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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을 도덕으로 평가하는 나라, 그곳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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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발간
도덕적 완벽 ‘理’에 대한 갈망에
다이내믹하면서도 투쟁적
“한국 사회는 사람들이 화려한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하나의 거대한 극장이다. 한국 사회의 역동성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과 흥분은 항상 여기에서 유래한다.”
오구라 기조(58) 교토대 교수가 최근 발간된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모시는사람들)에서 내놓은 진단이다. 조선시대 형성돼 지금까지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교적 전통에 대한 해석은 늘 ‘제 논에 물대기’였다. ‘유교 자본주의’가 한 예다. ‘동아시아 4마리 용’ 시절에는 한국인의 저력, 단합된 힘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자랑스러움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스탠더드 시절엔 혈연ㆍ지연ㆍ학연으로 짜고 치는 적폐가 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좋을 때는 ‘덕분’이고, 나쁠 때는 ‘탓’이다. 오구라 교수는 8년 동안 서울대에 머물면서 한국철학을 공부한 지한파 지식인. 이 책에는 오랜 공부와 관찰 끝에 그가 정리한 ‘한국, 한국인론’이 오롯이 담겨 있다. 명과 암, 두 개의 얼굴이다.
오구라 교수가 보기에 한국에서 성리학, 주자학은 그냥 옛 이론이 아니다. 한국은 “사회 전체가 주자학”이고 “한국인의 일거수 일투족이 주자학”인 곳이다. 이유는 단 하나다. 오직 하나의 완전 무결한 도덕, ‘이(理)’로 모든 것이 수렴된다는 원칙이 여전히 작동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외교관 출신 그레고리 헨더슨이 ‘소용돌이의 한국정치’에서 한국사회를 두고 자율적 부문 없이 그저 중앙정치권력으로 모든 게 휘감겨 돌아가는 소용돌이 사회라 평했다면, 오구라 교수는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는 이(理)가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한국 사회는 모든 사람을 그 사람의 이(理) 함유량, 곧 ‘도덕 함유량’에 따라 평가한다. 도덕의 영역과 무관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예외 없다. 뛰어난 운동선수나 가수라 해도 “경기 성적이나 노래 실력만으로는 평가받지 못하고, 자신이 얼마나 도덕적인가를 국민들에게 납득시킨 후에야 비로소 스타가 될 수 있는” 사회다. 누가 먼저 더 높은 도덕적인 위치를 차지하느냐의 싸움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에 “올바르다ㆍ제대로ㆍ바람직하다와 같은 질서를 지향하는 말들이 난무하고 대량으로 소비”되는 사회다. 이런 이(理)의 사회는 이(理)의 함유량으로 1등에서 꼴찌까지 한 줄로 사람들을 쭉 늘어 세울 수 있는, 철저하게 위계적인 사회다. 첫 만남 등에서 나이ㆍ지위ㆍ학력ㆍ가문ㆍ고향ㆍ부(富) 등 상대방의 이(理)가 드러나는 지표를 단번에 파악하고 그에 맞게 잘 모시는 게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된다.
동시에 극도로 반항적이며 혁명적인 사회이기도 하다. 오직 하나의 완전무결한 이(理)만이 대접받는 사회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이 얼마나 도덕적인가를 소리 높여 다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곳에서 권력 투쟁이란 곧 “도덕을 내세워 권력을 잡는 세력이 얼마나 도덕적이니 않은가를 폭로하는 싸움”이 된다. 상대의 도덕을 싸잡아 비난할수록 ‘훌륭한 선비’가 된다. 이승만ㆍ박정희ㆍ전두환ㆍ노태우ㆍ김영삼ㆍ김대중 등 그간 정권교체 때마다 ‘민족중흥’ ‘정의사회구현’ ‘보통사람의 시대’ ‘신한국 창조’ ‘제2건국’처럼 우리 정권이야 말로 이전 정권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도덕적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연속성이 아니라 단절성을 강조”하는 정치적 슬로건들이 연달아 태어나는 이유다.
오구라 교수가 보기에 이런 기질은 한국인에게 축복이자 저주다. 자신의 이(理) 함유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끊임없는 경쟁 속으로 스스로를 던져 넣는다. 자신의 출신 성분, 학력 등을 감안해 이 정도면 괜찮다며 적당히 체념하고 만족하고 사는 일본인, 혹은 서구인과 다르다. 한국인들은 나의 이(理) 함유량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또 실제로 그것이 가능하다고 굳게 믿는다. 단적으로 일본의 천민집단 ‘부라쿠민’은 지금도 가끔 사회문제화되지만, 한국의 천민집단 ‘백정’은 이런 강렬한 상승욕구에 힘입어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국의 급성장은 이런 열망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한국인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괴롭히며 살아가는 존재다. 한국인만의 독특한 정서라는 ‘한(恨)’이란 이 열망이 좌절됐을 때 생겨난다.
오구라 교수는 이런 한국의 특성을 냉정하게 본다. 그의 시각은 제목 ‘하나의 철학’에 응축되어 있다. 강렬한 도덕적 열망으로 들끓기에 한국인은 모두 철학자다. 세세한 속세의 그 무엇보다 이 세상이,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얘기들을 뜨겁게 쏟아낸다. 반면 그 철학은 ‘하나’이기에 격렬한 투쟁을 피할 수 없다. 한국의 가치관, 이념, 이데올로기, 종교 같은 것이 하나 밖에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겉으로는 아무리 다양해 보여도 도덕적 완벽성에 대한 강박, 그 강박 간의 투쟁이라는 기본구조는 똑같기 때문이다.
첨단이라는 21세기 한국 사회도 변하지 않았을까. 탈민족주의, 세계화, 다문화주의에다 최근의 페미니즘까지, 다양한 가치가 비록 조금씩이라 해도 퍼져나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오구라 교수는 단호하다. “한국 사회의 근본적 구조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이(理)’의 내용이 바뀌었을 뿐이다.” 누가 더 탈민족적이냐, 누가 더 다문화적이냐를 두고 경쟁을 벌일 뿐 경쟁 자체는 변함이 없다. 한국사회는 좋게 말해 다이내믹하고, 나쁘게 말해 투쟁적이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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