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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범죄는 없다] “트럭 짐칸에 저게 뭐죠?” CCTV에 고기 자르는 기계가 포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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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던 60대 여성 실종
저녁예배 마치고 버스 내려
집 쪽으로 향한 뒤 행방 묘연
실종자 집 옆 별채 조사 앞두고
“불이야” 세입자 별채 통째 타버려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2015년 2월 4일 저녁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박모(당시 66)씨가 자취를 감췄다. 집 안 식탁 위에는 호떡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밥을 하려고 씻어 둔 쌀도 그대로였다. 박씨는 5개월 전 남편을 떠나 보내고 혼자 살고 있었다.
다음 날 오전 교회 사람이 박씨를 찾았다. 함께 병원에 가기로 약속이 돼 있었다. 박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40년 넘게 한 동네에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매일 오전 5시가 되면 그는 교회에 왔다. “말도 없이 어디 갈 사람이 아닌데.” 동네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박씨 아들이 경찰을 찾았다.
닷새가 흘렀다. 9일 오후, 박씨 집 근처 논밭을 수색하던 경찰 눈에 까만 연기가 보였다. “불입니다! 불!” 시뻘건 불이 박씨 집 별채를 집어 삼키고 있었다. 별채에는 김모(당시 59)씨가 15년째 세 들어 살고 있었다. 그날은 마침 경찰이 별채를 살펴보기로 한 날이었다. 전날 “집을 감식하겠다”고 요청했지만, 김씨는 “바쁘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날을 늦췄다.
“감이 왔습니다.” 경찰이 말했다. “원래 김씨를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었는데 억지로 감식을 미루는 거며, 갑자기 집에 불이 난 거며. 의심스러울 수밖에요.” 한 시간 뒤 화재 현장에 도착한 김씨의 태도도 예사롭지 않았다. 15년을 살던 집이었는데, 그 집이 송두리째 사라졌는데,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젖은 옷을 말리려고 히터를 켜 놓고 갔는데, 그게 원인이었나 보죠.” 경찰이 질문할 때면 김씨는 차분하게 답했다. 다음 날 경기 화성동부경찰서는 박씨 사건을 여성청소년수사팀에서 강력팀으로 넘겼다. 단순 실종이 아닌 살인 사건으로 수사를 하겠다는 뜻이었다. 경찰 레이더망에 포착된 용의자는 김씨, 한 명이었다.
별채 50대 세입자 수상한 행적
실종 다음날 CCTV 살펴보니
트럭에 ‘상자’ 싣고 인근 공장행
공장에선 ‘기계’ 들고갔다 빈손
하천 인근 트럭 상자마저 사라져
박씨 행적을 밝혀내는 게 급선무였다. 6개 강력팀 전원이 투입됐다. 동네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이 잡듯 돌려 보고 또 돌려 봤다. 박씨 모습은 4일 오후 8시20분쯤이 마지막이었다. 교회 버스에서 내린 그는 곧장 집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마을을 지나는 버스를 일일이 찾아 블랙박스 영상을 살펴봤지만 박씨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콜택시나 렌터카를 이용한 기록도 없었다. 집에서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김씨 행적도 쫓아 나갔다. 집으로 향해 나 있는 골목 입구에 설치된 CCTV에서 박씨보다 한 시간 앞서 자신의 흰색 트럭을 몰고 집으로 가는 김씨 모습이 포착됐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9시쯤에야 같은 CCTV 화면에 등장했다. “저게 뭘까?” 화면을 분석하던 경찰이 중얼거렸다. 차 뒷좌석에 보이는, 상자로 추정되는 물건. 김씨 트럭은 골목을 나와 30분 정도 거리에 떨어진 한 공장으로 향했다. 김씨 지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잠시만요. 저 트럭 짐칸에 실린 거 보이시죠?” 수사팀에서 가장 연차가 낮은 형사가 CCTV 화면을 가리켰다. 김씨가 방문한 공장에서 확보해 온 CCTV였다. 오전 9시40분쯤, 화면 속 김씨는 공장에 차를 세우고 짐칸에서 기계를 내린 뒤 안으로 들어갔다가 빈 손으로 나왔다. “육절기(골절기) 같은데. 왜 정육점에서 뼈째 고기 자를 때 사용하는 고기절단기 있잖아.” 수사팀 손동신(36) 경사가 대꾸했다. “이거, 왠지 범행 도구 같은데….” 손 경사 주변으로 형사들이 몰려들었다. 누구 하나 말은 안 했지만, 모두들 등줄기로 흐르는 땀을 느꼈다. 손 경사의 감과 말이 맞다면? 토막살인 사건이었다!
CCTV 속 김씨 모습은 분명 수상했다. 공장에 온 김씨는 낮 12시50분쯤 공장에서 가까운 하천 둑길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오후 3시40분쯤 그곳에서 약 5㎞ 떨어진 둑길에서 다시 CCTV에 등장했다. 평소라면 6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를 2시간50분쯤 걸려 이동한 것이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김경연(46) 경위는 “무엇보다 둑길로 들어갈 땐 보이던 트럭 뒷좌석 상자가 둑길에서 나온 이후엔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하천에서 상자를 처리하고 나왔다는 건데, 그 안에 숨진 박씨 시신이 들어 있었을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퍼즐 조각이 조금씩 맞춰져 갔다.
방화 드러난 용의자 일단 구속
트럭 뒷좌석ㆍ공장에서 혈흔 발견
공장서 회수한 기계 찾아야 했다
“그 고철 어디에” 고물상 수색하다
“사장님 잠깐…” 해체 직전에 발견
화재 사건 분석 결과도 나왔다. 현장 감식을 여섯 번 했고, 모의 실험까지 했다. 어느 정도 예상대로였다. 김씨가 집에 일부러 인화물질을 뿌린 뒤 불을 질렀다는 게 감식팀이 내린 결론이다. CCTV에서도 9일 오후 2시45분쯤 김씨가 집에서 나오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불이 난 것은 그보다 2분이 지난 시점. 경찰은 김씨를 방화 혐의로 검거한 뒤 박씨에 대한 살인 등 혐의를 밝혀내기로 했다. 경찰은 12일 김씨를 체포하고, 곧바로 구속했다.
김씨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모른다’는 말만 하더라고요. 박씨를 죽이지도, 불을 지르지도 않았다는 거죠. 우리(수사팀)끼리 ‘고래 힘줄’이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어쩜 그리 고집이 센지, 그런 사람 처음 봤어요.” 김 경위는 당시를 떠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시신도, 범행 도구도 없는 상태에서 김씨가 쉽게 자백할 이유가 없다는 걸 경찰도 모를 리는 없었다.
김씨가 부인하던 것과 달리 피해자 박씨 흔적은 김씨 행적 곳곳에서 발견됐다. 의문스러운 상자를 싣고 다녔던 트럭 뒷좌석에 루미놀 시약을 뿌리자 두 군데 점이 파랗게 빛났다. 혈흔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긴급감정 결과 박씨 DNA였다. 김씨가 고기절단기를 내려 놨던 공장에서도 혈흔이 나왔다. 기계가 놓여 있던 자리와 절단기 성능을 확인해 보려고 잘라 봤다던 나무토막에서도 박씨 DNA가 검출됐다. “사실상 범인이 누군지가 다 드러났다고 봐야겠죠.”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절단기가 보이지 않았다. “(검거되기) 며칠 전 밤에 공장으로 오더니 기계를 다시 찾아 가더라고요.” 공장 운영자가 진술했다. 절단기를 찾아야 했다.
다시 CCTV 힘을 빌려 보기로 했다. 10일 밤 공장에서 절단기를 회수한 김씨는 다음날 오전 1시30분쯤 트럭을 몰고 서울로 갔다. 이후 6시간이 지나 화성으로 돌아왔는데, 갈 때 실려 있던 절단기가 올 때는 없었다. “청계IC를 이용한 게 확인됐습니다. 그곳과 화성 사이에 있는 의왕시나 수원시에 버렸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김 경위를 비롯한 형사들은 김씨 동선을 추적, 직접 국도를 걸어 내려오면서 CCTV를 찾아 다녔다.
“여기 차 한 대가 비상등을 켜 놓고 잠시 멈춰서 있네요.” 한 형사가 의왕시 한 농원에 설치돼 있던 CCTV 화면 왼쪽 구석을 가리켰다. 어두워 차 번호판은 보이지 않았지만 의심이 가는 건 무조건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는 절단기에 끼워져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길이 165㎝짜리 띠톱이 발견됐다. 여기서도 박씨 DNA가 검출됐다. 김 경위는 “2주가 지났는데도 피와 DNA가 또렷하게 검출됐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수사는 진척이 있었지만, 마침표를 찍기에는 부족했다. 김씨가 박씨를 살해했다는 걸 입증하려면 박씨 시신이 있어야 했다. 시신이 없으면 띠톱에 박씨가 사망한 건지를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김씨가 시신을 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하천으로 수천 명이 투입됐지만 성과는 쉬이 나오지 않았다. 범행 도구였던 절단기 본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번엔 ‘형사의 촉’이 역할을 했다. 아무리 CCTV를 돌려 봐도 절단기 본체를 버리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어디에 버리는 게 가장 자연스러울까’ ‘띠톱을 버렸으니 절단기는 이미 쓸모 없는 고철 덩어리겠지’ ‘그럼 그 고물을 어디에 버렸을까’. 답은 뻔했다.
수사팀이 수원 시내 고물상을 뒤지기 시작했다. 수원은 절단기를 버렸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었다. 몇 군데를 찾았을까, 한 고물상에서 눈에 익숙한 흰 기계를 막 해체하고 있었다. “사장님, 잠깐 멈추세요! 그거 그대로 두세요!” 소리를 지르며 뛰어간 형사들에게 고물상 주인은 “누가 문 앞에 두고 갔길래 열흘 정도 기다렸다가 이제 처분하려던 참”이라고 했다. “고물상에서 13일을 기다린 것도, 해체 도중에 경찰이 발견한 것도 기적이라고밖에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김 경위는 이 순간을 ‘하이라이트’라고 표현했다.
절단기 감식 결과는 예상보다 더 끔찍했다. 혈흔은 물론 피해자 DNA와 일치하는 근육, 뼈, 피부, 신경조직까지 나왔다. 김씨가 박씨를 살해했다. 그 외에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었다. 경찰은 3개월간 보충수사를 한 뒤 6월 8일, 방화 혐의로 이미 재판을 받고 있던 김씨에게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를 추가로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피해자 남편 사망 후 노골적 구애
계속 거절하자 범행 결심 추정
살인ㆍ시체유기 무기징역 확정
김씨는 경찰에서도, 검찰에서도 입을 닫았다. 특히 왜 박씨를 죽였는지에 대해 말이 없었다. 경찰과 검찰은 조사를 통해 드러난 정황으로 대강을 추정해야 했다. 평소 박씨에게 애정을 표현하던 김씨는 박씨 남편이 사망하자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한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박씨가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면서 계속 거절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월 말 2억6,000만원에 달하는 토지보상금을 받은 박씨는 자신에게 집착하는 김씨에게 집을 비워 줄 것을 요청했다. 이 지점에서 박씨를 살해할 마음을 먹게 됐다는 게 수사기관 추리다. 실제 2014년 10월 한 달간 29회에 달하던 두 사람 간 통화는 점점 줄어들어 2015년 1월 17일 이후엔 단 한 건도 없었다.
조사 결과 김씨는 범행 직전인 1월 말 본인 컴퓨터에 인체 해부도를 내려 받는가 하면, 시신을 해부하는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기도 했다. 같은 시기 고기를 가는 기계인 ‘민찌기(고기분쇄기)’와 ‘까마귀 먹이’를 인터넷에서 검색한 흔적도 나왔다. 범행에 사용된 고기절단기를 인터넷 중고거래로 산 건 1월 30일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철저한 계획 범죄였다”고 말했다.
수원지법 형사15부(부장 양철한)는 지난해 2월 피고인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범행 방법이 매우 잔인하고 피해자의 인격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찾아볼 수 없으며, 자신의 범행에 대해 변명으로 일관하며 반성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는 이유였다. 김씨는 1심과 2심 모두 판결에 불복했지만, 지난해 12월 29일 대법원으로부터 무기징역형 확정 판결을 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화성=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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