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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화재 참사] 여성사우나 진입 후 ‘2차 골든타임’도 놓쳤다

입력
2017.12.25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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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깬 후 최소 35분 생존자 존재

소방당국 “인력 부족해 구조에 한계”

초기 구조대원, 규정보다 적은 4명

유족들 “케케묵은 매뉴얼” 비판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 사흘째인 23일 오전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충북 제천체육관에서 유족대책위가 이근규 제천시장과 제천경찰서장, 소방대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제천=뉴시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 사흘째인 23일 오전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충북 제천체육관에서 유족대책위가 이근규 제천시장과 제천경찰서장, 소방대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제천=뉴시스

제천 노블 휘트니스스파 화재 참사 당시 화재발화(21일 오후 3시53분)후 1시간 30분이 지난 후까지도 2층 여성사우나(20명 사망) 손님 중에 생존 전화를 걸었다는 유족 증언이 나오는 가운데 여기서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한 소방당국의 골든타임 내 구조실패를 두고 큰 의문이 일고 있다. 현장 진입이 늦었던 소방당국은 “인력부족 때문”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소방 당국과 유가족 등에 따르면 이날 화재에 소방차량ㆍ장비 98대, 총인원 592명의 대규모 자원이 투입됐지만 충주, 단양, 강원 원주 등 인근 지역에서 동원된 인력과 장비는 골든타임을 한참 넘긴 오후 6시쯤 현장에 도착했다.

골든타임이라 할 수 있는 화재 초기 제천소방서에서 현장에 투입한 인력은 오후 4시 1차 투입된 13명을 비롯, 총 26명(오후 4시12분 기준). 이 가운데 구조대원은 불과 4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소방 규칙에 명시된 ‘구조대 인력배치 기준’에 모자라는 수치다. 이 기준에는 중소도시로 분류되는 제천시의 경우 구조 인력 5, 6명이 현장에 배치됐어야 한다. 구조대원들은 도착 후 에어매트를 바닥에 깔고 3층에 매달린 부상자 1명을 구조했으며 출입구 화재를 진압한 이후에는 지하 1층 수색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던 2층 여성 사우나 외벽 유리창을 깨기 시작한 시간은 소방대가 현장에 도착하고 40분이 지난 오후 4시 38분이다. 당시 구조대원들은 이른바 백드래프트(산소가 부족한 실내에 갑자기 공기가 유입될 때 화염이 분출되는 현상)를 우려해 상당시간 외벽 유리창 분쇄를 주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구조대가 2층 유리창을 깨고 사우나 내부에 진입한 건 5분뒤인 오후 4시 43분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일부 손님은 생존했다는 유족 측 증언이 나왔다. 2층 여성사우나에서 장모와 처형, 조카를 잃은 박모(47)씨는 “장모님(80)이 사고 당일 오후 5시 18분에 집으로 전화했고, 딸이 받았다”며 “나와 아내를 찾다가 전화를 끊었다”고 밝혔다. 이는 구조대 진입 후 최소 35분간 생존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2층 여성 손님 20명은 중앙계단으로 통하는 사우나 출입구(11명), 휴게실 등(9명)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와 관련해 이상민 충북 제천소방서장은 23일 유가족을 만나 골든타임 내 구조실패 원인에 대해 “당시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가 동시에 이뤄져야 했는데 소방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말했다. 화재 진압과 인명구조, 환자이송 구급대원으로 역할이 다르다 보니 전 인원을 인명 구조에 투입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23일 오후 1시간30분 동안 화재 현장을 둘러본 유족들은 적극적 구조가 이뤄지지 않은 데 분통을 터뜨렸다. 유족 윤모씨는 “구조대 진입 후에도 전화 통화를 했던 사람 목숨도 못 구하는데 이런 케케묵은 매뉴얼 있으면 뭐하느냐”고 지적했다. 또 다른 유족은 “2층 사망자 시신 분포를 보면 한동안 내부에서 구조를 간절히 기다린 게 분명하다”며 “소방당국의 한 팀장이 ‘건물 뒤편으로 진입하면 되는 데 인력이 없었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유족에 따르면 20명이 사망한 2층 사우나는 그을음 정도만 있고 깨끗한 반면, 사망자가 1명도 없었던 3층은 천장이 녹아 내리고 주변이 새카맣게 전소했다. 유족 안모(24)씨는 “그을음이 인 화재 현장에 망자들의 손바닥으로 긁은 자국이 발견됐다”며 “구조가 늦어지자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 친 것 같다”며 울먹였다.

일부 유족은 “(불길이나 매연이 상대적으로 덜했던) 2층 사우나 황토방은 대로변 방향으로 그 주변에 공터도 있고 불법 주차도 없었다”며 “그곳 유리창 하나만 깨줬어도 많은 사람을 살렸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제천=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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