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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서 기부금 떼고 주말 동원 ‘봉사 피로감’

입력
2017.12.26 20:0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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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1%ㆍ잔돈 자동 기부

회사 행사라며 봉사 필참 강요

강압적 방식에 직장인 회의감

깜깜이 사용내역도 불만 원인

“보여주기식 벗어나야 의욕 생겨”

대기업 사원 최모(25)씨는 석 달에 한 번씩 회사 봉사활동에 나선다. 회사에서 봉사주간을 정하고 각 팀에 봉사 날짜와 장소를 공지하는 식인데, 주말이 됐든 평일이 됐든 그날은 봉사가 업무다. 얼마 전에도 최씨와 팀원들은 회사 근처 장애인보호시설에 김장을 담가 주는 봉사에 ‘동원됐다’. 반복되는 회식과 야근에 천근만근 몸은 무거운데, 새벽 6시부터 배추에 양념만 묻히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이게 봉사인지 회사 일인지 모르겠다”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게다가 이날 봉사를 마친 최씨는 집이 아니라 회사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업무가 밀려 있어 팀 전체가 야근을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올해로 3년째 기부를 하고 있는 직장인 김모(28)씨. 회사 공익재단으로 빠져 나가는 월급 1%와 100원 단위 이하는 아예 기부금으로 돌리는 ‘잔돈 기부’로 4만원 안팎을 매달 기부하고 있다. 그는 요즘 부쩍 이런 기부 방식에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돈이 자동으로 빠져나가니 나눔의 기쁨이나 보람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김씨는 “자발적이라고는 하지만 회사에서 한다고 하는데 안 하겠다고 할 수 없는 사실상 반강제 기부”라며 “원하는 금액을 원하는 곳에 직접 기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씁쓸해 했다.

기업이 주도하는 의무 기부와 봉사활동에 반감을 드러내는 직장인들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나눔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와 달리 점차 강제성이 더해지면서 생기는 반발. “나눔을 회사 이미지를 높이는 수단으로만 여기는 것 같다”는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직장인들은 회사가 주도하는 걸 넘어 강압하는 기부나 봉사 방식이 거슬린다. 좋은 일도 남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하면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는 것. 겉으로는 ‘시간이 되는 사람, 여유가 되는 사람만 하면 된다’고 하면서 실상은 ‘회사에서 하는 행사니 반드시 참석’이라거나 ‘상사인 내가 하는데 너도 하라’라는 식이 대부분이다. 직장인 고모(42)씨는 “기부나 봉사활동을 통해 회사가 이미지를 개선하면서 직원을 동원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기부 결과를 모른다는 점도 불만 사항 중 하나다. 직장인 박모(26)씨는 “기부금으로 얼마나 나가는지는 급여명세서로 확인이 되는데 어떤 식으로 어떻게 사용이 되는지는 회사에서 알려주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바쁜 회사원들에게 기부·봉사 기회를 제공하는 것 아니냐는 긍정적 시각도 많다.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충분히 동의를 받고 시행하는 제도라고 강변한다. ‘(월급) 1% 기부’를 하고 있는 대기업 관계자는 “직원들의 기부나 봉사에 대한 의중까지 파악하고 있지 못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절대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강철희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업도 보여주기 방식의 사회 공헌에서 벗어나 직원들의 (기부나 봉사) 의욕을 증진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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