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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밥짓기] “내 밥은 내가 한다” 삼식이의 독립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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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0세 이상 ‘삼식이 요리경연’ 대상 이대식씨
미국계 회사 CEO로 일하다 5년 전 은퇴
요리교실 수강하다 음식 만들기 재미 붙여
“아내의 고단함 이해… 금슬도 좋아졌어요”
#2
구청 ‘할아버지 요리교실’ 신청 쇄도
“이제는 성별 이분법 무너져”
“손주들 왔을 때 자랑하고파”
“가장이란 특권의식 버려야”
#3
메뉴 궁리하고… 재료 다듬고…
누군가 대접하는 ‘돌봄 정신’ 반영
“이웃으로 확산 땐 좋은 사회 될 것”
한두 번 칼을 잡아본 솜씨가 아니다. 언뜻 보면 특급호텔 조리장을 방불케 한다. 부침가루와 튀김가루를 반 컵씩 부어 물과 함께 갠 후 찬물에 씻어 파랗게 생기가 도는 부추를 4㎝ 길이로 큼직하게 썰어 섞는다. 깔끔한 모양을 내기 위해 앞대가리와 끝단은 과감하게 쳐내는 남성적 호방함. 호박과 깻잎은 날렵한 솜씨로 채 썰고, 새우와 오징어, 바지락조개는 깨끗이 물에 씻어 한입 크기로 썰어놓는다. 센 불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카놀라유를 자박하게 부은 후 프라이팬 위로 살짝 손바닥을 올려 기름이 달궈졌는지 확인한다. “됐다!” 동그랗게 뜬 반죽을 프라이팬에 올리자 지글지글 아우성치며 부추해물전이 익기 시작한다.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평생학습관 조리실. 어슷어슷 썬 홍고추를 반죽에 섞지 않고 일일이 해물전 위에 따로 올리는 이 세심한 요리사는 올 9월 열린 ‘삼식이 요리경연대회’ 대상 수상자 이대식(69)씨다. 서울 마포구가 2012년부터 매년 노인의 날을 기념해 개최하는 삼식이 요리경연대회는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만 60세 이상 은퇴 남성들이 아내 도움 없이 요리 실력을 뽐내는 행사. 심사위원 한 명이 ‘저 분은 혹시 전문 요리사 출신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냈을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과시한 이씨는 은퇴 전까지는 요리 경험이 전혀 없던 초짜다. 3년 전 압구정노인복지센터에서 남성요리교실을 수강한 게 본격적으로 칼과 도마를 써본 첫 경험이다.
할아버지, 생존기술을 익히다
서울대 경영학과 67학번인 이씨는 미국 자동차부품회사 보그워너의 한국법인 최고경영자(CEO)로 일하다 5년 전 정년 퇴직했다. 회사가 창원에 있어 15년간 주말부부로 지냈지만, 외식이 잦아 라면이나 끓여먹는 수준이었다. 은퇴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의 제안으로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노인복지관 남성요리교실을 찾은 그는 “해보니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어” 요리에 푹 빠졌다. 3년간 매년 한 계절씩은 요리교실에 다녔다.
“전에는 오늘은 집사람이 뭘 해주나 싱크대 뒤에서 흘깃 넘겨보며 눈치보고 살았죠. 하지만 지금은 내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재료 사다가 만들어서 같이 먹어요. 그러니까 자존감이 생기고 자신감이 높아졌죠. 나도 뭐 걱정 없어. 안 해줘도 뭐든지 해먹을 수 있다고!(웃음)”
그의 대상 수상 소식이 가족과 친구, 이웃들의 카톡방으로 퍼지면서 일대 파란이 일었다. 특히 아내의 친구들에게서 열광적인 반응이 나왔다. “너는 너무 좋겠다, 다들 부러워한다더군요. 아들 둘 출가시키고 아내와 둘이 사는데, 요즘엔 일주일이면 두 번 정도는 제가 요리를 해서 먹습니다. 어제도 갈치조림이랑 굴무국을 해줬더니 아주 좋아하더라고요.”
은퇴 후 집에서 몇 끼를 먹느냐는 가정 내 노년 남성의 지위를 규정한다. 한 끼도 안 먹으면 ‘영식이님’, 한 끼만 먹으면 ‘일식씨’, 두 끼를 먹으면 ‘이식군’, 세 끼를 다 먹으면 ‘삼식이놈’이라는 게 오래 된 세간의 우스개다. 그나마 이런 우스개도 아내가 건강할 때나 할 수 있는 얘기. 나이 든 아내는 자주 아프고, 가끔은 입원하기도 한다. 내 밥은 둘째 치고 미음이라도 끓여줘야 한다. 주방을 서성이다 보면 불현듯 엄습하는 건 ‘어쩌면 나 홀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 요리하는 남자가 섹시하다느니 어쩌니 하는 건 너무 먼 세계의 이야기다. 생존의 차원에서 요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는 나이가 바로 노년기다.
아내가 없으면 며느리, 며느리가 없으면 딸이 끼니를 챙겨주던 과거의 대가족 제도는 이미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노년의 많은 남성들은 아직도 요리는 나의 일이 아니라고 여긴다. 아내와 사별한 경우만 곤란한 것도 아니다. 손주 돌보러 아들네, 딸네 가 있는 아내에게 나의 끼니는 더 이상 급선무가 아니다. 강원도 별장에 조용히 머리 식히러 갔던 70대 남성 A씨는 폭설에 갇혀 옴짝달싹 못한 적이 있다. 산 속 별장에서 식당까지 차를 몰고 나갈 수도, 그 흔한 편의점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별장에는 쌀이 있었지만, 밥을 할 줄 몰랐다. 비축간식으로 버티며 근 사흘을 굶다시피 지내다 교통통제가 풀린 후에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요리는 생존의 기술이다.
요리강습이 가장 절실한 건 할아버지들
삼식이 요리경연대회 대상을 배출한 압구정노인복지센터는 올해 두 차례 ‘행복을 요리하는 남자’ 과정을 운영했다. 기당 12명의 은퇴남성이 참여한 이 프로그램의 2기 종강식이 열린 14일, 강의실에선 세 달 간의 요리 실습을 마친 할아버지들의 소감과 건의사항이 활발하게 오갔다. 은행원으로 일했던 이장원(73)씨는 “남자노인들이야말로 꼭 요리를 배워야 한다”며 “친구들 모임에 가서 말하면 남자가 뭘 그런 걸 하냐는 사람보다 동감하는 친구들이 훨씬 더 많다”고 말했다. “배우자가 병이 났는데, 밥 차려달라고 할 수 있습니까. 예전에는 마음이 있어도 싱크대 앞에 서는 게 어색하고 거북했는데, 이제 요리를 배우고 나니까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리고 요리의 기본은 설거집니다. 이걸 완벽하게 해놓지 않으면 안 돼요. 도마 앞에 서는 게 덜 어색하니까 이젠 집사람도 ‘양파 좀 썰어요, 파 좀 썰어봐요’ 시키더라고요. 제가 아주 기꺼이 하죠.”
정부기관 연구소에서 일하다 퇴직한 윤양수(70)씨는 “이제 성별 이분법이 무너지고 있다”며 “중고등학교에서 남학생들한테 가정 과목을 가르치지 않는 우리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건 여자가 할 일, 저건 남자가 할 일, 그런 건 이제 없어요.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요. 요리뿐이 아닙니다. 왜 우리한테 바느질은 안 가르쳤는지 모르겠어요. 여자들한테도 전구 가는 법을 가르쳤어야 하고요.”
“아니, 내가 요리를 배워보려고 학원에 갔더니 남자라서 안 받아준다는 거야.” 교육자로 은퇴한 오상화(78)씨는 “어느 요리교실을 가도 여성 일색이라서 배우고 싶어도 끼어들기가 힘들다”며 “남성노인들만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에 배운 건 우리 노인들이 마누라 없을 때 혼자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의 메뉴들이었잖아요. 손자 손녀들이 왔을 때 한번쯤 자랑해 볼 수 있는 음식, 애들이 좋아하는 파스타 같은 걸 한두 가지쯤 프로그램에 넣어주면 좋을 것 같아. 우리는 명칭도 모르고 방법도 모르니까 천천히 쉽게 배울 수 있는 레시피로요.”
세상이 바뀌었다, 변해야 산다
‘할아버지 요리교실’은 구청과 주민센터마다 각광받는 최고 인기 프로그램이다. 최근 몇 개월 사이에만 서울 중랑구청의 ‘중장년층을 위한 저염 레시피 요리교실’, 서울노원50플러스센터의 ‘중년남성요리교실 요남’, 장흥군청의 ‘셰프파파 남성요리교실’, 광주 동구청의 ‘무료 남성요리교실’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수요는 확실히 있다. 각 프로그램마다 접수 경쟁이 치열할 뿐 아니라 일회성으로 시작된 프로그램들도 회차를 거듭하며 이어지고 있다.
“제가 1기에 접수를 하고 싶었는데 두 시간 만에 마감이 돼 버린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2기 때는 오전 9시 시작하는 접수에 대비해 8시 50분부터 전화통을 붙들고 있었다니까요.”
22년간 직업군인으로 일하다 전역한 후 자영업을 하는 최영종(65ㆍ광주 동구)씨는 자녀들을 출가시키고 아내와 단 둘이 살면서 ‘탈-삼식이’를 결행했다. 아내는 자주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고, 혼자 라면이나 끓여먹는 날들이 많아지며 ‘변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심각하게 들었다. “과거의 권위를 고집하면 다치고 손해 보는 것은 나밖에 없습니다. 전역하고 사회에 나오면서 빨리 간파를 했죠.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남자가 죽어야 가정이 산다고 하지 않습니까. 납작 엎드려야 해요.(웃음)”
새마을금고 이사장 최용주(70)씨는 “남자야말로 반드시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TV 요리프로그램도 열심히 찾아 보며 레시피를 메모하는 요리 마니아다. “시대 흐름에 따라서 나이 먹은 사람들이 변해야 할 것 아닙니까. 저는 아들들한테도 꼭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고, 우리 며느리들이 집에 오면 제가 직접 닭도리탕을 만들어줍니다. 며느리들이 기가 막힌다고, 시어머니가 해준 것보다 더 맛있다고 할 정도죠.” 그가 동구청 요리교실을 찾은 건 그간 해온 자신의 요리가 계통 없는 ‘야매요리’였다는 불만 때문.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 직접 해봐도 그 맛이 안 나오고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 배워보니 순서라는 게 있더라고요.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하니까 훨씬 간편하고 체계적으로 잘 됩디다.”
함께 요리를 배운 김건진(65ㆍ도로교통공단 퇴직)씨는 “친구들 중엔 삼식이가 여전히 많다”고 했다. “‘남자가 돼 갖고 부엌에 들어가서 무슨 그런 짓을 하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많은 친구들이 홀로 됐을 때의 삶을 상상해봤냐, 그런 얘기를 해요. 그때는 굉장히 난감하겠구나, 가부장제 같은 건 얼른 잊어버리고 가장이라는 특권의식도 빨리 떨쳐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것은 생존기술이다, 반드시 알아야겠다 싶었습니다.”
돌봄노동의 대상에서 주체로
장ㆍ노년 남성들이 요리를 배우는 효과가 스스로 살아남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요리라는 돌봄노동의 특성상 내면에서 여러 가지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아내와 함께 부동산을 운영하는 변금철(58ㆍ광주 동구)씨는 아내보다 두 시간 일찍 퇴근하지만 저녁 식사는 8시에 귀가한 아내가 차려줘야 먹었다. 식사가 끝나면 밤 10시. 불편한 생활이었다. 이제는 요리교실에서 배운 고등어조림과 멸치볶음, 계란말이로 아내가 돌아오기 전 미리 밥상을 차려놓을 생각이다. 오랜 세월 아내가 나를 위해 해주었던 일을 나는 왜 아내를 위해 하지 못한단 말인가. 전문가에게 배운 솜씨라 맛도 상상 못할 만큼 좋다는 게 그의 자랑이다.
노원50플러스센터에서 10개월간 요리를 배운 김태성(60ㆍ구청 공무원)씨도 “요리를 통해 아내의 노고를 온몸으로 절감”했다. “예전에는 아내가 음식 만드는 걸 보며 뭘 그렇게 오래 걸리냐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직접 해보고서야 이게 얼마나 힘이 드는 중노동인지를 알게 된 거죠. 저는 돈만 벌어다 주면 되는 줄 알고 살았어요. 이제야 아내도 힘들었구나, 나와 살아주는 게 고마운 일이구나를 느껴요. 영양굴밥을 해줬을 때 딸들이 아주 좋아했거든요. 그런데도 아내는 제 요리를 못 미더워하며 안 먹으려고 하더라고요. ‘당신을 위해 한 요리니 한번 먹어달라’고 부탁하니까 감동하며 먹어주는데, 그 이후로는 여행 갈 때도 요리 담당으로 꼭 끼워주고 아주 사이가 좋아졌습니다.”
누군가를 먹이기 위해 궁리한 메뉴, 일일이 다듬고 손본 재료, 뜨거운 불 앞에서 지지고 볶으며 힘들게 만든 음식. 이 모든 과정에는 맛있게 배불리 먹이겠다는 돌봄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너를 위해 요리한다. 왜? 너를 좋아하고, 아끼니까. 사랑하니까.
“요리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매우 좋은 방법입니다. 제가 서예를 해서 남을 즐겁게 해주기는 무척 어렵죠. 하지만 요리는 서비스해줄 수 있지 않습니까. 쉬운 봉사의 도구예요.” 삼식이 요리 대상에 빛나는 이대식씨는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도산공원으로 쓰레기를 주우러 간다. 불타는 토요일을 보낸 젊은이들이 남긴 흔적을 일요일에 쉬는 청소 노동자들을 대신해 치우고 나오면 봉사자들끼리 서로 수고했다, 고맙다, 인사를 나눈다. “아주 보람 있는 일이에요. 제가 골프를 좋아해서 자주 치는데, 며칠을 골프를 쳐도 나한테 수고했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건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요리도 그렇지 않죠. 요리의 돌봄정신이 가족뿐 아니라 이웃, 커뮤니티로까지 넓어진다면 더 좋은 사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남녀구별 없이 가정 일을 나누고, 서로 음식을 나누며 즐기고, 그것이 사회로까지 이어지는 것. 이젠 돌이킬 수 없는 트렌드가 될 겁니다.”
일취월장하는 할아버지의 요리솜씨에는 그러나 부작용도 있다. 교육공무원으로 은퇴한 광주 동구의 김영송(72)씨는 최근 수강한 요리교실 덕분에 요리의 기본원리 습득에 성공했다. 이제 웬만한 레시피는 혼자 독해가 가능하고, 맛도 기가 막힌다. 계란말이도 수업 동기들은 예쁘게 말기 힘들다며 하소연했지만, 강사 설명대로 하니 동그라니 먹음직스럽게 잘 말렸다. “제가 아들 사위들한테 야물게 교육을 시켰습니다. 가사분담 차원에서 하루 한번이라도 반드시 늬들이 음식을 해야 한다. 아니 왜 남의 집 딸을 데려다 고생만 시키냐 이 말입니다. 그런데 제 요리가 너무 맛있어서 걱정이 한 가지 생겼어요. 우리 집사람이 아예 세 끼를 다하라고 할까 봐 무서워서, 제가 요즘 그것이 고민입니다. 하하.”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오희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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