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미 작전계획엔 ‘북 미사일 사거리 1만2400㎞’ 이미 못박았다

입력
2017.12.01 04:4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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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美는 1만2000km 추산

美 중부까지 타격 가능 판단

한국 측서 “워싱턴ㆍ뉴욕 등 위협

400km 더 늘려야” 주장해 관철

북한이 29일 공개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발사 장면. 연합뉴스
북한이 29일 공개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발사 장면. 연합뉴스

한미 양국군의 작전계획에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사거리가 1만2,400㎞라고 명시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평양에서 미 동부의 워싱턴D.C와 뉴욕까지 타격할 수 있는 거리로, 북한 미사일에 대한 미국의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한국 측이 사거리 확대를 요구해 관철시킨 결과다. 하지만 정작 우리 정부는 화성-15형을 비롯한 북한 장거리미사일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부르길 꺼리고 있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워싱턴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2012년 4월 평양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KN-08 미사일이 처음 등장한 이후 한미 양국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KN-08은 북한에서 화성-13형이라고 부르는 3단 추진 미사일로, 아직 실제 발사실험에 나선 적은 없다. 사거리 1만㎞ 전후로 평가 받는 화성-14, 15 탄도미사일이 2단 추진체로 구성된 것을 감안하면, 이보다 사거리가 더 길 것으로 추정된다.

한미간 논의의 초점은 KN-08의 사거리를 작계에 어떻게 반영할지에 맞춰졌다. 북한 미사일이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지, 미 본토까지 닿는다면 서부, 중부, 동부의 어느 지역까지 미사일의 사정권에 포함되는지에 따라 미국이 맞닥뜨릴 위협의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적의 위협을 정확히 평가한 뒤에야 한미 양국의 전력을 효과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작계가 가능하다. 작계에는 한미 군 당국이 북한의 도발 징후 포착 시 가장 먼저 공략할 주요 군사시설 750개 가량을 우선순위를 정해 표적화해 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논의 초기 미 당국은 KN-08의 사거리를 1만2,000㎞로 추산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에서 미사일을 쏘면 미 본토의 중부지역까지는 도달하지만, 인구 밀집지역이자 정치ㆍ경제의 중심지인 동부의 워싱턴D.C와 뉴욕은 미사일 위협에서 벗어나는 거리다. 그러자 우리 측이 수도 워싱턴과 뉴욕이 사정거리에 포함될 수 있도록 “400㎞를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사거리 1만㎞의 미사일을 쏠 경우, 미국 인구의 38%인 1억2,000만 명이 미사일 위협에 노출되지만 1만2,400㎞의 경우에는 사실상 미국 전역이 사정권에 들어간다. 외교 소식통은 “유사시 미국이 총력으로 우리를 지원하도록 북한 미사일의 위협 수위를 가능한 높이는 게 중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한국 측 주장을 수용하면서 한미 작계에는 북한 장거리미사일 사거리가 1만2,400㎞로 반영됐다. 400㎞까지 구체적으로 적시한 모양새가 다소 특이하지만, 우리 측의 절박한 사정이 반영된 셈이다. 이후 한미는 2015년 작계 5015를 새로 만들었고, 북한이 올해 들어 화성-12, 14 탄도미사일 발사에 연달아 성공하면서 미 본토가 실제 미사일 위협에 직면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국방부가 북한 미사일에 대해 ICBM이란 표현을 부정하는 현실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외교 소식통은 “국방 당국이 한반도 상황 악화에 조심하는 청와대를 너무 의식하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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