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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금지법 1년] 청렴문화 기폭제 ‘3ㆍ5ㆍ10’ 규정… 농수축산업계는 고통 호소

입력
2017.09.2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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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ㆍ비위 예방하는 보루”

여론 지지 속 사회 변화 이끌어

“업계 위축… 규정 완화해야”

농식품부ㆍ해수부 개정 요구

권익위 “시행 1년 밖에 안돼

가액 조정 등 쉽게 할 수 없어”

서울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농협 품목별 전국협의회 관계자들이 추석 전 청탁금지법 개정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서울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농협 품목별 전국협의회 관계자들이 추석 전 청탁금지법 개정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전에 없던 폭발적 관심과 기대, 우려 속에 결국 실정법이 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ㆍ일명 김영란법) 시행이 28일로 만 1년을 맞는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사회와 공직 유관기관의 부정청탁 및 공짜 선물ㆍ식사 관행을 획기적으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농ㆍ수ㆍ축산업과 요식업의 위축을 가져왔다는 부정적 반응도 적잖다.

특히 청탁금지법의 핵심 중 핵심이라 할 수 있는 ‘3ㆍ5ㆍ10 규정’(식사 3만원ㆍ선물 5만원ㆍ경조사비 10만원 한도)에 대한 도전과 진통은 지난 1년 내내 이어졌다. 관련 업계와 일부 정치권에서는 “산업과 내수를 망치는 악법”이라며 폐지ㆍ개정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반면, 대다수 여론은 “부패와 비위를 예방하는 최선의 보루”라며 개정 불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 내에선 엇갈린 찬반

일단 정부 내에서부터 목소리가 엇갈린다. 농민ㆍ축산인의 이해를 대변해야 하는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정부 내에서 가장 강력한 ‘3ㆍ5ㆍ10 규정’ 개정의 전도사로 꼽힌다. 김 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줄곧 “추석 이전에 3ㆍ5ㆍ10 기준을 상향하는 방안을 관철하겠다”고 강조하며 총대를 멨다. 굴비 등 고급 상품의 판매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어업계 요구를 외면할 수 없는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역시 3ㆍ5ㆍ10 규정의 개정을 위해 뛰고 있다.

지역구 여론에 휘둘릴 수 밖에 없는 국회의원들은 청탁금지법 규정을 완화하는 법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은 ‘3ㆍ5ㆍ10’을 ‘10ㆍ10ㆍ5’(식사 10만원ㆍ선물 10만원ㆍ경조사비 5만원 한도)로 바꾸자는 법안을 발의했고, 박준영 국민의당 의원은 관련 업계 요구를 반영해 농축수산물과 전통주를 아예 대상에서 빼자는 법안도 내놨다.

그러나 청탁금지법을 담당하는 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는 ‘시행이 채 1년도 안 된 법을 쉽사리 바꿀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은 7월 기자간담회에서 “청탁금지법이 친지ㆍ이웃 간에 주고받는 선물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며 “가액 조정은 국가의 청렴 이미지 제고에도 손상을 준다”고 말했다. 여기에 머물지 않고 권익위는 청탁금지법 제정 당시에 빠졌던 규정인 이해충돌방지 조항(사적 이해관계와 관련 있는 업무를 원천적으로 맡지 못하도록 하는 것)까지 추진하겠다고 최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밝혔다.

국민 여론 85%가 “긍정적”

법제 부처와 산업 부처의 엇갈린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총리실은 “청탁금지법이 산업에 미치는 정확한 영향이 나온 뒤 개정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19일 국무회의에서 “청렴문화가 확산되고 있지만 농축수산업계와 음식업계에 어려움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청탁금지법 시행이 공직 투명화 등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완해야 할 사항은 없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하고 검토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원은 한국행정연구원에 위탁한 청탁금지법의 경제적 영향 분석 결과를 12월 발표할 계획이다.

다만 청탁금지법 시행에 대다수 국민들이 찬성하고 있다는 점이 법 개정 여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당시 정부가 3ㆍ5ㆍ10 규정 개정을 강하게 추진했던 것에 비해, ‘적폐 청산’을 기치로 들고 나온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법 개정의 동력이 다소 약화된 것 또한 사실이다. 한국사회학회가 최근 발표한 청탁금지법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에 따르면 설문 대상자 1,500명 중 85.4%가 시행에 찬성한다고 답했고, 88.7%가 이 법에 공감한다고 응답했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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