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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권 ‘환수’라니…” 속 끓이는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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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이 돌연 ‘환수’로 둔갑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 때문이다. 통수권자의 발언에 감히 토를 달 수 없는 국방부는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전작권 조기 환수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같은 날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 공동보도문에는 “전작권 전환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고 명시돼 있다. 대통령은 환수, 주무부처인 국방부는 전환이라고 서로 딴소리를 하는 것이다. 전작권 전환은 문 대통령의 핵심 안보공약일 뿐만 아니라 우리 군이 반드시 완수해야 할 주요 과제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철수야’, 어머니는 ‘갑수야’라고 부르는 상황이니, 듣는 아이나 주변에서 지켜보는 이웃들 모두 어느 이름이 맞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현재 정부의 모든 공식 문서에는 환수가 아닌 전작권 ‘전환’으로 돼 있다.
혹자는 뭐가 그리 대수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두 단어의 의미는 확연히 다르다. 환수(take back)는 되찾는다는 의미여서, 동등한 상대간의 관계 변화를 의미하는 전환(transfer)과 비교하면 우리가 전작권을 오랫동안 미국에 뺏겼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일제가 침탈하거나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를 반환 받는 것과 같은 심정이다. 그래서 노무현정부 때는 2012년까지 반드시 전작권을 돌려받겠다며 환수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했다.
반면 전환은 환수에 비하면 중립적 의미를 담고 있다. 미래지향적인 한미동맹의 취지에도 부합한다. 이후 2012년에서 2015년으로, 다시 2020년대 중반으로 전작권 전환 시기가 미뤄졌고, 그 사이 북한의 위협에 맞선 한미동맹의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부각되면서 지난 10년간 정부의 공식 용어는 ‘전작권 전환’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굳이 ‘환수’라는 표현으로 억눌린 감정을 분풀이할 만한 사안도 아니다. 국방부의 설명에 따르면 전작권은 미군 4성 장군인 한미연합사령관이 행사하지만, 어디까지나 양국의 통수권자인 한미 대통령간 협의를 거쳐 지침을 받도록 돼 있다. 양국 정상간 공동의 이해관계가 우선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연합사령관 멋대로 한반도에서 전쟁을 할 수 있다는 막연한 추론은 억지주장이다. 청와대와 정부가 한반도에서 미국의 독자적인 군사행동이 불가능하다고 재차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더구나 북한의 도발위협이 최고조로 치달으면서 한미간 군사대응의 수위를 조율하는 게 그 어느 때보다 중차대한 시점이다. 가뜩이나 미국은 10여년 전 전작권 전환 논의가 처음 시작될 당시 전작권 ‘이양(transition)’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6ㆍ25전쟁 이래 미 측이 갖고 있던 전작권을 한국군에 넘겨준다는 의미다. 우리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바꿔 생각해보면, 전작권 환수라는 표현 또한 일방적으로 들릴 여지가 있다. 자칫 한미동맹의 균열로 비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뿐만 아니라 취임 후인 지난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 때도 전작권 ‘환수’라고 지칭해왔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참 할 말은 많지만 뭐라고 지적할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반대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나 정부와 군의 관계자가 공식 자리에서 전작권 ‘환수’라고 대놓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부적절한 용어 사용이라고 주변에서 들고 일어났을 것이다. 물론 정치인과 공무원, 군인의 발언이 서로 다를 수는 있다. 그렇다고 우리 안보에 중차대한 전작권을 놓고 이런 식으로 용어 사용에 혼선을 자초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다. 틀렸다면 내키지 않아도 바로 잡아야 한다.
혹여 자주국방과 우리 군의 주도적인 역할을 애써 강조하기 위해 전작권 전환이 아닌 환수라고 의도적으로 사용하는지도 모르겠다. 과거 천안함 ‘폭침’이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정부와 군은 모든 자료와 장병 정신교육교재에 공식적으로 천안함 ‘피격’이라고 적시했는데도, 일부 정치인들이 폭침이라는 용어를 남발하면서 굳어졌다. 알고 보면, 폭침은 2010년 5월 한나라당과 미래희망연대 소속 의원 13명이 국회에 대북결의안을 제출하면서 급조한 말이다.
문제는 천안함 ‘폭침’은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는 표현이고, ‘피격’은 넋 놓고 당한 듯 나약한 이미지로 비친다는 왜곡된 생각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앞다퉈 폭침이라고 사용해왔고, 여기에 일부 정부관료들이 부화뇌동하면서 마치 폭침이 공식 용어로 확산됐다. 중요한 건 북한의 도발을 잊지 않고 우리 군이 철저하고 강력한 응징태세를 갖추는 것인데도 말이다.
공식 용어는 정부가 정한대로 사용하면 된다. 어감에 호소하거나, 의도적으로 변형시켜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라 불필요한 혼란을 부추길 필요가 없다. 전작권 환수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정부의 권위가 바로 서고, 더 많은 국민의 신뢰를 얻지 않을까.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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