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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억울하다] “내가 제일 억울한 세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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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F세대 하명수씨
20년전 IMF 이후 사회 각박해져
같은 일 하는데 정규직-비정규직 나눠
거대한 갑이 을들을 싸움시키는 듯
# 88만원 세대 차현기씨
현대차 직영-하청업체 자녀들
초등학교에서 따로따로 놀아
'880만원 세대'가 되고 싶다
# 이해찬 세대 이인호씨
'단군 이래 최저학력' 납득 안 가
누가 어떤 기준으로 말한 건가
취업 운 좋아 아래 연배엔 미안
# 무한경쟁 세대 진은혜씨
우리가 경쟁으로 힘든 걸
노년ㆍ장년층은 이해 못 해
세대별로 다름을 인정해야
# 마루타 세대 정장희씨
공부 잘하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곳 취업한다는 흐름 공고
개성이 존중 받는 사회 됐으면…
최근 포항 지진 사태로 수능시험이 연기되자 수험생인 99년생의 불운을 이야기하는 말들이 떠돌았다. 중고등학교 때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포항 지진까지 안 겪은 재난이 없다는 것. 굴곡진 한국의 현대사에서 수능 일주일 연기는 얼마나 큰 고난에 해당할까?
수능 첫 세대인 하명수(42ㆍ대형해운사 차장)씨는 수능을 2번 치른 유일한 학번이자 졸업을 앞둔 1997년 외환위기(IMF)가 터져 취업난에 시달렸다. 차현기(35ㆍ현대중공업 사내협력사 이엔컨트롤 조장)씨는 월급 88만원의 비정규직 시대를 전망한 책 ‘88만원 세대’를 온몸으로 겪었다고 한다. 차씨보다 1년 아래인 이인호(34ㆍ지엠솔루션 대리)씨는 ‘하나만 잘하면 대학 간다’고 했던 ‘이해찬 교육 1세대’로, 유독 쉬운 고교과정과 유독 어려운 수능의 불일치로 비애를 맛보았다. 2008학년도 수능을 치른 진은혜(28ㆍ취업준비생)씨는 수능등급제 도입과 함께 수능-내신-논술이 3분의 1씩 반영되는 대대적인 대입제도 변화 때문에 학창시절부터 무한경쟁을 벌여야 했다. 정장희(22ㆍ숙명여대 4년)씨도 쉬운 A형과 어려운 B형으로 수능 국영수를 치렀던 유일한 학번으로 입시 마루타, 실험쥐 세대로 불린다. 9일 오후 7시30분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난 다섯 세대의 남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내가 얼마나 억울한 줄 아느냐며.
-왜 자기가 억울한 세대라고 생각하나. 각 세대가 특유하게 겪었던 어려움을 이야기해 보자.
IMF 세대 하명수씨(이하 IMF 세대)=“수능 첫 세대이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수능 2번을 봤다. IMF가 터진 후 1999년 3월에 군대 제대하고 복학하지 않고 광주 삼성전자 가전제품 공장에서 냉장고 생산라인에서 일했다. 학비라도 보태려고 인력 파견 업체에 지원했다. 대학생이면 안 받아 줄 것 같아서 밝히지 않고 9개월 동안 일했다. 대학 다닐 때 88~90학번 선배도 있었는데, 90학번까지만 해도 졸업 후 취업 걱정은 없었다. 학교로 학생 추천해 달라고 원서가 오고, 원서만 내달라는 대기업도 있었다. 그런데 91학번이 졸업할 때쯤 IMF가 터지고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됐다.”
88만원 세대 차현기씨(이하 88만원 세대)=“2008년 2월 졸업한 뒤 서브프라임 금융위기가 터졌다. 취업할 생각을 못했다. 고향인 부산에는 서울처럼 큰 기업이 없어 취업난이 더 크게 느껴졌다. 부산 동서대 무역통상학과를 졸업했는데 취업을 위해 따로 프로그래밍 기술을 배웠다. 처음에 중소기업에 들어갔는데, 비정규직 같은 정규직이었다. 회사가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회사 없어지면 같이 없어지는 일자리였다. 대기업과 연봉 차이도 컸다. 대학 4학년 때 ‘88만원 세대’라는 책이 나와서 봤는데 그 때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면 딱 들어맞았다.”
이해찬 세대 이인호씨(이하 이해찬 세대)=“고등학교 좋은 데 가려고 중학교 때부터 야간 자율학습(야자)을 했었다. 그러다 1999년 고등학교 들어간 후 이해찬 당시 교육부장관의 교육개혁정책이 시행되면서 야자가 없어졌다. 중학교 때는 야자를 했는데 고등학교 땐 안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거다. 오후 5시쯤 수업 끝나면 탁구 배우고 바둑 배웠다. 악기 배우고 싶은 애들은 악기 배웠다. 자유분방한 세대였다. 그런 면에서 혜택을 받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수능이었다. 직전 해에는 수능이 너무 쉬워 만점자가 66명이나 나왔는데, 갑자기 수능이 너무 어려워졌다. 시험 보던 학교에서 수능 보다가 몇 명 나갔다고 했다(2002학년도 수능 시험 포기자는 전국 2,457명으로 전년의 2배가 넘었다). 모의고사 점수보다 60점 넘게 떨어졌다. 너무 긴장해서 답도 다 틀리게 적어 왔다. 진학할 대학을 정하지 못하고 모두 하향 지원해서 서울대도 미달, 연세대도 미달 사태가 났다. 수시에 합격하고 수능 최저등급을 못 넘겨 대학 못간 애들도 많다. 대학 가서 술 취해서 선배 붙잡고 ‘내가 어느 대학 가려고 했었는데’ 이러면서 울기도 했다. 대학 가서도 많이 놀았는데 그러다 보니 취업도 쉽지 않더라. 많이 놀았던 게 후회가 된다.”
무한경쟁 세대 진은혜씨(이하 무한경쟁 세대)=“나는 정반대다. 학창시절 입시경쟁 때문에 학교가 친구와 적이 공생하는 공간이었다. 고등학교 때 입시가 돌변해 내신 비중이 커졌다. 상대평가라는 큰 적도 생겼다. 13번의 수능이라고, 내신 12번(3년 6학기 동안 중간ㆍ기말고사)과 1번의 수능이 대입에 반영됐다. 우리 학교는 국어, 영어, 수학, 암기과목을 나눠 한 학기에 4번씩 시험을 봤고 1년에 8번의 시험성적이 내신에 반영됐다. 매일 대입 시험을 본 셈이었다. 친구들이 경쟁자일 수밖에 없었다. 경쟁심에 타오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낙오하는 친구들이 생겼다. 고1 첫 시험 후 자퇴한 친구가 3명이나 있었다. 강남에 경쟁이 치열한 학교에서는 친구 노트를 몰래 찢어서 버린다는 괴담도 있었다.
수능이 어처구니없는 등급제가 되면서 그렇게 됐다. 88점짜리 2등급과 78점짜리 2등급이 똑같은 2등급이었다. 변별력이 없으니 논술이랑 내신까지 다 봤다. 부모님이 사교육을 잘 안 시키는 성격이신데 나도 고3 때 논술학원을 다녔다. 배운 적도 없는 소크라테스에 대해 토론했다. 대학진학 결과가 뒤집히고 재수하는 친구들이 부지기수였다. 대학 졸업하려고 보니 이제는 무한 취업경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생이 경쟁이었다.”
# 억울한 세대들 모여 공감 나눠
아래 세대로 갈수록 경제적 박탈감 커
“네가 더 힘들었겠구나…” 위로도 건네
마루타 세대 정장희씨(이하 마루타 세대)=“우리 때도 실험적인 교육정책이 많이 시행됐다. 고등학교 때 입학사정관제가 생겼다며 공부만 잘해서 대학 가는 시대가 아니라고 했다. 동아리와 대외활동을 많이 하고 상도 많이 받아야 한다고 해서 준비를 많이 했었다. 수능 국영수가 쉬운 A형과 어려운 B형으로 나뉜 것도 우리 세대 때다. 지원할 대학에 맞춰 A/A/A로 볼 건지, B/A/B로 볼 건지 결정해야 했는데, 가려는 대학이 딱 정해지지 않은 친구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친구가 A형으로 빠져나가면 내가 점수를 더 못 받는 게 아닌가 불안해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영어 A/B형은 다음해에 바로 없어졌다. 더구나 수능을 치고 보니 전년 수능과 비교해 A형이 쉽지도 않았다.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A형 100점하고 B형 100점이 다른데 어떻게 반영할 건지도 잘 몰랐고, 원서 낼 때 눈치싸움이 치열했다.”
-취업난에 대해선 공통적으로 토로하고 있다.
이해찬 세대=“대학 때 과사무실 앞에서 채용 공고를 봤다. 연봉 2,200만원이었는데 ‘이 돈 받고 취업하느니 취업 안 하고 만다’고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10년 뒤에 취업했는데 딱 몇 십 만원 더 받고 취업했다. 대학 다니는 동안 계속 취업 기조가 바뀌었다. 2008~2009년 3, 4학년 때는 스펙 위주로 뽑는다고 하더니 2010년 졸업할 때쯤 되니까 인생에 스토리가 있어야 된다고 했다. 그때 이력서를 100개 넘게 썼는데 매일 거짓말을 지어 내기 바빴다. 1년쯤 취업준비 하다 우울의 나락에 빠져 낙향을 했다. 1년 정도 포기하고 놀면서 글도 써 보고 어릴 때 좋아했던 게 뭐였지 되돌아보기도 하면서 서른 살의 사춘기를 겪었다.”
무한경쟁 세대=“선배들 취업 결과를 보면 내가 이 정도는 갈 수 있겠다 가늠하게 되는데, 어느 순간 그것도 힘들더라. 부모님 도움 받기도 어려워지면서 고향을 가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 임시방편으로 비정규직이나 성에 안 차는 회사에 취업했다가 계속 다른 회사에 원서를 쓰는, 징검다리 취직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마루타 세대=“우리 세대의 가장 큰 걱정이 취업이다. 중고등학교 때 사교육 열풍이 불어서 학원 많이 다니고, 서울로 진학하고, 영어만 잘하면 어디든 취업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대학 와 보니 영어는 기본이다. 제2외국어를 해야 하나 대학 내내 고민했다. 공모전, 대외활동, 인턴 이런 걸 찾게 되는데 이제는 인턴 하기도 너무 어렵다. 몇 시간 전에 인턴 자기소개서를 내고 왔는데 자괴감이 든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보니 내가 한 게 너무 없다. 그렇게 내내 스펙을 쌓으려 노력했는데 이제는 학교와 학점을 다 가리는 블라인드 채용이 나오고, 지방대 졸업자에게 채용인센티브를 주는 지방인재 정책이 나오면서 엄청 혼란스럽다. 이럴 거면 왜 서울로 왔을까 생각이 든다.”
이해찬 세대=”우리 사회가 너무나 갑자기 바뀌어서 그렇다.”
88만원 세대=“들어 보니 오히려 내가 편하게 산 것 같다. 졸업 때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져 힘들다기보다는 어이없는 상황이 됐다. 대학 친구로부터 선배들이 삼성, LG에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 거짓말이었다. 너무 어렵다 보니 허세만 생긴 거였다. 대기업 취업은 완전히 막힌 상황이었다. 그런데 연령에 따라, 지역에 따라 연봉에 대한 기대에 차이가 크다. 중공업 사내하청인 우리 회사의 경우 초봉인 3,000만원대 후반~4,000만원대 초반인데 20대 신입사원들은 7,000만~8,000만원 정도를 기대한다. 경기지역 회사들 보면 연봉 2,000만원도 못 받는 경우도 많이 봤다.”
-따지고 보면 IMF 이후 한국사회가 점점 각박해지는 단면들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IMF 세대=”20년 전 IMF로부터 흘러온 결과다. 계급 아닌 계급이 이 사회에 존재한다. 거대한 갑이 을들을 싸움시키는 것 같다. 같은 일은 하는데 정규직, 비정규직 임금 차이를 둘 게 뭐가 있나. 동일 임금을 적용하면 되는데, ‘너라도 살아남아야지’ 하면서 싸움을 붙인다. 일부는 자기도 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해찬 세대=“IMF 때 정리해고 하면서 동료들끼리 그랬다지 않나. ‘네가 안 잘리면 내가 잘린다.’ 경쟁이 치열해지니 더 큰 갈등이 생긴다.”
무한경쟁 세대=“나와 나이는 같지만 좋은 기업에서 탄탄대로를 걷는 친구들과 얘기해 보면 가끔 무서울 때가 있다. 회사의 비정규직이나 경리직 사원을 하대하듯 말하더라. ‘같이 밥 먹는데 같은 직급 취급을 해 기분이 나빴다’고 말하는 친구를 보면서 거리감이 느껴졌다. 분명 조직에서 그 사원들을 무시하는 걸 봤으니 그 친구도 그런 행동을 보일 것이다. 지적하고 싶었지만, ‘네가 오래 취직 못하고 비정규직 오래 해봐서 그런 것’이라고 할까 봐 삼켰다. 무섭고 슬프다.”
마루타 세대=“아버지를 보고 느낀 게 많았다. 2013년 고3 때 정년이 얼마 안 남은 아버지를 나가게 하기 위해 회사가 별 방법을 다 썼다. 서울에서 젊은 사원을 보내 핀잔을 주거나 안 가도 되는 출장을 멀리 보내는 식이었다. 하루는 힘들다고 내게 말씀하셨는데, 내가 ‘아버지 행복이 먼저’라고 말하니 3일 만에 회사를 그만두셨다. 내가 대학 가면 들어갈 돈이 많으니까 그동안 힘들었는데도 2년을 버티신 거였다. 그 모습을 봐온 나는 대기업을 선호하지 않는다. 회사에 모든 시간을 바치는 것보다는 워라밸(워크 라이프 밸런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IMF 세대=”교과서에서는 IMF가 왜 일어났다고 적혀 있나? 방탕한 소비문화 때문으로 배운다고 하던데….”
마루타 세대=“잘 모르겠다. 내가 공부를 열심히 안 했나?(웃음)”
IMF 세대=“잘못은 소수가 하는데 피해는 늘 선량한 시민들이 본다. 교과서에서는 IMF의 원인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는지 궁금하다.”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서로 공감하나? 다른 세대의 반응에 화가 나는 경우는 없나.
무한경쟁 세대=“댓글 하나가 생각난다. 한 친구가 재수를 결심하면서 ‘저주받은 08학번’이라는 게시물을 올렸는데 ‘부모님이 먹여 주는 밥 따숩게 먹으면서 징징대네’라는 댓글이 있었다. 작년에 나도 어머니와 비슷한 갈등을 겪었다. 취업준비 기간이 길어지니까 어머니가 ‘이 정도 밀어줬으면 이제 그만 사회에 나가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도 하고 싶은 일이 있지 않나. 조금 더 높고 탐나는 자리가 있다. ‘기성세대의 영향 때문에 취업 문이 굉장히 좁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니까 어머니가 ‘기성세대 때문에 너희가 먹고사는 거 아니냐. 왜 기성세대를 욕하냐’며 화를 내셨다. 나는 기성세대에 미움을 가지고 있고, 그 분들은 아래 세대가 경쟁으로 힘들어하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마루타 세대=“엄마 아빠한테 ‘나는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취업하기가 힘들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그런 얘기를 하면 ‘네가 열심히 하면 취업할 수 있는 거 아냐?’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그런데 요즘 취업이라는 게 열심히 한다고 되지가 않는다. 부모님 세대는 제 세대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더라.”
이해찬 세대=“우리 학번(02학번)에 대해 단군 이래 최저 학력이라는 얘기를 하는데 납득이 안 갔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그렇게 얘기하는 걸까, 같은 수능을 친 것도 아닌데 어떻게 비교가 되나…. 다만 아래 연배에 대해서는 오히려 미안함이 많다. 나는 취업 운도 좋았던 것 같다.”
-우리 사회의 어떤 점을 바꾸고 싶나. 한 가지만 꼽는다면?
마루타 세대=“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우등생 취급하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공부 잘하는 사람은 좋은 대학에 가고, 대학 잘 간 사람은 좋은 곳에 취업할 수 있다는 흐름이 공고하다. 나는 학창시절에 다른 사람과 다르지 말라고 배웠다. 다르게 행동하면 틀렸다고 지적 받았다. 하지만 대학 들어와보니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을 강조하라고 그러더라. 취업하려고 하니 ‘네가 다른 사람과 다른 게 뭔가’ 묻더라. 초중고 내내 다른 사람과 똑같이 하라고 배우다가 갑자기 개성과 창의를 요구하니 스트레스를 받았다. 어떤 사람은 무용을, 어떤 사람은 음악을 잘할 수 있는데, 이를 모두 능력으로 인정해 주고 키워야 한다. 개성이 존중받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무한경쟁 세대=“책에서 봤는데 한국에는 세 계층이 공존한다. 전통사회를 살아온 노년층, 산업화시대를 겪은 중년층, 탈산업화 시대의 청장년층. 세 계층의 지향점이 다 다른데, 이 중 뭐가 옳고 그르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각자 가치관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자기의 행복을 추구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사회가 왔으면 좋겠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정상’을 강요하며 이 나이면 취업하고, 이 나이 되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 세대에는 다른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선택하고 싶다.”
88만원 세대=“남들과 비교하고 차별하는 문화가 문제다. 편의점에서 한 손님이 직원에게 ‘부모님 뭐 하시냐’고 묻는 걸 봤다. ‘현대자동차 다닌다’고 하니 ‘직영이냐’고 되묻더라. 초등학교 애들도 학교에서 직영 부모를 가진 아이들과 하청업체 부모를 둔 아이들이 따로 논다. 또 임원 자식과 사원 자식도 밥을 따로 먹는다고 한다. 부모 세대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니 애들이 보고 배우는 거다. 작은 회사라도 서로 경쟁을 붙이고, 직원들은 월급을 조금 더 받으려고, 조금 더 높이 올라가려고 경쟁자를 깎아내린다. 경쟁과 갈등이 심할수록 차별과 이기적인 행동은 깊어진다. 모든 세대에서 경쟁이 체화돼 있는 느낌이다.”
이해찬 세대=“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를 반드시 줄여야 한다. 취업이 힘든 이유도 여기 있다. 대기업에 갈 사람은 10% 안팎인데, 다들 여기에 들어가려고 매달린다.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갈등과 경쟁이 만연한 사회에 숨통이 트인다.”
IMF 세대=“선거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원하는 것이 실현되려면 결국 정치로 갈 수밖에 없는데, 지금의 구조는 선거구에서 1명만 당선되니까 작은 집단, 소수자, 특정 계층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어렵다. 내가 잘 몰랐던 동안 국회의원들이 기득권과 부자들을 위해 활동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선거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비정규직 문제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자기 세대에 대해 희망을 담아서 새로운 이름을 붙인다면?
이해찬 세대=“이해찬 전 장관의 정책방향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결과적으로는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 하더라도 방향은 옳다. 02학번 하면 떠오르는 긍정적인 이름, ‘월드컵 학번’이나 ‘산소(O2)학번’으로 불리고 싶다. 이 전 장관은 무슨 죄냐.”
88만원 세대=“880만원 세대로 하고 싶다. 경제적인 이유로 이름이 붙은 첫 세대인데, 88만원이라는 딱지는 싫다.”
무한경쟁 세대=“IMF 세대에게 ‘헨젤과 그레텔 세대’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싶다. 숲 속에서 짐승들이 과자를 먹는 바람에 길을 잃었지만, 결국 마녀와 싸워 이기고 집에 돌아간 동화 주인공처럼, IMF 세대는 그 전의 풍요로 돌아가는 길은 잃었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갔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에게는 ‘잃어버린 로커 세대’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요즘은 민원발급기에서도 생활기록부를 볼 수 있어서 중고교 생활기록부를 봤는데 사람이 달라져 있는 게 보이더라. 경쟁 없이 즐기던 중학교 때는 장래희망이 로커였는데, 고등학교로 넘어간 순간 변호사, 외교관으로 변했다. 치열한 경쟁이 다른 꿈을 꾸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직도 나는 하고 싶은 걸 찾고 있다.”
진행ㆍ정리=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오희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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