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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지루? 일단 한번 읽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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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안대회·이종묵 교수
8년 동안 고전 600여편 뽑아
번역 해설한 ‘한국산문선’ 출간
“제자가 이혼하겠다니까 퇴계선생이 편지를 보내요. 고루한 성리학자 같지만 그 내용이 ‘나도 살아 보니 다 남자 잘못이더라, 그러니 좀 더 노력하라’는 거예요. 이 내용이 퇴계 문집에서 빠졌는데, 나중에 제자 부인의 요청으로 들어갑니다. 그 편지 덕에 잘 살게 돼서 고마웠나 봐요.”(이종묵 교수)
“허균이 문장에 대해 쓴 글 ‘문설(文說)’은 기가 막혀요. 어떤 글이 좋은 글이고 그런 글을 어떻게 하면 쓸 수 있느냐를 설명한 내용인데 글짓기 기교를 넘어선 통찰력이 엿보입니다. 지금도 논술강사들에게 이 얘길 풀어서 설명해 주면 다들 무릎을 탁 칩니다.”(정민 교수)
“정범조의 글은 어떻고요. 청나라와 일본 양쪽의 침략 가능성을 두고 여러 얘기들을 하는데, 잘 읽어 보면 그게 지금 4강 질서 속에서 우리 외교는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고민과 겹칩니다. 서구 학자 말고 우리 학자의 이런 시선도 함께 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안대회 교수)
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 9권으로 된 ‘한국산문선’을 앞에 둔 한국 고전학계의 스타학자 정민(한양대)·안대회(성균관대)·이종묵(서울대) 교수 3인은 고전을 한번쯤 읽어 보고 평가하라는 데 초점을 맞췄다. 고전이라고만 하면 젊은이들이 무조건 멀리하며 몸서리치는 현실 때문이다.
“강의시간에 연암 박지원이 죽은 누님을 위해 쓴 묘지명을 읽어 주면 요즘 학생들도 막 울어요. 그런데 정작 그게 고전이라 그러면 가까이 할 생각을 안 해요.” “성호 이익이 죽은 노비를 위해 쓴 제문을 읽어 보세요.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에 대한 얘기가 짠합니다.” “첫사랑 아내가 죽고 10년 뒤에 아내를 그리워하면서 쓴 정인보 글도 참 애잔한 글입니다.”
‘한국산문선’은 우리 좋은 글을 직접 읽히겠다는 결심 아래 8년의 시간을 들여 고전 600여편을 뽑아 번역, 해설해 둔 책이다. 600여편 글 가운데 절반쯤은 거의 첫 번역이고, 나머지 절반 역시 1960~1970년대의 옛 번역밖에 없던 글들이다. 1~3권은 신라부터 16세기까지 자유분방한 산문을, 4~6권은 성리학적 질서가 본격화되는 선조 때부터 영조 중반 때까지의 치밀한 문장과 사유의 힘을 보여 주는 글들을, 7~9권은 영조 후반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파격적이고 다채로운 스타일의 글들을 가려 실었다.
정 교수는 “가려 뽑고 번역하는 데 매달린 지난 8년은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으나 우리나라 최고의 산문을, 시간대 순으로, 완전하게 번역해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 산문선을 통해 젊은이들은 고전에 흥미를 갖고, 지식인들은 우리 전통에서 글감을 찾아 글을 쓰고, 해외 한국학 연구자들은 번역작업 때 정본 삼아 쓴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고도 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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