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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사고 쌍방과실인데…규제는 낚시어선업 집중, 해수부의 ‘희한한 대책’

입력
2017.12.13 04:4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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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산업-안전 담당 서로 이견

좁은 수로 밀집운항 해법 등 뒷전

인천 낚싯배 전복 사고의 원인이 대형 급유선과 낚싯배의 쌍방 과실로 드러났는데도 정부가 낚시어선업에 대한 규제만 강화하고 나서 ‘엉뚱한 대책’이란 지적이 일고 있다. 해상 충돌사고는 점점 늘고 있는데 어업정책을 맡은 수산당국과 물류정책을 담당하는 해운당국, 구조ㆍ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해양경찰(해경) 사이에서 엇박자도 노출되고 있다.

12일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번 사고 대책으로 ▦어업(허가제)과 낚시어선업(신고제) 분리 ▦승선 정원 감축 및 선원(안전요원) 수 확대 ▦구명뗏목, 자동식별장치(AIS) 등 장착 의무화 ▦영업시간ㆍ영업구역 및 낚시통제구역 지침 마련 등의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사실상 낚시어선업 전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게 골자다.

이에 대해 낚시어선업과 낚시업계에선 발끈하고 있다. 좁은 수로에서 사고가 난 만큼 양쪽에 모두 책임이 있지만 낚싯배를 보고도 속도를 줄이거나 우회하지 않은 급유선의 과실이 더 크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낚시어선을 모는 한 선장은 “육상 교통으로 치면 대형화물차가 소형 승용차를 들이 받았는데 화물차가 아닌 승용차 규제 대책을 내 놓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정부가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긴 했지만 서로 다른 업종의 이익을 대변할 수 밖에 없는 당국 내 입장 차도 여전하다. 어가 소득 증대와 수상레저 활성화를 위해 낚시어선업을 진흥해 온 ‘수산파’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오히려 “낚시어선 보호를 위해 사고 위험이 큰 좁은 수로에서는 대형선박의 출입을 막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해수부 내 선박 안전 담당 부서 의견은 결을 달리한다. “운항금지구역을 제외하고 통항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이 전부다. 지난 7일 해수부가 국회에 보고한 대책에서도 ▦항로설정 ▦최대 속력 제한 ▦항로표지 설치 등 사고 위험이 높은 좁은 수로의 밀집 문제를 해결하는 대책은 “현장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는 이유에 후순위로 밀렸다.

게다가 해상 교통 경찰 역할을 하고 있는 해경은 “인명 사고가 날 때마다 안전 강화 대책이 나오지만 예산, 인력 충원이 뒷전인 게 문제”라며 전혀 다른 차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앞으로 낚시 활성화와 해상 물류 증가 등에 따라 해상 교통량은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경우 해상 안전 관련 정부 내 혼선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 수준이 높아질수록 유람선, 요트, 개인 보트 등 수상 교통에 대한 수요는 확대되기 마련이다. 이 에 따라 부처 안에 혼재된 산업 진흥 담당과 안전 대책 담당 분야의 ‘교통 정리’부터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정영석 한국해양대 교수는 “여객선, 낚시어선 등 수상 교통과 산업을 진흥해야 하는 부처 입장에선 근본적으로 관련 규제를 세게 할 수 없다”며 “규제ㆍ안전 관련 권한을 해경으로 일원화해 부처 내에서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지난 5일 오후 인천 옹진군 영흥면 진두선착장에 낚싯배들이 빼곡하게 정박해 있다. 인천=뉴스1
지난 5일 오후 인천 옹진군 영흥면 진두선착장에 낚싯배들이 빼곡하게 정박해 있다. 인천=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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