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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화재 참사] 구조대원, 비상구 둘러보고 왜 진입 안했나

입력
2017.12.27 20:0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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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ㆍ목격자 정보 수집하지 않아

지하 1층 수색 등 골든타임 놓쳐

시민들 비상구 주변서 구조 활동

충북 제천시 노블 휘트니스 스파 화재 직후인 21일 오후 3시 59분 비상구를 나선 한 남성이 골프가방 두 개를 들고 대피 중이다. 폐쇄회로(CC)TV 캡처
충북 제천시 노블 휘트니스 스파 화재 직후인 21일 오후 3시 59분 비상구를 나선 한 남성이 골프가방 두 개를 들고 대피 중이다. 폐쇄회로(CC)TV 캡처

21일 오후 3시59분. 충북 제천시 노블 휘트니스 스파 1층 비상계단 출입구 앞으로 생사를 건 탈출이 시작됐다. 119상황실로 화재신고가 접수된 지 6분 지난 시간. 건물 1층 주차장에서 난 불은 화염과 연기를 내뿜고 있었지만 비상구 쪽엔 큰 불과 연기는 없었다. 이 곳을 통해 민소매 셔츠만 걸친 남성이, 윗옷을 아예 입지 않은 채 맨발인 남성이 뛰쳐나왔다. 옷 대신 침낭으로 몸을 감싼 채 뒤뚱뒤뚱 걸어 나오는 이도 있었다. 지하 1층 골프연습장 손님으로 보이는 남성 4명은 골프가방까지 챙겨 건물을 빠져 나왔다. 찰나의 시간, 20명이 넘는 시민들이 비상구를 통해 대피했다.

27일 본보가 화재 당일 노블 휘트니스 스파 건물 정면과 비상구 쪽에서 촬영된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결과, 비상구는 건물 안 갇혔던 이들의 유일한 탈출구이자 자력 대피가 어려운 이들을 구할 수 있었던 소방대의 하나뿐인 진입로였다.

그럼에도 소방대는 우왕좌왕하면서 비상구 공략에 실패했다. 골든타임은 그렇게 허비됐다. 건물 도면도 없이 출동, 화재장소에 대한 뚜렷한 정보가 없었으면서 생존자나 목격자를 상대로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소방대원들은 결국 비상구를 두고 다른 곳을 택했다. 오판이었다. 4시 15분부터 37분 동안 구조대원 4명이 골프연습장이 있는 지하 1층을 수색한 것이 대표적이다. 연습장 손님들은 이미 비상구를 통해 탈출한 뒤였다. 소방관계자는 “화염이 거세 위층으로 진입하기 어려워 지하를 수색한 것”이라고 했지만, “2층에 사람이 많다”는 현장 주변 사람들 얘기를 귀담아 들었다면, 비상구로 곧바로 구조에 나섰다면 인명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고 유족과 생존자들은 주장한다.

이뿐 아니라 CCTV 영상에선 아쉬운 소방대 대응이 연이어 나온다. 소방대원들이 주차장과 액화석유가스(LPG) 탱크 주변 불을 끄고 2층 통유리를 깨는 데 집중하는 사이, 시민들은 비상구 주변에서 구조에 적극적이었다. 4시 6분 한 시민이 소방대원보다 먼저 가정용 매트를 들고 나왔고, 누군가는 모포를 들고 기다렸다. 4시쯤 3층 남성 사우나 이발사 김종수(64)씨가 10명이 넘는 시민들 탈출을 안내한 곳도 바로 비상구였다.

4시 7분, 소방대원 한 명이 비상구를 둘러보기는 했다. 하지만 구조 진입은 이뤄지지 않았다. 15분 구급대원이 비상구로 탈출한 생존자를 구조했고, 31분과 42분쯤 산소통을 찬 소방관이 비상구 쪽을 찾기도 했지만, 이 역시 실제 진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5시23분, 소방대원들이 비상구 쪽에 들것을 배치했지만, 비상구 안으로는 발을 들이지 않았다. 9분이 지난 32분, 들것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4시43분 진압대원들은 유리창을 깨고 건물 2층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인명검색을 실시했지만, 추가 생존자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미 2층에 있었던 20명은 숨을 거뒀을 것으로 추정된다. 변수남 소방합동조사단장은 “비상구 진입이 일찍 이뤄지지 않은 이유도 반드시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천=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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