉬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마을은 괄호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길가에 난 잡풀 끝을 잡고 매달렸고 돌부리처럼 길가에 박혀 행인들의 발을 걸었다. 강가로 이어지는 길마저도 괄호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발을 디딜 수 없었다. 나는 괄호를 쓸어 모아 품에 안았다. 괄호는 자꾸만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럴 때마다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강가에 서서 동생을 부르고 있을 어머니를 떠올리면 기어이 마음 한구석이 저려왔다.
좁은 보폭의 발자국이 보였다. 단출한 민무늬 발자국이 꽤나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길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거라 확신했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나는 발자국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발자국을 따라가면 강에 닿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사로잡힌 채 나는 한동안 걸었다.
마을은 말라버린 것들로 가득했다. 앙상한 나무가 몸을 떨며 이파리를 털어냈고 건주장에 핀 들꽃은 대부분 시들어 있었다. 나는 불현듯 아버지를 떠올렸다.
강이었다. 짙은 안개 너머로 마침내 강이 보였다. 강바람은 불었고 새가 날아갔다. 어디선가 곰팡이냄새가 났다. 화약 냄새이기도 했고 피비린내이기도 했다. 냄새는 의외로 역겹지도,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도 않았다. 외려 내게 야릇한 위안과 평안을 안겨주기까지 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냄새는 허공을 맴돌다 내 숨을 타고 몸 깊숙이 침범했다. 나는 왠지 모를 요의에 시달렸다. 바지를 내린 뒤 아랫도리를 내미는데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강을 내려다봤다. 잔잔한 수면 위로 괄호가 떠다녔다.
그리고 동생.
동생이 물 안에 있었다. 발등 위로 두둑 오줌 방울이 떨어졌다. 그 순간 숨을 참았다. 오랫동안 몸에 익은 감각들이 한순간에 사라진 듯한 느낌이었다. 수심은 깊어 보였고 동생은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는 수면 위로 손을 집어넣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다만 강물에 손이 시렸다. 손을 빼내자 괄호가 손가락에 걸려 줄줄이 올라왔다. 수면은 잠시 흐려지더니 다시금 선명해졌다. 내가 거기 있었다. 눈을 크게 뜬 채 강을 내려다보는 내가.
동생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계속 달렸지만 풍경들은 자꾸만 멀어졌다. 발소리는 국경을 넘어가듯 아득해져 갔다.
*
강가에 앉아 발을 젓는다. 발 위로 자꾸만 엉겨 붙는 이름들을 휘저어 밀어낸다. 바지 밑단은 이미 축축이 젖어버렸고, 일렁이는 물결에 발이 가렵다. 수천 조각으로 날리는 바람이 유난하다. 마른 나무들이 모여 가지를 떨어낸다. 맨발의 여자가 저 멀리 침묵으로 내달리고 만취한 소문들은 질주하듯 강으로 자맥질한다. 말들은 무너지고 함부로 묽어지는 밤은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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