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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택배 산더미인데 늦으면 기사 탓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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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인력보충 안 해주고
고객이 지연 불만 땐 벌점 1점…
20점 되면 일도 못해요”
“오늘 배송할 것만 450개…
절반이 신선식품일텐데
상하면 변상도 우리 몫이죠”
“키보다 높이 쌓아 밀고 끌며
끼니 거른 채 뛰어도 자정쯤 끝…
어제는 3시간 자고 나왔어요”
사상 최장 기간 추석 연휴를 앞두고 택배기사들은 쉴 새 없이 밀려오는 선물 택배와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고객은 택배가 늦지 않길 원한다. 택배회사는 인력 보충은 해주지 않으면서 “늦으면 택배기사 책임”이라고 뒷짐지기 일쑤. 추석을 앞두고 물량과 시간에 쫓기는 택배기사를 본보가 27, 28일 이틀 간 동행했다.
28일 오전 6시 30분. 서울 중랑구 한 터미널로 택배기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택배기사 이모(41)씨는 자신이 몰고 온 트럭에서 내리자마자 한마디를 던졌다. “어제는 새벽 1시 30분 넘어서야 일이 끝났습니다. 3시간 자고 나왔어요.“
한탄은 이어졌다. “추석 같은 명절만 되면 배달해야 할 게 워낙 많으니까, 배송이 늦어질 수 있잖아요. 근데 회사에서는 그걸 다 우리 때문이라고 떠넘깁니다.” 실제 이씨가 속한 회사는 고객이 배송 지연 불만을 제기하면 벌점을 1점씩 부과한다. 20점이 되면 회사 애플리케이션(앱) 접속을 할 수 없다. “앱에 접속 못하면 배송 완료 접수를 할 수 없어요. 아무리 일을 해도 실적으로 남지 않으니까 돈을 못 받게 됩니다. 사실상 나가라는 소리죠.“
오전 7시가 되자 15톤 트럭 6대가 줄지어 들어왔다. 그 안에는 이날 배송해야 할 택배가 가득 담겨 있었다. 이씨는 “오늘도 뼈 빠지게 생겼다”며 장갑을 야무지게 꼈다. 트럭에 컨베이어 벨트가 연결되자 양쪽으로 택배트럭 30대가 순식간에 붙었다. 추석을 앞둔 만큼 포도, 자두, 굴비 등이 담긴 상자와 한과ㆍ재래김ㆍ햄 선물세트가 컨베이어벨트로 쏟아졌다. 기사들은 자신이 맡은 구역 상자들을 빠르게 낚아챘다. 2만개 가량, 이를 트럭에 나눠 싣는 작업에만 4시간이 소요됐다.
준비를 마친 이씨는 “오늘 배송할 게 450개 정도“라고 했다. 이씨가 맡고 있는 구역은 광진구 일대. “빨리 해야 오늘 안으로 일을 끝낼 수 있다”는 목소리엔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일이 많아 좋은 것 아니냐’는 물음에 이씨는 한숨을 내쉰다. “추석에는 특히 음식 배송이 많은데 우릴 그걸 신선식품이라 부른다. 오늘도 절반 이상이 신선식품일 텐데, 혹시나 회사 앱에 신선식품이라고 등록하지 않은 게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배달 전에 등록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배송이 늦어져 식품이 상하면 변상은 온전히 기사 몫이 된다. 이씨는 “오늘처럼 배달할 게 많은 날엔 혹시나 파악 못한 신선식품이 있을까 조바심이 든다”고 했다. 불안한 눈빛을 한 채 가속 페달을 밟는 이씨 발에는 힘이 잔뜩 들어갔다.
배달이 시작한 이씨는 마치 곡예단원 같았다. 트럭과 배송지를 왕복해야 하는 시간을 줄여보겠다고 자신 키(165㎝)보다 높이 상자를 쌓은 손수레를 밀고 끌며 주택가를 활보했다. 계단식 아파트에서는 ‘엘리베이터 공법’도 선보였다. 한 동에 배달해야 할 택배를 모두 가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간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차례로 배송하는 식이다. 한 곳에서는 복숭아 선물세트를 배송 받아야 할 고객이 이미 이사를 가고 없어 곤혹스런 일도 있었다. 이씨는 “추석 선물은 평소 연락을 하지 않던 사이에서 ‘인사치레’로 하는 경우가 많아 주소지가 틀리는 상황이 있다”며 “그냥 경비실이나 문 앞에 두고 오면 ‘임의배송’이 된다”고 했다. 임의배송도 벌점 1점이다.
오후 11시. 15시간을 뛰어다닌 이씨 얼굴에 그제야 미소가 감돈다. “오늘은 자정 전에 끝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예상대로 배송은 오후 11시 30분이 살짝 넘어 끝났다. “저도 연휴에는 쉬는데 그 다음엔 밀린 택배에 또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점심과 저녁도 거른 채 배송 전쟁에 나섰던 이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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