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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1년 만에 누더기법 되나

입력
2017.12.12 04:4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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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입장 보이던 권익위

“늦어도 설 대목 전에는 개정”

李총리 발언에 입장 바꾼 듯

“식사비 상한액 5만원으로”

요식업계 등 상향 요구 불보듯

국민권익위가 ‘부정청탁과 금품 등 수수 방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안을 다시 표결한 11일 오후 서울 시내 대형마트의 과일코너 모습. 류효진기자
국민권익위가 ‘부정청탁과 금품 등 수수 방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안을 다시 표결한 11일 오후 서울 시내 대형마트의 과일코너 모습. 류효진기자

11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ㆍ일명 김영란법)의 선물 상한액이 농축수산물에 한해 상향 조정(5만원→10만원)되면서 ‘부패 척결’이라는 법 취지가 시행 1년여 만에 퇴색될 위기에 처했다. 농축업계가 10만원 상향에도 ‘선물’시장 침체를 벗어나기 어렵다며 만족하지 못하는 데다 형평성을 들어 다른 업계 요구도 봇물처럼 터져 나올 가능성이 커 정부가 ‘벌집’을 건드린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 번 손대기 시작한 김영란법이 누더기가 되는 건 시간 문제’라는 우려 속에 주무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가 농ㆍ축산ㆍ어민 표를 의식한 정치권 압력에 명분도 없이 굴복했다는 비판도 있다.

당장 우려되는 것은 요식업계의 식사비 상한액(3만원) 상향 요구다. 요식업계는 지난해 9월 법 시행 이후부터 식사비 상한액을 최소 5만원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해왔다. 2003년 기준으로 상한액이 책정돼 물가상승률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은 매출 영향조사를 실시, 외식업자의 73.8%가 법 시행으로 매출이 감소했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농축산업계는 상한액을 올린 데 대해 기대를 하면서도 이미 시장이 위축될 대로 위축된 상황이라 실효성이 있겠느냐며 시큰둥한 반응이 많았다. 강원 횡성군에서 한우를 사육하는 이상노씨는 “10만원 단가로는 겨우 불고기용 세트나 공급할 수준”이라며 “등심, 안심 등 고급육 수요는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익위가 정치권 압력에 굴복, 2011년 6월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 처음 제안하고 시행까지 5년이 걸린 청탁금지법을 명분도 없이 무력화시켰다는 비판도 있다. 청탁금지법 핵심인 ‘3ㆍ5ㆍ10 규정’(3만원 이하 식사ㆍ5만원 이하 선물ㆍ10만원 이하 경조사비 허용)은 시행령에 명시돼 개정 권한은 국회가 아닌 권익위에 있다. 법 개정 압력은 지난 정부에서도 있었다. 올 1월 설 명절을 앞두고 정부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지시 하에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개정작업에 들어갔으나 권익위 반발에 부딪혀 중단됐다. 박은정 권익위원장 역시 7월 기자간담회 당시만 해도 “국민 다수 지지를 받는 법인 만큼 개정에 신중해야 하고 절차적으로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이후 대통령 업무보고와 해양수산부,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 부처의 압박, “설 대목에는 농축수산인들이 실감할 수 있도록 (개정)할 예정”이라는 이낙연 국무총리 발언에 권익위 입장도 바뀐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총리를 비롯, 김영춘 해수부 장관과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 모두 농어민 표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이다.

이와 달리 상당수 국민은 3ㆍ5ㆍ10 규정에 찬성한다. 한국행정연구원이 9월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선물 상한액에 대해 일반 국민 61.4%, 공무원 67%, 공직 유관단체 70.7%가 “적정하다”고 답했다. 이날 개정안이 의결된 전원위원회에서도 “대다수 국민들이 개정을 원하는지 의문”이라며 주로 외부 비상임위원들이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수입 농축수산물도 상한액 조정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에 국내 농축수산업계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는 지적도 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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