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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범죄는 없다] 무덤서 나온 시어머니 시신, 며느리의 연쇄살인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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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사망 보험금만 5억대 타내
2년 전엔 前남편 죽고 4억4000만원
前남편 진료 의사 “농약 중독 의심”
경찰, 물증 위해 “무덤 파봅시다”
보험사 “딸 입원비 청구” 제보에 덜미
2013년 10월. 50대 여성이 경기 의정부시에 있는 한 생명보험사 사무실 문을 열었다. 그 해 1월 숨진 홍유정(당시 79·가명)씨 딸이자, 8월 사망한 이덕진(당시 43·가명)씨 누나인 이주원(가명)씨였다. 그는 직원에게 남동생 사망보험금을 지급했는지 물었다. “혹시 올케가 보험금을 받아갔나요? 얼마나요?”
직원은 얼마 전 보험금을 신청했던 여성을 금방 떠올렸다. 워낙 거액이었던 터라 기억이 또렷했다. “며칠 전에 아들 승준(5·가명)군 명의로 지급됐는데요. 부인 노민희(46·가명)씨가 신청을 했네요.” 직원 말대로였다. 노씨는 남편이 죽자마자 이 곳 포함, 보험사 세 곳에 보험금 수령을 신청했다. 9개 보험에서 5억2,500만원이 지급됐다. 대상자는 두 사람 사이서 태어난 당시 두살배기 아들 승준군이었지만, 친권자로서 노씨는 입금된 돈 중 4억 원을 인출해갔다.
주원씨도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남동생이 불과 7개월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올케 노씨는 ‘전혀 슬픈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골드바(Gold bar)를 사 모으고 명품을 사는데 돈을 흥청망청 썼다. 1년 반 전 남동생이랑 재혼한 직후부터 생명보험을 여러 개 가입했다는 것도 의심스러웠다. ‘혹시나, 보험금을 노리고? 올케가?’
께름칙하긴 보험사 직원도 마찬가지였다. 주원씨가 떠나자마자 노씨가 가입한 보험상품과 보험금 지급 내역을 꼼꼼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어? 사망보험금을 받은 게, 이게 도대체 몇 개야?” 눈이 의심스러웠다. 2년 전인 2011년 5월 9일, 노씨의 첫 번째 남편 김현중(당시 45·가명)씨가 사망했고, 김씨 명의로 가입됐던 생명보험 9개에서 4억5,000만원에 달하는 보험금이 지급된 사실이 기록돼 있었다. 돈은 모두 김씨 사이에서 난 장남 세일(당시 17·가명)군 명의로 지급됐고, 노씨가 친권자로서 찾아갔다. 흐름이 지금과 판박이였다. “겨우 2년 만에 남편 둘이 죽었고, 10억원 가까운 보험을 받아 챙긴 거잖아요. 그 돈으로 평소보다 훨씬 호화 생활을 해 왔다는 거고요. 예사롭게 볼 일은 아니었어요. 정말 보험금을 노린 범죄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죠.”
직원은 며칠 후 당시 경기경찰청 제2청(현 경기북부경찰청) 광역수사대 소속 이종훈(43·현 남양주경찰서 강력2팀)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원씨로부터 들은 얘기, 본인이 검색해 알게 된 사실을 차근차근 얘기해갔다. “아무래도 이 사람(노씨) 행적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 형사는 과거 보험사기사건으로 인연이 닿아 알게 된, 이미 말길이 트인 사이였다.
이 형사 등골이 섬뜩했다. ‘보험사 직원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보험금을 노린 살인이라면 범인이 이대로 멈출 리가 없다. 피해자가 더 생길 수도 있다.’ 곧장 광역수사대장 심재훈 경정에게 달려갔다. 이 형사는 “수사가 필요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심 경정도 ‘물증 0%’ 사건에 발을 담근다는 게 도박이었지만, ‘심증 100%’인 이 형사 의지를 꺾기는 어려웠다. “이 형사, 자신 있지?“ “믿어주세요. 끝까지 파 보겠습니다.” 조용하고 은밀한 내사가 시작됐다.
사건 실타래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노씨 전 남편 등 세 사람 사망 원인부터 파악하기로 했다. 기록상으로만 보자면 첫 남편 현중씨 사망사건은 별다른 타살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아 변사(자살 의심)로 종결됐다. 두 번째 남편 덕진씨 모자(母子)는 병사 처리되면서 경찰에 신고조차 안 돼 있었다.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눈에 띄는 건 현중씨 사건이었다. 당시 방에서 500㎖ 병에 담긴 음료가 발견됐는데, 거기에 제초제 성분 ‘파라콰트(Paraquat)’가 섞여 있었다. 새벽에 음료를 마시고 복통을 호소하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사망. 가족들은 “사업부진 스트레스로 자살한 것 같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가족들 말에 경찰 수사는 더 진전되지 않았다. 실제 김씨는 당시 사업자금으로 끌어다 쓴 7,000만원에 달하는 사채 빚을 갚지 못하면서 힘들어하고 있었다.
이 형사는 주원씨를 찾았다. 노씨 첫 남편 사망 사실과 사인(死因)을 전했다. ‘음독의심’ 얘기에 주원씨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러곤 모친 홍씨가 사망하기 전 했다는 말을 조심스레 털어놨다. 평소 자양강장제를 즐겨 마시던 모친이, 사망 반년 전쯤인 2012년 여름 냉장고에 있던 자양강장제를 마셨다가 냄새가 역겨워 화장실 변기에 내뱉은 적이 있었다는 얘기였다. “구토를 했는데 색깔이 푸르스름했다고 하셨어요. 별일 아니라 생각을 하긴 했는데, 그날 이후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어요.”
이 형사는 곧장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받아 덕진씨와 홍씨가 입원했던 의정부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진료기록을 확보했다. 직접적인 사인은 두 사람 다 ‘폐쇄세기관지기질화폐렴(BOOP·bronchiolitis obliterans organizing pneumonia)’. 하지만 이들을 진료했던 의사가 전해준 말이 의미심장했다. “농약중독을 의심한 적이 있어요. ‘BOOP’의 주요 원인이거든요. 그런데 부인(노씨)은 ‘농사 한 번 지어본 적 없는 집’이라면서 ‘농약중독은 절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하더군요.” 심증이 굳어져갔다. 노씨가 저지른 ‘농약살인’이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노씨는 태평이었다. 경찰 수사망이 좁혀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평소 스노보드를 좋아하던 그는 덕진씨가 세상을 뜬 직후인 2013년 말부터 스키장 연간회원권을 사들이면서 매일같이 스노보드를 즐겼다. 봄이 오면 2,000만원짜리 자전거를 구입해 동호회원들과 전국을 누볐다. 옷과 가방 등 명품 구입에도 돈을 아끼지 않았다. 현금이 부족하다 싶으면 두 남편 보험금으로 사놨던 ‘골드바’를 팔았다. 노씨와 금을 거래했던 포천 시내 한 보석상은 떨어진 시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금을 현금으로 바꿔갔던 그를 ‘쿨(Cool)한 성격에 돈 많은 사모님’으로 기억했다.
2014년 8월 이 형사는 충남 천안시로 향했다. 덕진씨 모자 진료기록과 사망진단서가 손에 들려 있었다. 독극물 중독치료 분야에 세계적인 권위자로 알려진 홍세용(69) 순천향대 의과대학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기록을 본 홍교수 답은 명료했다. “제초제 파라콰트 성분 때문에 사망했을 가능성을 90% 이상이라고 봅니다.” 식물에 닿으면 곧바로 말라 죽을 정도로 강력한 독성을 지녀 2012년부터는 아예 시중 판매가 중단된 파라콰트. 아니나다를까 첫 남편 현중씨가 마신 음료에서 발견된 성분도 파라콰트였다.
“어머니 무덤을 좀 파 봤으면 합니다.” 주원씨를 만난 이 형사가 대뜸 제안했다. “파라콰트 성분이 보통 시신 내에 오래 남아 있다고 합니다. 부검을 하면 어머니가 독극물로 사망했다는 걸 확실하게 입증할 수 있어요.” 마침 숨진 세 명 가운데 홍씨를 제외한 둘은 이미 화장으로 부검이 불가능했다. 다행히 가족이 동의했다. 주원씨가 처음 보험사를 찾은 뒤 1년 가까이 끈질기게 수사를 해 온 이 형사를 향한 믿음이었다. 분묘발굴 전문가까지 동원해 무덤을 파낸 뒤,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 의뢰했다. 약 한달 반 만에 나온 부검 결과는 예상대로 ‘파라콰트 검출’. 제초제에 의한 독살이었다.
‘누가 제초제를 먹였는지’ 밝혀낼 차례였다. 이듬해(2015년) 1월 말 보험사 직원에게서 결정적 제보가 들어왔다. “형사님, 노씨가 이번엔 딸 입원비를 신청했어요.” 노씨와 첫번째 남편 현중씨 사이에서 태어난 민지(22·가명)양이 약 6개월 전부터 세 차례나 병원에 입원한 것이다. “근데 병명이 뭐랍니까?” “BOOP요. 폐질환 일종입니다.” 추가 감정을 의뢰한 결과 민지양 소변에서는 어김없이 파라콰트가 검출됐다.
2월 28일 오전 7시, 단잠에서 깬 노씨가 자택에서 살인과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됐다. 냉장고 뒤엔 이웃 농가에서 얻었다는 파라콰트가 든 농약이, 장독대 뒤에선 그 농약이 섞인 밀가루 반죽이 발견됐다.
노씨는 범행을 순순히 털어놨다. 첫 남편 현중씨를 살해할 때 사용한 음료수를 전 시어머니인 채숙희(95·가명)씨에게도 먹이려 했던 사실을 추가로 실토했다. 현중씨가 사업을 하다 진 빚 때문에 부동산이 압류될 위기에 처하자 수억 원 대 부동산 명의를 자신에게 옮기면서 ‘기획 이혼’을 했고, 이후 부동산을 처분해 얻은 돈 일정액을 현중씨에게 넘겨주기로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돈을 달라고 보채는 현중씨 모자가 보기 싫어 살해하기로 했다”고 진술했다. 채씨는 다행히 음료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마시지 않아 화를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첫번째 남편과 본인 사이에서 낳은 민지양, 두번째 남편인 덕진씨를 살해하려 한 방법은 엽기적이기까지 했다. 살해동기는 순전히 돈, 보험금 때문이었다. “농약을 밀가루에 섞은 뒤, 반죽을 말려 다시 빻았어요. 이렇게 ‘농약가루’ 만들어서 김치찌개같이 짠 음식을 만들 때 조미료처럼 집어넣었어요. 남편이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갔습니다.” 민지양이 목숨을 건진 건 천운이었다.
재판에 넘겨진 노씨는 2016년 6월 항소심에서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검찰은 노씨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이 형사는 “다행히 살아남았던 딸(민지양)이 ‘엄마를 용서한다’고 탄원서를 냈다고 하더라고요.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엄마인데 말이죠”라고 말했다. 노씨는 이후 상고를 포기하고 무기징역형을 받아들였다.
남양주=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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